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2일 월요일

[단독 인터뷰] 포수에서 투수로 변신 젠슨 “다저스 뒷문 걱정 마”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world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118329
2013-07-22
로스앤젤레스=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켄리 젠슨(LA 다저스). 메이저리그 사무국 제공

LA 다저스가 확연히 달라졌다. 시즌 초에 보여주었던 종이호랑이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다저스는 지난 20일과 21일 이틀 연속 (이하 한국시간)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승리해 후반기를 2연승으로 기분 좋게 출발했다. 특히 이틀 연속 마운드에 오른 다저스의 마무리 켄리 젠슨(26)은 공교롭게도 2경기 모두 탈삼진 2개 포함 아웃카운트 3개를 연속으로 잡아내며 팀의 1점차(20일), 2점차(21일) 승리를 굳게 지켜 다저스의 후반기 전망을 한층 더 밝게 했다.

다저스는 올 초 주축타자들이 부상으로 이탈한 가운데 불펜투수들마저 난조를 보여 줄곧 내셔널리그 서부조 최하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지난 6월 괴물타자 야시엘 푸이그(23)가 팀에 합류하고 유격수 헨리 라미레즈(30)가 복귀하면서부터 상승세를 타고 있다. 

특히 브랜든 리그(30) 대신 지난 달 12일부터 마무리로 나선 젠슨이 뒷문을 잘 지키자 팀 성적이 크게 좋아졌다. 젠슨은 마무리로 이동한 후 2승 9세이브의 호조를 보이며 21일 현재 올 시즌 3승 3패 11세이브 평균자책점 2.23을 기록 중이다. 

네덜란드의 해외 영토인 네덜란드령(領) 출신인 젠슨은 지난 2005년 다저스에 입단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젠슨이 프로에 입단할 당시만 해도 그가 포수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다저스는 2009년 젠슨을 불펜투수로 전향시켰고 그가 가능성을 보이자 그 해 마이너리그 최고유망주들만 참가하는 애리조나 가을리그(AFL)로 젠슨을 보내 집중 조련했다.

젠슨은 이듬해인 2010년 더블 A에서 시즌을 맞이한 후 리그 올스타로 뽑힐 만큼 호투를 펼쳤다. 그 결과 같은 해 7월 24일 메이저리그로 콜업된 뒤 하루 뒤인 25일 빅리그에 데뷔했다. 2010년 불펜투수로 총 25경기에 등판해 27이닝을 던진 젠슨은 1승(무패) 4세이브 평균자책점 0.67의 성적을 기록했고, 2011년에는 총 53 2/3이닝을 던져 2승 1패 평균자책점 2.85의 성적을 올렸다. 

젠슨이 이처럼 2년 연속 호투를 펼치자 다저스는 지난해 5월 그를 마무리 투수로 기용했다. 젠슨은 지난해 시즌 말까지 총 65경기에 등판해 5승 3패 25세이브 평균자책점 2.35의 호성적을 기록했지만 심장질환이 재발해 조금 일찍 시즌을 접어야 했다. 다저스는 젠슨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시애틀에서 브랜든 리그를 영입했지만 올 시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동아닷컴은 최근 국내언론 최초로 미국 현지에서 젠슨을 만나 단독 인터뷰했다.

다음은 젠슨과의 일문일답.

-만나서 반갑다. 최근 컨디션은 어떤가?

“(웃으며) 매우 좋다.”

-인터뷰를 위해 사전조사를 해보니 당초 포수로 입단했다가 투수가 됐더라.


켄리 젠슨(LA 다저스). LA 다저스 홍보팀 제공

“그렇다. 지난 2005년 다저스에 처음 입단할 때만해도 포수였다. (웃으며) 나름 공격적인 포수일 만큼 타격은 좋았지만 2009년 까지 마이너리그에 머물렀다. 그러다 지난 2009년 네덜란드 대표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했다. 당시 WBC에서 두 경기를 뛰며 좋은 활약을 펼쳤는데 특히 상대팀 선수들의 도루시도를 모두 잡아낼 만큼 송구실력이 좋았다. 그러자 다저스 구단에서 강한 내 어깨를 뒤늦게 발견했는지 나를 투수로 전향시켰다. 투수로 돌아선 후 단 8개월 만에 메이저리거가 됐다. 투수전향은 내 야구인생에 있어 커다란 전환점이자 행운이었다. (웃으며) 나는 복이 많은 것 같다.”

