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5일 일요일

오승환 오보 사태, 한국 야구史를 스스로 부정하는가?

출처: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2713165
2013-12-15
CBS 이진성 프로듀서

오승환 오보 사태, 한국 야구史를 스스로 부정하는가?

오승환 집단 오보 사태를 계기로, 일제강점기 ‘야구계의 손기정’은 나몰라라 하는 언론 그리고 우리 야구계 및 체육계의 잘못된 역사인식과 무지에 대한 따끔한 질타가 나왔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는 14일 CBS 라디오 <주말 시사자키 윤지나입니다>(FM 98.1MHz. 18~20시)에 출연해 “모든 언론이 ‘한신의 78년 역사에서 한국선수 영입은 오승환이 처음’이라는 집단 오보 사태를 냈는데, 이것은 단순한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라고 넘겨서는 안 될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 평론가는 “지난 4일 오승환 선수의 일본 한신 타이거스 입단식에서 나카무라 단장이 ‘한신의 78년 역사에서 한국선수 영입은 오승환이 처음’이라는 잘못된 발언을 했는데, 우리는 모든 언론이 이것을 그대로 인용해서 보도했을 뿐 아니라, 야구계와 체육계 어디서도 정정을 요구하거나 문제 삼는 이들이 없었다”면서 “이것은 역사의식을 결여한 명백한 오보 사태”라고 꼬집었다. 

그는 그 근거로 “우리에게는 이미 1938년에 한신 타이거스 구단에 스카우트돼서 조선의 혼을 던졌던 박현명이라는 투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짚은 뒤 “박현명은 조선의 야구 스타였고, 당시에 동아일보가 조선야구의 보물인 명투수 박현명군이 타이거스 구단에 입단한다고 보도할 정도로 조선인들의 가슴에 뿌듯함을 안겨줬던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신 타이거스 단장이 이번에 박현명 선수를 무시하고 오승환 선수를 최초의 한신 구단 입단 선수라고 소개한 것은, 단순한 무지의 실수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역사관 때문일 수도 있다”면서 “1938년은 1937년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 창씨개명 등 민족말살정책이 본격화되기 시작하던 때이기 때문에, 일본이 손기정을 한국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듯 1938년 입단했던 박현명 역시 한국인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본인 구단장이야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라며 “일본 한신의 구단장이 만약 식민사관에 입각해 박현명 선수를 한국인 선수로 보지 않고 발언한 것이라면, 우리 언론들뿐 아니라 야구계와 체육계까지 그들의 잘못된 사관을 걸러내지 못한 채 우리 야구 역사를 스스로 부정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번 사태에서 안타까운 부분은, 대한야구협회나 KBO에서 기록을 관리하는 이들 그리고 대학이나 체육계, 야구계에서 체육사를 공부한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라면서 “야구 기자라고 해서 야구를 모두 다 안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여기서 중요한 것이 야구계와 체육계 전문가들의 역할인데, 잘못된 보도들이 쏟아진 후에도 아무도 잘못을 지적하지 않았고, 기자들의 정정보도도 나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최 평론가는 “우리가 박현명을 잊지 말아야 될 이유는, 일제강점기뿐만이 아니라 해방 이후에도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면서 중요한 기록들을 갈아치운 한국인 선수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힌 뒤 “일본프로야구에서 최초의 퍼펙트게임 기록을 세운 주인공도 이팔룡이라는 조선인 투수였다. 1942년에 요미우리에 입단해서 14년간 활약했는데 통산 방어율 1위, 통산 승률 1위를 기록하면서 당대의 일본프로야구를 휩쓸었던 분”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일본프로야구 통산 최다승의 주인공인 가네다 마사이치나 통산 최다안타 주인공인 하리모토 이사오가 김경홍과 장훈이라는 재일교포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밝힌 뒤 “해방 이후에 일본에서 활약하면서 나중에 귀화했던 분은 한국계 일본인인 일본 국적으로 봐야 하겠지만, 박현명처럼 조선에서 일본으로 스카우트됐다가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인물은 명백한 한국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한국야구의 저변이 엷네, 선수가 부족하네 하면서도 WBC에서 준우승하고 올림픽에서도 우승을 하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우리 야구 역사 저력의 반영”이라며, “박현명 같은 인물이 무시되거나 부정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역사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문제 삼았다. 

