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0일 수요일

한신 포수, 최고 속도 2루 송구 타임 1.71초 놀랍다

출처: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311200100194810011720&servicedate=20131120
2013-11-20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사진캡처=일본야구기구

야구판에서 대개 포수의 강견 조건으로 포구 이후 홈에서 2루까지의 송구가 2초 이하로 이뤄질 때를 말한다. 야구장 규격을 보면 홈에서 2루까지의 거리는 38.79m다. 

간발의 차이로 생사가 갈리는 도루를 차단하기 위해선 포수는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2루를 향해 공을 뿌려야 한다. 잘 잡는 건 기본이고 낮고 빠르게 송구해야 한다. 1루와 2루 사이는 27.4m다. 

2루 송구가 숙달되지 않을 경우 포수의 도루 저지율이 2할대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2루 송구를 잘 하기 위해선 어깨 근육은 물론이고 팔과 손목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주문한다. 또 스피드 이상으로 정확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일본 스포츠전문지 스포츠닛폰이 한신 타이거즈의 젊은 포수 아즈하타 신야(25)가 포구 이후 2루 송구 타임을 측정한 결과, 1.71초를 기록했다고 20일 보도했다. 아즈하타는 2012년 드래프트 4순위로 한신 유니폼을 입었다. 

이 신문은 아즈하타의 기록이 야구계 최고 속도라고 평가했다. 아즈하타의 종전 개인 최고 기록은 1.78초였다고 한다. 

이번 기록은 한신의 마무리 훈련인 아키 캠프에서 배터리 코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졌다. 그는 "실전이 아닌 연습 과정에서 스피드를 빠르게 하기 위해 던졌는데 내 기록을 경신했다"고 말했다. 

일본 야구에선 오릭스의 포수 사토가 1.79초로 빠른 축에 속한다. 세이부의 스미타니는 1.9초대다. 

한신의 야마다 코치는 "송구 속도는 재는 위치에 따라 변할 수 있다. 하지만 포수가 강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이다"고 말했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2013년 11월 17일 일요일

[토요판 커버스토리]프로배구 ‘멘털 고수’ 삼성화재 팀의 일상 보니

출처: http://news.donga.com/Main/3/all/20131116/58930363/1
2013-11-16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멘붕’ 이길 비법 있다]
야참으로 라면 금지… 늦은밤 휴대전화 금지
‘고교팀’ 놀림 받지만… 6연속 우승 승승장구


‘코트 위의 제갈공명’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은 평소 기본 지키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동아일보DB

오전 6시 반. 잠에서 깨자마자 체중계에 올라선다. 간밤에 몰래 치킨이라도 시켜 먹은 날이면 가슴을 졸여야 한다. 기준 체중보다 500g이 더 늘거나 줄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간식으로 라면은 절대 불가. 취침을 앞둔 오후 10시 50분에는 휴대전화도 내놓아야 한다.

다이어트 합숙소의 살풍경이 아니다. 프로배구 삼성화재 선수단의 하루 일과의 처음과 끝이다. 이 원칙을 만든 사람은 ‘코트 위의 제갈공명’으로 불리는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58)이다.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는 프로에서는 보기 드문 원칙이다. 

신 감독은 “밤에 라면을 먹으면 다음 날 훈련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 휴대전화도 같은 맥락이다. 늦은 밤 친구와 통화하다 잠을 못 자면 몸 상태가 좋을 리 없다. 좋은 생활이 좋은 훈련과 결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다른 팀 선수들은 우스갯소리로 삼성화재를 ‘고교 팀’이라고 놀린다. 하지만 이 팀의 성적은 놀랍다. 신 감독은 1995년 삼성화재 창단 이후 19년째 같은 팀을 맡으면서 ‘고교 문화’의 최강 프로팀으로 이끌었다. 2005년 프로 출범 이후 통산 7회 우승. 지난 시즌까지 6연패를 이뤘다.

