2013.04.18
김식 기자
다승왕 울린 3타수 3안타
프로 7년간 타석에 선 적 없지만
2년 전부터 즐긴 골프 동작 익숙
‘때묻지 않은 유연한 폼’이 장점

류현진(26·LA 다저스)이 지난 2월 스프링캠프에서 타격훈련을 하자 동료들이 한마디씩 했다. “야구 스윙이 아니라 골프 스윙 같군.” 2006년 동산고 졸업 후 한국에서 뛰며 7년 동안 배트를 휘둘러 본 적이 없으니 그의 타격폼은 당연히 엉성했다. 그런데 류현진에게 골프 스윙은 고민인 동시에 잠재력이었다.
류현진의 골프 스윙이 메이저리그를 깜짝 놀라게 했다. 지난 14일(한국시간) 피닉스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애리조나전에서 3타수 3안타를 때렸다. 돈 매팅리(52) 감독은 그가 시즌 2승을 거둔 것보다 안타를 쏟아낸 것에 더 놀랐다. 류현진은 2011년 내셔널리그 다승왕 이언 케네디(29)의 공을 마치 멈춰 있는 골프공을 때리듯 가볍게 쳐냈다.
◆‘초보 타자’의 골프 스윙=키 1m89cm에 110kg이 넘는 거구 류현진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편안하게 서 있었다. 그는 3회 첫 타석에서 시속 150㎞의 바깥쪽 직구를 밀어쳤다. 몸의 회전은 크지 않았지만 방망이는 마치 드라이버가 큰 아크를 그리는 것처럼 돌아 나왔다. 이 타구는 우익수를 훌쩍 넘는 2루타가 됐다. 5회 두 번째 안타는 몸쪽 낮은 직구를 받아쳤다. 배트가 닿기 힘든 코스를 아이언샷하는 것처럼 받아쳤다. 6회에는 152㎞의 바깥쪽 직구를 밀어쳤다.
국내 최고의 타격이론가 김용달(57) KIA 타격코치는 “류현진이 ‘때 묻지 않은’ 폼으로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를 공략했다. 힘을 빼고 마치 회초리를 치듯 방망이를 돌렸다”고 평가했다.
타자들은 빠른 공을 치기 위해 빠른 백스윙을 한다. 중심 이동에 신경을 쓰면서 힙턴(엉덩이 회전)을 하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그러나 류현진은 골프공을 때리듯 간결한 스윙을 했다. 이동 발(왼발)을 아주 살짝 들었다 놓으면서 중심을 유지했다.
류현진은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라운드를 시작했다. 여자 프로골퍼 김하늘(25)과 ‘절친’이다. 미국에서는 휴일마다 티칭프로인 형 현수(29)씨와 골프를 즐긴다. ‘야구 스윙’보다 ‘골프 스윙’에 익숙하다.
박원(48) J골프 해설위원은 류현진의 타격을 보고 “쉽게 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뛰어난 스윙을 갖고 있다. 다운스윙 때 왼발이 버팀목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만들고 있다”며 “배트를 잡은 손목의 릴리스가 훌륭하다. 골프의 다운스윙에서 예리한 코킹을 유지하며 끌고 내려오다가 임팩트 직전에 릴리스하는 동작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골프 스윙의 장점과 한계=무엇보다 놀라운 건 류현진이 강속구를 힘들이지 않고 쳐냈다는 점이다. 김 코치는 “백스윙이 없이 부드럽게 ‘탁’ 쳤다. 투수 류현진의 유연성이 타석에서도 발휘된 것이다. 쉽게 던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피칭 폼은 교과서적이다. 그 재능이 타격에서도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골프 스윙의 한계도 있다. 김 코치는 “직구는 지금 류현진의 스윙으로 충분히 때릴 수 있지만 변화구 대응이 문제”라며 “다른 투수들이 류현진의 타격을 봤을 것이다. 투수가 유인구를 던졌을 때 지금처럼 일정한 타이밍으로 대처해선 안 된다. 골프와 달리 타격은 살아 움직이는 공을 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벌써 걱정할 필요는 없다. 타석에 선 투수에게 유인구를 많이 던지며 투구수를 늘리고 싶은 투수는 드물다. 골프 스윙으로 빠른 공을 펑펑 쳐낸 것만으로도 류현진은 이미 훌륭한 9번 타자가 됐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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