최 평론가는 “이번 오승환 집단 오보 그리고 정정 보도 자체 역시 전무했던 이번 사태를, 우리 스포츠 역사를 다시 소중하게 돌아보며 잘못된 역사관을 걷어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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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이진성 프로듀서

2013년 11월 20일 수요일

한신 포수, 최고 속도 2루 송구 타임 1.71초 놀랍다

출처: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311200100194810011720&servicedate=20131120
2013-11-20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사진캡처=일본야구기구

야구판에서 대개 포수의 강견 조건으로 포구 이후 홈에서 2루까지의 송구가 2초 이하로 이뤄질 때를 말한다. 야구장 규격을 보면 홈에서 2루까지의 거리는 38.79m다. 

간발의 차이로 생사가 갈리는 도루를 차단하기 위해선 포수는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2루를 향해 공을 뿌려야 한다. 잘 잡는 건 기본이고 낮고 빠르게 송구해야 한다. 1루와 2루 사이는 27.4m다. 

2루 송구가 숙달되지 않을 경우 포수의 도루 저지율이 2할대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2루 송구를 잘 하기 위해선 어깨 근육은 물론이고 팔과 손목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주문한다. 또 스피드 이상으로 정확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일본 스포츠전문지 스포츠닛폰이 한신 타이거즈의 젊은 포수 아즈하타 신야(25)가 포구 이후 2루 송구 타임을 측정한 결과, 1.71초를 기록했다고 20일 보도했다. 아즈하타는 2012년 드래프트 4순위로 한신 유니폼을 입었다. 

이 신문은 아즈하타의 기록이 야구계 최고 속도라고 평가했다. 아즈하타의 종전 개인 최고 기록은 1.78초였다고 한다. 

이번 기록은 한신의 마무리 훈련인 아키 캠프에서 배터리 코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졌다. 그는 "실전이 아닌 연습 과정에서 스피드를 빠르게 하기 위해 던졌는데 내 기록을 경신했다"고 말했다. 

일본 야구에선 오릭스의 포수 사토가 1.79초로 빠른 축에 속한다. 세이부의 스미타니는 1.9초대다. 

한신의 야마다 코치는 "송구 속도는 재는 위치에 따라 변할 수 있다. 하지만 포수가 강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이다"고 말했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2013년 11월 17일 일요일

[토요판 커버스토리]프로배구 ‘멘털 고수’ 삼성화재 팀의 일상 보니

출처: http://news.donga.com/Main/3/all/20131116/58930363/1
2013-11-16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멘붕’ 이길 비법 있다]
야참으로 라면 금지… 늦은밤 휴대전화 금지
‘고교팀’ 놀림 받지만… 6연속 우승 승승장구


‘코트 위의 제갈공명’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은 평소 기본 지키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동아일보DB

오전 6시 반. 잠에서 깨자마자 체중계에 올라선다. 간밤에 몰래 치킨이라도 시켜 먹은 날이면 가슴을 졸여야 한다. 기준 체중보다 500g이 더 늘거나 줄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간식으로 라면은 절대 불가. 취침을 앞둔 오후 10시 50분에는 휴대전화도 내놓아야 한다.

다이어트 합숙소의 살풍경이 아니다. 프로배구 삼성화재 선수단의 하루 일과의 처음과 끝이다. 이 원칙을 만든 사람은 ‘코트 위의 제갈공명’으로 불리는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58)이다.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는 프로에서는 보기 드문 원칙이다. 

신 감독은 “밤에 라면을 먹으면 다음 날 훈련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 휴대전화도 같은 맥락이다. 늦은 밤 친구와 통화하다 잠을 못 자면 몸 상태가 좋을 리 없다. 좋은 생활이 좋은 훈련과 결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다른 팀 선수들은 우스갯소리로 삼성화재를 ‘고교 팀’이라고 놀린다. 하지만 이 팀의 성적은 놀랍다. 신 감독은 1995년 삼성화재 창단 이후 19년째 같은 팀을 맡으면서 ‘고교 문화’의 최강 프로팀으로 이끌었다. 2005년 프로 출범 이후 통산 7회 우승. 지난 시즌까지 6연패를 이뤘다.