명장(名將)끼리는 통하는 걸까. ‘만수’(萬手·1만 가지 지략을 갖고 있다고 해서 얻은 별명)로 불리는 프로농구 모비스 유재학 감독의 스타일도 비슷하다. 불편하더라도 선수들이 기본에 충실하기를 주문한다. 그는 선수들이 약속 시간에 늦는 꼴을 못 본다. 고참이든 외국인 선수든 늦으면 가차 없이 버리고 출발한다. 식사를 할 때도 선수단이 함께 이동해 다 같이 한다. 유 감독은 “팀은 작은 사회다. 그 안에서 인간관계와 협동, 배려를 배운다. 기량은 나중 문제고 건강한 사회인으로서 기본이 먼저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모비스 주장 양동근은 유 감독의 ‘판박이’다. 양동근은 동료와 코칭스태프에게 언제나 깍듯하다. 자기관리는 더욱 칼 같다. 프로 10년 차인 그는 신인 시절부터 농구 일기를 써왔다. 자기계발을 위해 틈틈이 영어 공부도 한다. 그의 숙소 벽면에는 지금도 농구 관련 전술과 명언이 적힌 쪽지가 붙어 있다. 유 감독 밑에서 국내 최고의 가드로 거듭난 양동근은 우승 반지만 3개(2006∼2007, 2009∼2010, 2012∼2013시즌)를 모았다.

명장이 말하는 성공의 조건은 단순하다. 운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운동만 잘해서는 안 된다. 평소 생활에서 기본을 지키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런 원칙을 최초로 스포츠에 도입한 인물이 고 존 우든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농구 감독이었다. 우든 감독은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이 2000년 실시한 ‘20세기 가장 위대한 스포츠 지도자’ 설문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로 뽑혔다. 우든 감독은 2010년 100세를 일기로 타계했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최고의 지도자로 존경받고 있다. 우든 감독이 전설로 남은 것은 승리보다 과정을 중요시한 최초의 스포츠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우든 감독은 초등학교 졸업 때 아버지 조슈아 휴 우든으로부터 인생의 가치가 담긴 교훈을 선물 받았다. 아버지가 건넨 2달러짜리 우편엽서에는 
△자신에게 진실하라
△남을 도와라
△매일을 최고의 날로 만들어라
△좋은 책의 내용을 깊이 소화하라
△우정을 예술 작품처럼 아름답게 가꿔라
△만일에 대비하는 계획을 항상 세워둬라
△기도하고 모든 축복에 감사하라
는 ‘7계명’적혀 있었다. 훗날 우든 감독은 이를 바탕으로 ‘성공을 위한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성공 피라미드를 밑받침하는 건 평소 생활이다. 우든 감독의 피라미드는 수많은 스포츠 스타와 지도자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2013년 11월 13일 수요일

'75억 FA 초대박' 강민호, 천운을 타고난 사나이

http://osen.mt.co.kr/article/G1109724567
2013.11.13
OSEN=이상학 기자

[OSEN=이상학 기자] 롯데 포수 강민호(28)가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고액 FA로 초대박을 쳤다. 천운을 타고난 사나이답게 역사를 썼다. 

강민호는 13일 롯데 구단과 4년 총액 75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11일 첫 협상 때부터 두 번이나 만남을 갖는 등 충분한 교감을 이뤘고, 13일 두 번째 협상에서 금액까지 합의하며 계약 발표에 이르렀다. 지난 2004년 11월 현대에서 삼성으로 옮기며 4년 총액 60억원을 받은 심정수의 최고액 기록도 9년 만에 경신했다. 

강민호가 이처럼 FA 초대박을 이룰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실력이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역사를 쓸 수 없다. 하지만 강민호의 대박에는 '운'이라는 요소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앞으로 강민호 같은 사례가 두 번 다시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그는 천운을 타고난 사나이로 불릴 만하다. 


제주도 출신으로 포철중-포철공고를 거친 강민호는 지난 2004년 신인 드래프트 2차 지명에서 3라운드 전체 17순위로 롯데에 지명됐다. 당시 고졸 포수로 가능성을 인정받은 그는 비교적 높은 순위에 롯데로부터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계약금은 9000만원으로 특급 유망주 수준은 아니었다.

2004년 프로 데뷔 첫 해 1군에서는 3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당시 롯데에는 최기문이라는 공수겸장 포수가 주전으로 뛰고 있었다. 강민호의 자리는 백업이었다. 하지만 강민호는 최기문으로 인해 기회를 잡았다. 최기문이 팔꿈치 부상을 당하며 전열에서 이탈했고, 강민호에게 갑작스럽게 주전 기회가 온 것이다. 

강민호는 프로 2년차였던 2005년 주전과 백업을 넘나들며 104경기를 뛰었다. 20살 어린 포수가 프로 1군에서 100경기 이상 뛰는 건 흔치 않은 기회. 최기문이 수술 후 재활에 들어간 2006년부터 롯데 안방은 강민호의 차지가 됐다. 2006년에는 126경기 모두 출전하며 가능성을 펼쳐보이기 시작했다. 포수로서 경험이라는 최고 자산을 쌓은 시기였다. 