-지난 달부터 다저스의 마무리 임무를 맡았다. 부담은 없나? 

“(단호하게) 전혀 없다. 지난해에 이미 마무리 투수로 뛴 경험이 있기 때문에 부담도 없고 어려움도 없다. 어떤 상황에 등판하더라도 항상 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 늘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마무리로 돌아선 후 성적이 좋다. 비결이 있다면?

“마운드에 오를 때 마다 항상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즌 초보다 더 좋아진 것 같다.”

-집중한다고 했는데 좀 더 자세히 어떤 식으로 집중하나? 

“내가 가진 역량을 믿고 잘 던졌을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아울러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투수코치 및 코칭스태프들과 상의도 많이 하고 연습도 많이 한다.”

-야구를 시작한 후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나?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을 때다. 특히 포수였을 때는 늘 마이너리그에만 있었는데 투수로 전향한 뒤 단 8개월 만에 빅리그로 콜업돼 그 기쁨이 남달랐다.”

-연습이나 경기가 없는 날은 주로 무엇을 하나?

“시즌 중에는 휴식을 취하는 것 외에는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오프시즌이 되면 농구경기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오프시즌에는 고향에 돌아가 수영을 자주 할 정도로 수영하는 것을 좋아한다.”

-고향에는 자주 가는 편이가?

“시즌이 끝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매년 고향에 간다.”


켄리 젠슨(LA 다저스). LA 다저스 홍보팀 제공

-메이저리그에서 많은 타자를 상대해봤다. 가장 까다로운 선수를 꼽자면?

“나는 어떤 타자를 만나도 위축되지 않고 항상 자신 있게 던지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애리조나의 3루수 마틴 프라도를 상대로 성적이 안 좋다. 그가 리그를 대표할 만큼 강타자도 아닌데 이상하게 유독 프라도에게 약하다. (프라도는 젠슨을 상대로 5타수 3안타 타율 0.600을 기록 중이다)

-다저스의 최근 상승세가 무섭다. 비결이 무엇이라고 보나?

“다저스 팀 원 모두의 확고한 목표의식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본다. 우리는 올 초 스프링캠프 때부터 월드시리즈 우승을 목표로 하나가 됐고 준비도 열심히 했다. 월드시리즈 우승은 우리 모두의 공통목표이자 그것을 이루고 싶어하는 열망 또한 무척 강하다. 지금의 상승세를 잘 이어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것은 물론 반드시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것이다.”

-개인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개인적인 목표 또한 월드시리즈 우승이다. 몇 승을 하겠다는 개인 성적에는 연연하지 않는다. 항상 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반드시 월드시리즈 우승을 할 것이다.” 

-사전조사를 해보니 결혼유무에 대한 정보가 없더라.

“아직 미혼이다. 하지만 약혼자는 있다. 미국 오하이오 출신의 여성으로 내년에 결혼할 예정이다.”

-이른 감이 있지만 미리 결혼을 축하한다. 

“하하. 고맙다.”

-야구선수들은 징크스가 많다. 당신도 그런 편인가? 

“특별한 징크스는 없다. 다만 일정한 시간에 야구장에 나와 정해진 일들을 항상 같은 시간에 반복적으로 하면서 경기를 준비하는 것 외에는 없다.”

-야구는 언제 처음 시작했나?


켄리 젠슨(LA 다저스). LA 다저스 홍보팀 제공

“6살 때였던 것 같다. 리틀리그에서 처음 야구를 시작했다.”

-평생 야구만 함 셈인데 젠슨에게 ‘야구’는 어떤 의미인가?