명장(名將)끼리는 통하는 걸까. ‘만수’(萬手·1만 가지 지략을 갖고 있다고 해서 얻은 별명)로 불리는 프로농구 모비스 유재학 감독의 스타일도 비슷하다. 불편하더라도 선수들이 기본에 충실하기를 주문한다. 그는 선수들이 약속 시간에 늦는 꼴을 못 본다. 고참이든 외국인 선수든 늦으면 가차 없이 버리고 출발한다. 식사를 할 때도 선수단이 함께 이동해 다 같이 한다. 유 감독은 “팀은 작은 사회다. 그 안에서 인간관계와 협동, 배려를 배운다. 기량은 나중 문제고 건강한 사회인으로서 기본이 먼저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모비스 주장 양동근은 유 감독의 ‘판박이’다. 양동근은 동료와 코칭스태프에게 언제나 깍듯하다. 자기관리는 더욱 칼 같다. 프로 10년 차인 그는 신인 시절부터 농구 일기를 써왔다. 자기계발을 위해 틈틈이 영어 공부도 한다. 그의 숙소 벽면에는 지금도 농구 관련 전술과 명언이 적힌 쪽지가 붙어 있다. 유 감독 밑에서 국내 최고의 가드로 거듭난 양동근은 우승 반지만 3개(2006∼2007, 2009∼2010, 2012∼2013시즌)를 모았다.

명장이 말하는 성공의 조건은 단순하다. 운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운동만 잘해서는 안 된다. 평소 생활에서 기본을 지키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런 원칙을 최초로 스포츠에 도입한 인물이 고 존 우든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농구 감독이었다. 우든 감독은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이 2000년 실시한 ‘20세기 가장 위대한 스포츠 지도자’ 설문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로 뽑혔다. 우든 감독은 2010년 100세를 일기로 타계했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최고의 지도자로 존경받고 있다. 우든 감독이 전설로 남은 것은 승리보다 과정을 중요시한 최초의 스포츠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우든 감독은 초등학교 졸업 때 아버지 조슈아 휴 우든으로부터 인생의 가치가 담긴 교훈을 선물 받았다. 아버지가 건넨 2달러짜리 우편엽서에는 
△자신에게 진실하라
△남을 도와라
△매일을 최고의 날로 만들어라
△좋은 책의 내용을 깊이 소화하라
△우정을 예술 작품처럼 아름답게 가꿔라
△만일에 대비하는 계획을 항상 세워둬라
△기도하고 모든 축복에 감사하라
는 ‘7계명’적혀 있었다. 훗날 우든 감독은 이를 바탕으로 ‘성공을 위한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성공 피라미드를 밑받침하는 건 평소 생활이다. 우든 감독의 피라미드는 수많은 스포츠 스타와 지도자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2013년 11월 13일 수요일

'75억 FA 초대박' 강민호, 천운을 타고난 사나이

http://osen.mt.co.kr/article/G1109724567
2013.11.13
OSEN=이상학 기자

[OSEN=이상학 기자] 롯데 포수 강민호(28)가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고액 FA로 초대박을 쳤다. 천운을 타고난 사나이답게 역사를 썼다. 

강민호는 13일 롯데 구단과 4년 총액 75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11일 첫 협상 때부터 두 번이나 만남을 갖는 등 충분한 교감을 이뤘고, 13일 두 번째 협상에서 금액까지 합의하며 계약 발표에 이르렀다. 지난 2004년 11월 현대에서 삼성으로 옮기며 4년 총액 60억원을 받은 심정수의 최고액 기록도 9년 만에 경신했다. 

강민호가 이처럼 FA 초대박을 이룰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실력이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역사를 쓸 수 없다. 하지만 강민호의 대박에는 '운'이라는 요소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앞으로 강민호 같은 사례가 두 번 다시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그는 천운을 타고난 사나이로 불릴 만하다. 


