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2일 화요일

[이창호의 야구, 야구인]아버지와 아들, 이토와 최재훈

출처: 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1310/h2013102116224391670.htm
2013.10.21
이창호기자

이토를 만나 야구 보는 눈을 바꾸다, 가을의 지배자가 되다


두산 포수 최재훈이 홈플레이트를 지키고 앉아 야수들에게 투 아웃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두산 베어스 제공

"보는 사람들마다 아버지와 아들 같다고 했어요."

김태룡 두산 단장은 올해 '가을 야구'에서 한국시리즈 진출의 일등공신으로 자리매김한 포수 최재훈(24)의 이야기가 나오자 서슴지 않고 말한다. 올해부터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의 사령탑을 맡아 라쿠덴과 퍼시픽리그 클라이막스 파이널 스테이지를 치르고 있는 이토 쓰토무(伊東 勤·51) 전 두산 수석코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최재훈은 이토 코치가 생각날 때면 "함께 있을 때 아버지 같은 존재였고, 저 역시 아버지처럼 따랐어요. 그 때는 내가 아들이 된 느낌이었죠"라며 털어놓곤 한다.

'아버지와 아들-'

두산의 주전 포수로 발돋움하고 있는 최재훈의 성장 스토리 속에서 이토 코치의 역할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선수 생활을 계속해야 하나, 아니면 그만 두고 다른 삶을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시절, 정신적 멘토였을 뿐 아니라 힘든 시간을 이겨내게 해준 길잡이였다.

▶ 두산의 '가을 야구'를 지배하는 포수 최재훈

최재훈은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LG와의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동안 9게임에 모두 출전했다. 지난 8일 준플레이오프 1차전과 17일 플레이오프 2차전 때 선발에서 빠진 뒤 교체 멤버로 출전했을 뿐이다. 나머지 7게임은 당당하게 주전으로서 홈플레이트를 지켰다. 

올해 포스트시즌 9게임에서 25타수에 홈런 1개를 포함한 7안타로 타율 2할8푼과 2타점, 희생타 3개, 몸에 맞는 공 2개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 12일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 때는 0-1로 뒤진 6회말 1사 1루에서 밴 헤켄으로부터 좌중간 외야 관중석에다 역전 결승 2점포를 날려 벼랑 끝에 몰린 곰에게 기사회생의 기회를 안겨 주었다. 

최재훈은 그동안 양의지보다 타격이 약해 백업 멤버에 머물렀지만 이 한방으로 방망이도 살아 있음을 보여줬다.

최재훈의 진짜 능력은 공격보다 수비에 있다. 천부적으로 강한 어깨에서 쏘아대는 2루 송구 뿐 아니라 정확하고 과감한 판단력으로 상대 작전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하고, 공격의 맥을 끊어내기도 한다. 

20일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두산이 1-0으로 아슬아슬 앞서가던 3회초 무사 1루에선 9번 윤요섭의 투수 앞 보내기 번트 때 빠르고, 크고 분명한 동작으로 타구를 잡은 유희관이 매끄럽게 2루 송구를 할 수 있도록 콜 플레이를 했다. 중전 안타로 출루했던 손주인은 2루에서 포스 아웃. LG는 동점 기회를 만드는데 실패했다. 

4회초 무사 1, 2루에서도 5번 이병규의 투수 앞 보내기 번트가 나오자 주저하지 않고 3루 송구를 지시해 2루 주자 이진영을 잡아냈다. 상대의 추격 의지에 찬물을 끼얹었다. 포수가 단순하게 투구의 공만 받아주는 역할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그라운드를 지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보여줬다. 

투수 리드와 볼 배합도 만점이었다. 타자들의 고정된 머리 속 계산을 역으로 이용하면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최재훈은 무명이다. 

2008년 덕수고를 졸업했지만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하는 팀이 없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저 그런 선수로 여겼다. 결국 두산에 신고 선수로 입단했지만 주목 받지 못하다 2010년 경찰청에 복무하면서 야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2011년 퓨처스리그 북부리그에서 타율 3할3푼3리와 홈런 16개, 타점 79개를 기록하면서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리고 2012년 두산에 돌아와 세이부 감독에서 물러나 쉬고 있다가 한국 무대를 밟게 된 명포수 출신의 이토 코치를 만나 잠재 능력을 끌어올렸다. 