“어려서부터 야구를 시작했고 야구로 인해 내 삶에 많은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 야구는 내 삶의 일부일 뿐이다. 누구보다 야구를 사랑하지만 알다시피 평생 야구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째거나 야구를 하는 동안만큼은 누구보다 즐겁게 즐기면서 하고 싶다.”

-지난 시즌 자료를 보면 컷패스트볼 의존도가 무려 93%로 나와있다. 한 가지 구종을 너무 많이 던지는 것 아닌가?

“지난 시즌에는 그랬지만 올해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의 비율을 높이고 있다. 아울러 포심 속구도 가다듬으면서 갈수록 구종의 다양화를 꾀하고 있다.”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

“다 잘 먹는 편이지만 특히 로스트 치킨과 콩 음식을 좋아한다.”

-한국에도 다저스 팬들이 많다. 끝으로 그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나 또한 다저스의 일원이 된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할 만큼 다저스는 뉴욕 양키스와 더불어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구단이다. 우리 팀이 올 해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우승할 수 있도록 한국에서도 많이 응원해 주었으면 좋겠다. 고맙다.” 

로스앤젤레스=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sang@lee22.com



[인사이드MLB] 지금 MLB는 수퍼 포수들의 시대

2013-07-22
기사제공 : 김형준 칼럼


야디에르 몰리나 ⓒ 순(純) 스포츠 

2006년 조 마우어(30·미네소타)는 포수로는 2차대전 이후 처음이자 아메리칸리그 최초로 타격왕이 됐다. 다시 2008-2009년. 마우어는 포수 최초의 타격왕 2연패와 함께, 처음으로 세 차례 타격왕을 차지한 포수가 됐다.
지난해 버스터 포지(26·샌프란시스코)는 내셔널리그 포수로는 70년 만에 타격왕이 됐다. 그리고 올해는 야디에르 몰리나(31·세인트루이스)가 전반기를 1위로 마감하며 버블스 하그레이브(1926)와 어니 롬바르디(1938 1942), 마우어와 포지에 이은 역대 5번째 포수 타격왕에 도전하고 있다(몰리나는 거의 모든 매체에서 내셔널리그의 전반기 MVP로 선정됐다). 만약 몰리나까지 성공하게 되면, 2006년부터 8년간 무려 5명의 포수 타격왕이 탄생한다.
바야흐로 우리는 '포수 타격왕'의 시대를 보내고 있다. 양대리그 체제가 성립된 1901년부터 2005년까지 105년간의 포수 타격왕이 단 세 명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지난 7년간 네 명은 엄청난 숫자다.
'유격수 3인방?' 이제 포수 3인방
포지  : .324 .394 .541 .935 /14홈런(28D) 59타점
마우어 : .320 .402 .471 .873 / 8홈런(31D) 34타점
몰리나 : .336 .384 .483 .867 / 7홈런(28D) 51타점
마우어 : 8년(2011-18) 1억8400만(연평균 2300만)
포지  : 9년(2013-21) 1억6700만(연평균 1855만)
몰리나 : 5년(2013-17) 7500만 (연평균 1500만)
요기 베라와 자니 벤치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만 25세가 되기 전에 팀을 두 차례 월드시리즈 진출로 이끈 몰리나, 풀타임 데뷔 4년 만에 두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과 두 번의 노히트게임, 리그 MVP와 함께 심지어 재기선수상까지 따낸 포지, 64년 동안 잠들어 있었던 포수 타격왕을 가장 먼저 깨워낸 마우어는, 90년대 유격수 3인방(알렉스 로드리게스, 데릭 지터, 노마 가르시아파라)이 있었던 것처럼, 포수 3인방으로 불러도 충분한 선수들이다.
그렇다면 포수 타격왕이 근래 들어 갑자기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역대 타격왕 중 포수가 압도적으로 적은 것은 수비 부담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유격수 역대 17명. 마지막 달성자는 2009년 핸리 라미레스). 시즌이 진행되면서 체력 문제에 가장 크게 노출되는 포지션은 바로 포수로, 포수가 시즌 끝까지 고타율을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근래의 포수들은 감독으로부터 세심한 배려를 받고 있다. 1944년 레이 뮬러(신시내티)와 프랭키 헤이스(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는 팀이 치른 155경기 전경기에 포수로 선발출장했다. 토드 헌들리의 아버지인 랜디 헌들리는 1968년 팀의 162경기 중 160경기에서 마스크를 썼고 156경기에 선발로 나섰다. 반면 지난해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한 포수는 139경기(선발 136경기)의 미겔 몬테로(애리조나)였다. 2007년의 러셀 마틴이 메이저리그에서 마지막으로 140경기 이상을 소화한 포수로(145경기, 선발 143경기), 2007-2009년 3년간 연평균 150경기(포수 138경기)를 소화했던 마틴은 이듬해 결국 부상을 당했다.
2009년 마우어는 선발 133경기 중 28경기를 지명타자로 나선 덕분에 체력 저하를 막아낼 수 있었다. 포지도 지난해 선발로 나선 140경기 중 29경기에서 틈틈히 1루수를 맡았다. 그에 비해 지금까지 몰리나는 85경기 중 84경기를 포수로 소화하고 있다(1루수 1경기). 몰리나가 지금처럼 파트타임 없이 타격왕에 오른다면, 140경기 이상 선발 마스크를 쓴 역대 최초의 포수 타격왕이 된다(마우어 포수 선발 119-135-105경기, 포지 111경기). 몰리나의 타격왕 달성 가능성이 높지 않은 이유다.