2007년부터 공수겸장 신예 포수로 확실하게 자리 잡은 강민호에게 두 번째 행운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었다. 그는 올림픽에서 진갑용의 백업 포수로 시작했으나 그가 부상을 당하자 주전 마스크를 쓰고 금메달을 견인했다. 결승전 막판 심판 볼 판정에 격분에 글러브를 집어던지는 장면은 유명했다. 당시 금메달로 그는 20대 선수의 가장 큰 고민인 병역 문제를 해결했다. 

병역이 해결된 20대 주전 포수는 강민호가 유일했다. 이미 그때부터 강민호의 FA 대박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2010년 타율 3할5리 23홈런 72타점으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찍은 강민호는 그러나 2011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공격 지표에서 꾸준히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투수리드와 수비력에서 향상을 이루며 보완을 이뤘고, FA 시장에서 최고 대우를 받기에 이르렀다. 

FA 시장 상황도 강민호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두산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팀들이 포수 고민을 안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포수 세대교체가 더뎠고, 강민호를 탐내지 않는 구단이 없었다. 게다가 롯데는 지난 2년간 이대호 홍성흔 김주찬 등 내부 FA들을 모두 놓치며 흥행에 타격을 입었다. 강민호마저 빠지면 치명타를 입을 게 뻔했다. 

그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롯데는 일찌감치 최고액을 베팅하며 눌러 앉혔다. 강민호는 시장에도 나가지 않았지만, 이미 FA 최대어로 분류돼 최고액에 사인했다. 심각한 포수 품귀 시대와 롯데의 흥행 실패까지 겹치면서 강민호는 FA 사상 최고액 대박을 쳤다. 

waw@osen.co.kr



2013년 11월 1일 금요일

‘신의 한 수’ 보스턴, 오티즈(#34) 영입 후 WS 3회 우승

출처: http://sports.donga.com/3/all/20131101/58609644/2
2013-11-01
동아닷컴 조성운 기자 madduxly@donga.com



[동아닷컴]
‘신의 한 수’란 이런 것일까? 오랫동안 ‘밤비노의 저주’에 시달리던 보스턴 레드삭스는 ‘빅 파피’ 데이빗 오티즈(38)를 영입한 뒤 10년 간 3번이나 월드시리즈 정상에 섰다.

보스턴은 지난달 31일(한국시각) 미국 메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위치한 펜웨이 파크에서 열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6-1로 승리했다.

지난 2007년 이후 6년 만의 정상 등극. 최우수선수(MVP)에는 6경기에서 홈런 2개를 포함해 16타수 11안타 6타점 타율 0.688와 OPS 1.948을 기록한 오티즈가 선정됐다.



오티즈는 지난 2002년 미네소타 트윈스 소속으로 125경기에서 20홈런을 때려냈음에도 불구하고 난데없이 방출 통보를 받았다.

가난한 미네소타는 높지 않았던 오티즈의 연봉마저 부담스러워 했고, 이에 하루아침에 논텐더 신세가 된 것.

이러한 상황에서 오티즈는 당시 보스턴을 이끌던 테오 엡스타인 단장의 구제를 받았고, 2003년 31홈런과 101타점으로 기대에 부응했다.



이후 오티즈는 보스턴이 86년 만에 월드시리즈 정상에 선 2004년 41홈런과 139타점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정상급 타자로 우뚝섰다.

또한 2006년에는 54홈런과 137타점을 기록하며 이 부문 아메리칸리그 선두에 오르며 당시 미네소타의 선택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이어 오티즈는 2007년에도 35홈런을 때려내며 보스턴의 21세기 두 번째 정상 등극에 큰 역할을 했으며, 이번 월드시리즈에서는 MVP까지 따내며 최고의 활약을 했다.

미네소타 시절 거포로 성장할 가능성만 지녔던 오티즈는 보스턴 이적 후 기량이 만개해 지난 11년간 373홈런을 때려냈고, 소속팀을 월드시리즈 정상에 세 번이나 올려놨다.

수많은 전설적인 선수들이 하지 못한 보스턴의 저주 격파. 하지만 보스턴은 오티즈를 영입한 후 10년 간 3번이나 우승하며 21세기 최고 명문 팀으로 거듭났다.

동아닷컴 조성운 기자 madduxl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