제주도 출신으로 포철중-포철공고를 거친 강민호는 지난 2004년 신인 드래프트 2차 지명에서 3라운드 전체 17순위로 롯데에 지명됐다. 당시 고졸 포수로 가능성을 인정받은 그는 비교적 높은 순위에 롯데로부터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계약금은 9000만원으로 특급 유망주 수준은 아니었다.

2004년 프로 데뷔 첫 해 1군에서는 3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당시 롯데에는 최기문이라는 공수겸장 포수가 주전으로 뛰고 있었다. 강민호의 자리는 백업이었다. 하지만 강민호는 최기문으로 인해 기회를 잡았다. 최기문이 팔꿈치 부상을 당하며 전열에서 이탈했고, 강민호에게 갑작스럽게 주전 기회가 온 것이다. 

강민호는 프로 2년차였던 2005년 주전과 백업을 넘나들며 104경기를 뛰었다. 20살 어린 포수가 프로 1군에서 100경기 이상 뛰는 건 흔치 않은 기회. 최기문이 수술 후 재활에 들어간 2006년부터 롯데 안방은 강민호의 차지가 됐다. 2006년에는 126경기 모두 출전하며 가능성을 펼쳐보이기 시작했다. 포수로서 경험이라는 최고 자산을 쌓은 시기였다. 

2007년부터 공수겸장 신예 포수로 확실하게 자리 잡은 강민호에게 두 번째 행운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었다. 그는 올림픽에서 진갑용의 백업 포수로 시작했으나 그가 부상을 당하자 주전 마스크를 쓰고 금메달을 견인했다. 결승전 막판 심판 볼 판정에 격분에 글러브를 집어던지는 장면은 유명했다. 당시 금메달로 그는 20대 선수의 가장 큰 고민인 병역 문제를 해결했다. 

병역이 해결된 20대 주전 포수는 강민호가 유일했다. 이미 그때부터 강민호의 FA 대박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2010년 타율 3할5리 23홈런 72타점으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찍은 강민호는 그러나 2011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공격 지표에서 꾸준히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투수리드와 수비력에서 향상을 이루며 보완을 이뤘고, FA 시장에서 최고 대우를 받기에 이르렀다. 

FA 시장 상황도 강민호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두산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팀들이 포수 고민을 안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포수 세대교체가 더뎠고, 강민호를 탐내지 않는 구단이 없었다. 게다가 롯데는 지난 2년간 이대호 홍성흔 김주찬 등 내부 FA들을 모두 놓치며 흥행에 타격을 입었다. 강민호마저 빠지면 치명타를 입을 게 뻔했다. 

그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롯데는 일찌감치 최고액을 베팅하며 눌러 앉혔다. 강민호는 시장에도 나가지 않았지만, 이미 FA 최대어로 분류돼 최고액에 사인했다. 심각한 포수 품귀 시대와 롯데의 흥행 실패까지 겹치면서 강민호는 FA 사상 최고액 대박을 쳤다. 

waw@osen.co.kr



2013년 11월 1일 금요일

‘신의 한 수’ 보스턴, 오티즈(#34) 영입 후 WS 3회 우승

출처: http://sports.donga.com/3/all/20131101/58609644/2
2013-11-01
동아닷컴 조성운 기자 madduxly@donga.com



[동아닷컴]
‘신의 한 수’란 이런 것일까? 오랫동안 ‘밤비노의 저주’에 시달리던 보스턴 레드삭스는 ‘빅 파피’ 데이빗 오티즈(38)를 영입한 뒤 10년 간 3번이나 월드시리즈 정상에 섰다.

보스턴은 지난달 31일(한국시각) 미국 메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위치한 펜웨이 파크에서 열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6-1로 승리했다.

지난 2007년 이후 6년 만의 정상 등극. 최우수선수(MVP)에는 6경기에서 홈런 2개를 포함해 16타수 11안타 6타점 타율 0.688와 OPS 1.948을 기록한 오티즈가 선정됐다.