조 마우어 ⓒ 순(純) 스포츠 

#그렇다면 앞선 세 번의 포수 타격왕들은 어땠을까. 하그레이브는 1926년 105경기(366타석), 롬바르디는 1938년과 1942년 각각 129경기(529타석)와 105경기(347타석)라는 적은 경기수를 소화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타격왕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는 타격왕 도전 요건이 '100경기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1945년 '400타수 이상'이라는 새로운 조건이 만들어졌고, 1957년에는 '팀 경기수×3.1타석'이라는 지금의 규정타석이 생겼다(현재 502타석). 기준이 타수에서 타석으로 바뀐 것은 1954년 테드 윌리엄스 파동이 있었기 때문으로, 그 해 윌리엄스는 526타석에서 .345를 기록했다. 하지만 136개의 볼넷을 얻어낸 탓에 400타수를 채우지 못했고(386타수), 결국 바비 아빌라가 .341로 AL 타격왕에 올랐다. 당시 현재의 기준이 적용됐다면 윌리엄스의 타격왕 타이틀은 6개가 아닌 7개가 될 수 있었다.
공격 부문에서 포수들의 최근 선전은 특정 선수들의 대활약 때문 만은 아니다. 2011년 메이저리그 포수들은 포지션 비교 조정 OPS에서 95를 기록함으로써 1997년의 96 이후 최고를 기록했는데(100이 평균), 포수들은 다시 지난해 98이라는 역대 최고 기록을 만들어낸 데 이어 올해도 97을 기록하고 있다(1998-2010년 평균 90.5). 2001년과 올시즌의 포지션별 조정 OPS를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포수  [2001]  86 [2013]  97
일루수 [2001] 121  [2013] 116
이루수 [2001]  96 [2013]  99
삼루수 [2001] 104  [2013] 107
유격수 [2001]  91 [2013]  89
좌익수 [2001] 116  [2013] 107
중견수 [2001] 101  [2013] 104
우익수 [2001] 116  [2013] 111
지명  [2001] 106  [2013] 106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그렇다고 해서 지금이 '공격형 포수'의 시대는 아니라는 것이다. 골드글러브 5연패를 이어가고 있는 몰리나는 수비에서도 현역 최고의 포수이며, 포지의 수비력 또한 준수하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골드글러브 3연패에 성공했던 마우어는 다리 부상에 시달리면서 도루 저지율이 2007년의 53%에서 지난해 14%까지 떨어졌지만, 올해 다시 48%를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1990년대 듀오인 이반 로드리게스와 마이크 피아자 중 한 명의 수비력이 자랑할만 못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오히려 세이버메트릭스의 발달로 포수의 수비력에 대한 검증이 가능해지면서, 최근 메이저리그 팀들은 과거 같았으면 철저히 외면했을 수비형 포수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37살의 나이로 데뷔 13년 만에 처음으로 주전 포수가 된 호세 몰리나(탬파베이)다. 수비형 포수들의 득세는 다른 효과를 불러오고 있다. 어깨가 강한 포수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도루수의 감소와 도루 성공률의 저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SI.com에 따르면, 올시즌 전반기에 메이저리그 팀들이 기록한 경기당 0.54도루는 1971년 이후 가장 낮은 숫자다. 또한 2007년 74.4%였던 도루 성공률도 올해는 72.5%에 그치고 있다.