▶ 일본 야구의 '살아 있는 전설' 이토, 한국에서의 좌절 

이토 코치는 1982년 일본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1위로 세이브에 입단해 22년 동안 현역 생활을 하는 동안 11차례 포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고, 퍼시픽 리그 우승 14회와 8번 재팬 시리즈 우승을 이끌어낸 '살아 있는 전설'이다. 

2004년 은퇴와 함께 세이부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고 '1점이 소중한 야구', '1점을 지키는 야구'를 강조하면서 그 해 12년 만에 재팬 시리즈 우승까지 일궈냈다. 그러나 그 후 계속된 성적 부진으로 2007년 감독에서 물러나 해설가로서 야구의 폭을 넓히다 두산에서 '러브 콜'을 하자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낯선 땅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토는 두산의 수석코치로서 성공하지 못했다. 2012년 큰 꿈을 안고 한국 생활을 시작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야구와 현실 속의 한국 야구와는 차이가 컸다. 우여곡절을 겪었다. 수석 코치로 출발해 시즌 도중 수석 코치와 타격 코치를 겸직하다 다시 이름 뿐인 수석코치로서 남아야 했다. 

결국 "한국 야구를 바꿔보고 싶다"던 생각을 내려놓고 한발 물러섰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타격 코치를 그만둘 때는 "사실상 강등"이라고 쿨하게 인정했고, 포수 조련에 집중했다. 

▶ 두산에서 찾은 희망, 신고 선수 출신의 무명 포수 최재훈 

이 때부터 오죽하면 '이토는 (최)재훈이 하고 만 논다'는 말이 나왔을까. 이토 코치는 최재훈에게 애정을 쏟았다. 때론 따끔하게 혼냈고, 때론 덕아웃에서도 장난을 치며 살갑게 지냈다.

"너에게 전부 힘을 쏟을 것"이라면서 "내가 갖고 있는 포수에 관한 것을 3분의 1은 꼭 전수 하겠다"고도 했다. 그럼 최재훈은 "모두 뺐겠다"며 스스럼없이 대꾸하면서 이토를 졸졸 따라다녔다. 

이토는 최재훈에게 포수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초 체력 뿐 아니라 경기를 보는 방법, 볼 배합하는 요령, 타자와 수 싸움하는 법, 사인 내는 법 등에 대해 두루 지도했다. 한국 야구와 일본 야구의 차이 탓에 벽에 부딪히면 조목조목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최재훈은 잘 따라 했다. 어느 날 이토 코치는 최재훈을 라커룸으로 불러 "홈런을 맞은 것은 너의 실수"라고 날 선 지적을 한 뒤 "반성해"라는 말만 던지고 돌아섰다. 이토 코치가 야속하고 무서웠지만 곧 훌훌 털어냈다. 다음 훈련 때는 다시 웃는 얼굴로 찾아가 이토 코치의 지도에 따라 비지 땀을 흘렸다. 

최재훈은 한 때 "나는 주전감도 아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며 회의에 빠졌다. "야구를 계속해야 하나"하며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토가 남긴 한마디, "너는 나를 뛰어 넘을 선수" 

그러나 이토 코치를 만나 "너는 나를 뛰어 넘을 선수"라는 격려를 받았다. 자신감이 생겼고, 당당함을 알게 됐다. 또 "실수는 털어버리고 담담하게 야구해라, 항상 겸손해야 더 잘 할 수 있다"는 조언을 마음 속 깊이 새겨 놓았다.

최재훈은 이토를 만나 포수로서 생각하는 방법을 바꿨다. 바꾼 생각은 이제 그라운드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올해 '가을 야구'에서 화려하진 않지만 가장 소중한 별로 자리 잡았다. 

현해탄 건너 일본에서도 '가을 야구'가 한창이다. 이토 롯데 감독도 최재훈의 소식을 듣게 되면 환한 미소를 머금을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똑같이 땀 흘리며 쌓아 온 '사나이의 정과 약속'을 뜨겁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리라.

한국아이닷컴 이창호기자 chang@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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