오티즈는 지난 2002년 미네소타 트윈스 소속으로 125경기에서 20홈런을 때려냈음에도 불구하고 난데없이 방출 통보를 받았다.

가난한 미네소타는 높지 않았던 오티즈의 연봉마저 부담스러워 했고, 이에 하루아침에 논텐더 신세가 된 것.

이러한 상황에서 오티즈는 당시 보스턴을 이끌던 테오 엡스타인 단장의 구제를 받았고, 2003년 31홈런과 101타점으로 기대에 부응했다.



이후 오티즈는 보스턴이 86년 만에 월드시리즈 정상에 선 2004년 41홈런과 139타점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정상급 타자로 우뚝섰다.

또한 2006년에는 54홈런과 137타점을 기록하며 이 부문 아메리칸리그 선두에 오르며 당시 미네소타의 선택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이어 오티즈는 2007년에도 35홈런을 때려내며 보스턴의 21세기 두 번째 정상 등극에 큰 역할을 했으며, 이번 월드시리즈에서는 MVP까지 따내며 최고의 활약을 했다.

미네소타 시절 거포로 성장할 가능성만 지녔던 오티즈는 보스턴 이적 후 기량이 만개해 지난 11년간 373홈런을 때려냈고, 소속팀을 월드시리즈 정상에 세 번이나 올려놨다.

수많은 전설적인 선수들이 하지 못한 보스턴의 저주 격파. 하지만 보스턴은 오티즈를 영입한 후 10년 간 3번이나 우승하며 21세기 최고 명문 팀으로 거듭났다.

동아닷컴 조성운 기자 madduxly@donga.com



2013년 10월 22일 화요일

연봉으로 살펴본 KS,부자군단 삼성VS고효율 두산

출처: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1257219.htm
2013.10.21
김경윤기자


삼성-두산 KS 주력선수 연봉 비교표 / 스포츠서울

올시즌 9개 구단 연봉 총액 1위를 기록한 삼성과 3위에 오른 두산(55억 1700만원)이 한국시리즈(KS)에 나란히 진출했다. 양 팀 모두 프로야구 9개 구단 평균 금액을 웃도는 자금을 투입했고, 이에 걸맞는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내부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삼성은 고액 연봉자들이 이름값을 했지만 두산은 저연봉 선수들의 활약상이 더 뛰어났다.


◇삼성과 두산, 들인 돈은 비슷했다


삼성은 지난해에 비해 3.7% 오른 67억 1200만원을 투입했다. 9개 구단 중 유일하게 60억원이 넘는다. 최하위 NC(24억 5100만원)에 비해 2배가 넘는 인건비를 지불했다. 삼성의 선수 평균 연봉은 1억 2204만원이다. 이 역시 1위다. 두산은 55억 1700만원(3위)을 투자했다. 지난해에 비해 1.4% 올랐다. 두산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1억 31만원으로 4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KS 엔트리에 합류할 주요 주전 선수들의 연봉을 비교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삼성의 예상 출전 선수들의 총 몸 값은 두산의 2배가 넘는다. 삼성은 정확한 투자를 했고, 두산은 저연봉 선수들의 투혼이 빛났다고 할 수 있다.


◇저연봉 선수들이 활약한 두산


두산은 적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의 기여도가 높았다. 대표적인 선수가 유희관이다. 그의 올 시즌 연봉은 2600만원. 프로야구 최저연봉(2400만원)과 큰 차이가 없다. 그는 이번 KS에서 에이스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투수 변진수(4500만원), 오현택(3000만원), 윤명준(2400만원)이 예상 밖의 깜짝 활약을 펼쳤고, 포수 최재훈(3500만원), 야수 김재호(7000만원), 오재일(5000만원), 최주환(5000만원), 민병헌(5200만원)도 자신의 몸값을 뛰어 넘는 역할을 했다. 많은 돈을 받고도 걸맞지 않은 성적을 내는 선수들도 있다. 김선우(5억원), 정재훈(3억5000만원)은 포스트시즌(PS)에서의 활약이 미미했다. 김현수(3억1000만원)는 부상여파로 KS 초반 선발 출전이 불투명하고 김동주(7억원), 이혜천(2억원)은 아예 PS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고연봉 선수들에게 기대하고 있는 삼성