메이저리그는 철저한 분업화다. 메이저리그에서 볼배합은 포수가 아닌 코칭스태프가 담당한다. 대신 포수들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는 강력한 어깨다. 어깨 좋은 포수들이 즐비하다 보니,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설령 주자가 나가더라도 공의 위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는 슬라이드 스탭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수비 시프트와 함께 최근의 투수 득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인이다.
강력한 포수 수비력은 팀 성적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내셔널리그에서는 리그 최고의 포수를 가진 샌프란시스코와 세인트루이스가 챔피언십시리즈에서 격돌했다. 비록 샌프란시스코에게 리버스 스윕을 당하긴 했지만, 신시내티에도 도루 저지율에서 몰리나와 함께 리그 공동 1위(48%)에 오른 라이언 해니건이라는 출중한 수비형 포수가 있었다(신시내티가 올시즌 다소 아쉬운 점 하나는 해니건이 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2년 포수 수비력 순위(필딩 바이블 투표)1. 야디에르 몰리나 : 100 (PS)
2. 맷 위터스    :  81 (PS)
3. 라이언 해니건  : 75 (PS)
4. 카를로스 루이스 : 67
5. 버스터 포지   : 33 (PS)
6. 호세 몰리나   : 28
6. 커트 스즈키   : 28 (PS)
8. 조너선 루크로이 : 25
9. 알렉스 아빌라  : 23 (PS)
다저스의 최근 상승세에는 도합 50%의 저지율을 기록 중인 A J 엘리스(.257 .341 .374)와 팀 페더로비치(.191 .234 .337)의 활약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피츠버그가 전반기를 메이저리그 평균자책점 1위, 승률 2위로 끝낸 것에도 러셀 마틴(.239 .342 .399)의 등장이 결정적이었다.
지난 세 시즌 동안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들어올린 포수는 2010년의 포지와 2011년의 몰리나, 그리고 지난해의 포지였다. 올해는 과연 어떤 포수가 팀을 정상에 올려놓게 될지, 안방 마님들의 남은 시즌을 주목해 보자.



2013년 7월 16일 화요일

다저스 커쇼, ‘마운드’ 뿐 아니라 ‘마인드’도 에이스!

출처: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world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0&article_id=0000000369
2013-07-16
이 글은 유병철 스포츠 전문위원이 작성한 기사입니다.


올스타전 출전을 위해 뉴욕 시티필드를 방문한 클레이튼 커쇼. 다저스 선수로는 커쇼가 유일한 올스타전 출전 선수이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온 국민을 LA다저스 팬으로 만든 류현진(26)의 대활약. 그 덕에 MLB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는 클레이튼 커쇼(25)도 이제 한국 야구팬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듯싶다. 특히 최근 ‘진격의 다저스(일본만화 진격의 거인에서 패러디) 열풍’이 불면서 커쇼의 활약은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커쇼에 대해서는 잘못 알려지거나, 아직 그 소소한 스토리가 잘 알려지지 않은 면이 있다. 알면 알수록 ‘불과 25세의 야구선수에게 이렇게 많은 얘깃거리가 있나’ 생각이 들 정도다. 미국에서는 ‘공공의 적 1호(Public Enemy NO.1)’로 불리는 커쇼의 이면을 살펴봤다.
퍼펙트 오브 퍼펙트’의 진실
<위키피디아(영문)>를 보면 ‘(커쇼는 고교시절인) 2006년 13승 무패, 평균자책점 0.77, 139탈삼진(64이닝)을 기록했다. 저스틴 노스웨스트 고교와의 플레이오프게임에서는 전원 탈삼진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in 2006 when he posted a 13–0 record with an ERA of 0.77, and recorded 139 strikeouts in 64 innings. In a playoff game against Justin Northwest High School, Kershaw pitched an all-strikeout perfect game)’라는 구절이 나온다. 아무리 고등학교 야구라고 해도 퍼펙트게임은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전원 삼진이라니 기네스북도 놀랄 기록이다. 이것이 국내 한 신문을 통해 와전되면서 ‘커쇼 27삼진 신화’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정보다. 커쇼는 해당 경기에서 15명의 타자만 상대했다. 경기가 10-0 5회 콜드게임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당시 투구수는 73개였고, 커쇼는 타석에서 홈런을 치기도 했다. 기록의 의미가 조금 축소됐기는 했지만 그래도 대단하기는 대단하다. 커쇼는 그해 로부터 ‘올해의 고교 야구선수’로 선정됐고, 게토레이 내셔널 플레이어의 야구부분 수상자가 됐다. 그리고 그해 MLB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7번째로 LA다저스의 지명을 받았다. 


다저스의 에이스인 만큼 어딜 가나 팬들로부터 사인 요청을 받게 된다. 힘들어도 찡그리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사인을 해주는 커쇼의 모습이 인상적이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커모삼천지교'와 가난 극복 
192cm, 99.7kg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커쇼는 1988년 3월 19일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음악가인 아버지 크리스와 어머니 매리언(그래픽디자이너) 사이에서 태어났다(참고로 커쇼의 아버지는 지난 4월 28일 작고했고, 커쇼는 장례식 참석 후 예정된 등판일정을 소화했다).
부모는 커쇼가 10살 때 이혼했고, 매리언 혼자 커쇼를 키웠다. 싱글맘이다 보니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았지만 매리언은 커쇼에게 최고의 교육을 제공하고 싶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부촌으로 유명한 하이랜드 파크에서 살았다. 이 동네는 베버리힐즈를 설계한 사람이 도시계획을 맡았고, 가구의 평균 연수입은 20만 달러가 넘었다. 유명한 운동선수가 많이 배출된 것으로 유명하고, 당연히 ‘커쇼네’처럼 싱글맘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어린 시절 서머캠프에서 커쇼를 가르친 켄 거스리 코치는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커쇼는 그 지역사회에서 검은 양(black sheep)이었다”고 비유했다. 고교 졸업반이 돼서야 뒤늦게 1997년형 포드 중고차를 얻은 커쇼도 “내 차는 렉서스SUV로 가득 찬 학교 주차장에서 정말 볼품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지금도 나이에 비해서는 무척 성숙했다는 평가를 받는 커쇼는 어린 시절 이런 환경을 잘 이해했다.
“커쇼가 12살 때 차 안에서 갑자기 빤히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어요. ‘엄마, 우리 부자지? 그런데 여기 하이랜드 파크만큼은 부자가 아니지, 그렇지?’라고요. 어린 나이지만 커쇼는 일찌감치 녹록치 않은 가정환경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죠.” 어머니 매리언의 회고다.
매리언은 커쇼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심지어 비싼 사립학교를 다니게 했다. 물론 도중에 도저히 감당이 안 돼 공립학교로 옮겼지만 말이다. 어쨌든 매리언의 고민은 노상 커쇼의 교육을 위한 돈 걱정이었다. 이는 2006년 드래프트 후 사이닝 보너스로 230만 달러를 받으면서 비로소 해결됐다.
가식이 없고, 겸손한 커쇼의 성격도 이러한 성장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커쇼는 “어떤 것을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겸허하게 대한다. 이런 내 성격은 내가 자란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머니에게 정말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다저스의 댈러스 지역 스카우트 캘빈 존스이 밝힌 일화도 하나 있다. “드래프트 후 내가 정말 놀란 것이 하나 있다. 사이닝 보너스를 받은 후 어떤 차를 사고 싶냐고 물었는데 커쇼는 F-150픽업(값비싼 스포츠카나 명차가 아니라 실용적인 차)을 사겠다고 했다. 나는 이 정도면 멘탈은 됐다고 생각했다.”