삼성은 고연봉 선수들이 이름값에 걸맞는 성적을 냈다. 이번 KS에서도 고연봉자들의 어깨가 무겁다. 끝판왕 오승환(5억5000만원)을 비롯해 10승 트리오 배영수(4억5000만원), 장원삼(4억원), 윤성환(3억원), 불펜핵심 안지만(3억원), 권혁(2억 2000만원)이 대표적이다. 주전 야수들의 몸값도 ‘억소리’가 난다. 이승엽(8억원), 진갑용(4억원), 박한이(3억5000만원), 박석민, 최형우(이상 2억8000만원) 등 5명의 야수가 받는 총 연봉이 전 선수단 연봉의 30%가 넘는다. 이번 KS에서 뛸 것으로 예상되는 저 연봉 선수들도 있다. 지난해 부상 여파로 대폭적인 연봉 삭감의 아픔을 겪은 채태인(5000만원), 배영섭(8500만원)과 정형식(6000만원)이 있다. 부상을 입은 김상수와 조동찬을 대신해 정병곤(2700만)과 김태완(7000만원)이 뛴다. 마운드에선 심창민(6000만원)이 비교적 적은 연봉을 받는다.


김경윤기자 bicycle@sportsseoul.com



[이창호의 야구, 야구인]아버지와 아들, 이토와 최재훈

출처: 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1310/h2013102116224391670.htm
2013.10.21
이창호기자

이토를 만나 야구 보는 눈을 바꾸다, 가을의 지배자가 되다


두산 포수 최재훈이 홈플레이트를 지키고 앉아 야수들에게 투 아웃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두산 베어스 제공

"보는 사람들마다 아버지와 아들 같다고 했어요."

김태룡 두산 단장은 올해 '가을 야구'에서 한국시리즈 진출의 일등공신으로 자리매김한 포수 최재훈(24)의 이야기가 나오자 서슴지 않고 말한다. 올해부터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의 사령탑을 맡아 라쿠덴과 퍼시픽리그 클라이막스 파이널 스테이지를 치르고 있는 이토 쓰토무(伊東 勤·51) 전 두산 수석코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최재훈은 이토 코치가 생각날 때면 "함께 있을 때 아버지 같은 존재였고, 저 역시 아버지처럼 따랐어요. 그 때는 내가 아들이 된 느낌이었죠"라며 털어놓곤 한다.

'아버지와 아들-'

두산의 주전 포수로 발돋움하고 있는 최재훈의 성장 스토리 속에서 이토 코치의 역할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선수 생활을 계속해야 하나, 아니면 그만 두고 다른 삶을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시절, 정신적 멘토였을 뿐 아니라 힘든 시간을 이겨내게 해준 길잡이였다.

▶ 두산의 '가을 야구'를 지배하는 포수 최재훈

최재훈은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LG와의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동안 9게임에 모두 출전했다. 지난 8일 준플레이오프 1차전과 17일 플레이오프 2차전 때 선발에서 빠진 뒤 교체 멤버로 출전했을 뿐이다. 나머지 7게임은 당당하게 주전으로서 홈플레이트를 지켰다. 

올해 포스트시즌 9게임에서 25타수에 홈런 1개를 포함한 7안타로 타율 2할8푼과 2타점, 희생타 3개, 몸에 맞는 공 2개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 12일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 때는 0-1로 뒤진 6회말 1사 1루에서 밴 헤켄으로부터 좌중간 외야 관중석에다 역전 결승 2점포를 날려 벼랑 끝에 몰린 곰에게 기사회생의 기회를 안겨 주었다. 

최재훈은 그동안 양의지보다 타격이 약해 백업 멤버에 머물렀지만 이 한방으로 방망이도 살아 있음을 보여줬다.

최재훈의 진짜 능력은 공격보다 수비에 있다. 천부적으로 강한 어깨에서 쏘아대는 2루 송구 뿐 아니라 정확하고 과감한 판단력으로 상대 작전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하고, 공격의 맥을 끊어내기도 한다. 