커쇼와 절친 매튜 스태포드. 스태포드는 NFL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다.(사진=커쇼 재단)
별명, 절친, 등번호
커쇼는 2007년 마이너리그를 거쳐 2008년 만 20세가 되기도 전에 메이저리그로 올라왔다. 2008년 5승(5패), 2009년 8승(8패), 2010년 13승(10패)에 이어 빅리그 4년째인 2011년 21승 5패, 평균자책점 2.28, 탈삼진 248개로 투수 부문 트리플크라운을 기록하며 사이영상을 받았다. 2012년 14승에 이어 올해도 팀내 최다승을 올리며 순항 중이다. 올시즌 후 FA계약이 가능한 커쇼는 벌써부터 사상 최초의 2억 달러 계약이 예견되고 있다.
이런 커쇼는 미국에서는 ‘공공의 적 1호’로 불린다. 빅리그 승격 첫 해 시범경기에서 엄청난 커브를 선보이자 다저스의 레전드인 1인해설자 빈 스컬 리가 “Public Enemy NO.1”이라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 이제 상대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됐으니 별명 예언이 적중한 것이다.
어머니 덕에 스타플레이어를 많이 배출하기로 소문난 하이랜드 파크에서 자란 커쇼는 스타플레이어 친구들이 다수 있다. 특히 NFL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프랜차이즈 쿼터백 매튜 스태포드는 둘도 없는 절친이다. 초중고 동창으로 어린 시절 풋볼, 야구, 농구, 축구 등 다양한 종목을 함께 했는데 야구에서는 커쇼가 투수, 스태포드가 포수를 맡았다. 둘은 다저스의 캠프에 참가하기도 했는데 커쇼는 이후에 다저스의 에이스가 된 것이다(커쇼는 큰 키 덕에 축구에서는 골키퍼를 맡았다).
참고로 커쇼는 고교졸업 후 당초 지금의 아내인 엘렌이 진학하는 텍사스 A&M 대학으로부터 장학생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드래프트에서 뽑히는 바람에 바로 프로에 뛰어들었다(사이닝 보너스 230만 달러). 반면 절친 스태포드는 조지아 대학에 진학한 후 2009 NFL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디트로이트로 갔다. 초중고 단짝친구가 미국 메이저 스포츠리그에서 대스타가 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등번호 22번에도 뼛속까지 ‘텍사스 사나이’인 사연이 깃들여 있다. 커쇼는 학창시절 텍사스 레인저스의 1루수 윌 클락을 가장 좋아했다. 그에 대한 오마주로 그의 번호를 지금 달고 있는 것이다. 커쇼는 지금도 매년 모교를 방문할 정도로 댈러스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2010년 12월 4일 결혼한 아내 엘렌(멜슨)과 커쇼의 결혼식 피로연 장면. 엘렌과는 2005년부터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했다고 한다.(사진=커쇼 재단)
몸보다 더 강한 멘탈
커쇼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2010년 12월 4일 결혼한 아내 엘렌(멜슨)과 그 집안의 영향이 컸다. 커쇼는 엘렌을 중학교 때부터 알았지만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졸업반이 되면서부터다. 그때까지 둘은 이성친구가 없을 정도로 순진했다. 둘의 연애는 엘렌의 할아버지 에드 멜슨이 가족여행에 커쇼를 초청하면서 장래를 약속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에드 멜슨은 지금도 커쇼에게는 친할아버지 같은 존재다.
어쨌든 원래 독실했는데 아내 덕에 더 독실해진 커쇼의 신앙심은 대단하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후 ‘아이 엠 세컨드(I am Second)’라는 기독교 간증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커쇼는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본다. 그들에게 신앙을 대놓고 전할 수는 없다. 그저 기독교인이 어떻게 사는가를 그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종교 덕인지 커쇼는 멘탈이 훌륭하다. 아내 엘렌은 “커쇼는 아마도 여러분들이 만난 사람 중 가장 겸손한 사람일 것이다. 예컨대 레스토랑에서 그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메이저리그 스타라는 지위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가능한 피하려고 노력한다. 옆에서 지켜보면 재미있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커쇼도 “신앙은 나를 성장시켰다. 그리고 라이프스타일이 돼 버렸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신을 위한 것이다. 운동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커쇼는 프로정신이 대단하고, 동료의식도 뛰어나다. 그리고 성실하다. 젊은 나이에 대성한 많은 선수들이 성공에 취하는 것과는 달리 커쇼는 시즌 중 매일 체력단련을 하는 등 엄청난 훈련량을 유지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매 게임 최고의 상태로 마운드에 오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봉사 활동 중인 커쇼와 아내 엘렌, 그리고 잠비아 아이들.(사진=커쇼 재단)
MLB판 ‘아프리카의 성자’
그런데 커쇼에게는 ‘모범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자선을 실천하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 일찍이 아프리카 잠비아의 고아 문제에 깊은 관심이 있었던 엘렌은 2010년 신혼여행지로 호화 휴양지 대신 잠비아를 택했다. 그리고 커쇼는 이때 세상에 대해 새롭게 눈을 떴다. 커쇼는 “아프리카는 우리가 얼마나 축복받았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아주 기본적인 생활요건만 갖춰져도 그렇게 행복해 할 수가 없다. 이것은 그들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라고 말했다.
첫 방문 후 커쇼는 엘렌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호프’라는 잠비아 고아소녀를 위해 고아원을 지어주겠다고 결심했다. 호프는 부모가 에이즈로 사망했고, 자신도 감염자였다. 커쇼는 행동에 나섰다. 2011시즌 스트라이크 아웃 1개 당 100달러를 적립했다. 그리고 각종 상을 받을 때마다 상금의 대부분도 내놓았다. 2011시즌 후 고아원(호프의 집)은 세워졌고, 아내와 함께 이 문제를 다룬 ‘ARISE’라는 책도 펴냈다(2012년 1월).
커쇼는 지금도 겨울이면 약 한 달 동안 잠비아에 머물며 자선활동을 펼친다. “이들은 야구도, 메이저리그도 모른다. 여기(잠비아) 오면 내가 축구선수였으면 더 좋았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아프리카는 축구인기가 높다).” 커쇼의 아프리카 사랑은 현재진행형이다. 
커쇼는 2012년부터는 아예 ‘커쇼의 도전(kershawschallenge.com)’이라는 자선단체를 만들어 잠비아는 물론 LA와 댈러스 등에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그 해 선행을 베푼 메이저리거에게 주는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역대 최연소로 수장했다. 커쇼는 1년 전 수상한 사이영상보다 이 상이 더 뜻깊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고의 기량과 함께 모범적인 사생활로 미국인의 존경을 받던 마이클 조던(농구)과 타이거 우즈(골프)는 이혼, 도박 등으로 이미지의 빛이 많이 바랬다. 그 자리를 불과 25살의 젊은 야구스타가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류현진도 커쇼에 대해서는 그의 일기를 통해 ‘정말 인성이 훌륭한 선수’라고 말한 바 있다. 류현진은 “커쇼는 최고의 에이스 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겸손하고 착하고 성실하다. 이런 선수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따름이다”라고 얘기했다. 

서로 좋은 영감을 주고 받는 류현진과 커쇼. 커쇼는 메이저리그 데뷔해를 보내는 류현진을 따뜻하게 챙겨줬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