20일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두산이 1-0으로 아슬아슬 앞서가던 3회초 무사 1루에선 9번 윤요섭의 투수 앞 보내기 번트 때 빠르고, 크고 분명한 동작으로 타구를 잡은 유희관이 매끄럽게 2루 송구를 할 수 있도록 콜 플레이를 했다. 중전 안타로 출루했던 손주인은 2루에서 포스 아웃. LG는 동점 기회를 만드는데 실패했다. 

4회초 무사 1, 2루에서도 5번 이병규의 투수 앞 보내기 번트가 나오자 주저하지 않고 3루 송구를 지시해 2루 주자 이진영을 잡아냈다. 상대의 추격 의지에 찬물을 끼얹었다. 포수가 단순하게 투구의 공만 받아주는 역할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그라운드를 지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보여줬다. 

투수 리드와 볼 배합도 만점이었다. 타자들의 고정된 머리 속 계산을 역으로 이용하면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최재훈은 무명이다. 

2008년 덕수고를 졸업했지만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하는 팀이 없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저 그런 선수로 여겼다. 결국 두산에 신고 선수로 입단했지만 주목 받지 못하다 2010년 경찰청에 복무하면서 야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2011년 퓨처스리그 북부리그에서 타율 3할3푼3리와 홈런 16개, 타점 79개를 기록하면서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리고 2012년 두산에 돌아와 세이부 감독에서 물러나 쉬고 있다가 한국 무대를 밟게 된 명포수 출신의 이토 코치를 만나 잠재 능력을 끌어올렸다. 

▶ 일본 야구의 '살아 있는 전설' 이토, 한국에서의 좌절 

이토 코치는 1982년 일본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1위로 세이브에 입단해 22년 동안 현역 생활을 하는 동안 11차례 포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고, 퍼시픽 리그 우승 14회와 8번 재팬 시리즈 우승을 이끌어낸 '살아 있는 전설'이다. 

2004년 은퇴와 함께 세이부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고 '1점이 소중한 야구', '1점을 지키는 야구'를 강조하면서 그 해 12년 만에 재팬 시리즈 우승까지 일궈냈다. 그러나 그 후 계속된 성적 부진으로 2007년 감독에서 물러나 해설가로서 야구의 폭을 넓히다 두산에서 '러브 콜'을 하자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낯선 땅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토는 두산의 수석코치로서 성공하지 못했다. 2012년 큰 꿈을 안고 한국 생활을 시작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야구와 현실 속의 한국 야구와는 차이가 컸다. 우여곡절을 겪었다. 수석 코치로 출발해 시즌 도중 수석 코치와 타격 코치를 겸직하다 다시 이름 뿐인 수석코치로서 남아야 했다. 

결국 "한국 야구를 바꿔보고 싶다"던 생각을 내려놓고 한발 물러섰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타격 코치를 그만둘 때는 "사실상 강등"이라고 쿨하게 인정했고, 포수 조련에 집중했다. 

▶ 두산에서 찾은 희망, 신고 선수 출신의 무명 포수 최재훈 

이 때부터 오죽하면 '이토는 (최)재훈이 하고 만 논다'는 말이 나왔을까. 이토 코치는 최재훈에게 애정을 쏟았다. 때론 따끔하게 혼냈고, 때론 덕아웃에서도 장난을 치며 살갑게 지냈다.

"너에게 전부 힘을 쏟을 것"이라면서 "내가 갖고 있는 포수에 관한 것을 3분의 1은 꼭 전수 하겠다"고도 했다. 그럼 최재훈은 "모두 뺐겠다"며 스스럼없이 대꾸하면서 이토를 졸졸 따라다녔다. 

이토는 최재훈에게 포수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초 체력 뿐 아니라 경기를 보는 방법, 볼 배합하는 요령, 타자와 수 싸움하는 법, 사인 내는 법 등에 대해 두루 지도했다. 한국 야구와 일본 야구의 차이 탓에 벽에 부딪히면 조목조목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최재훈은 잘 따라 했다. 어느 날 이토 코치는 최재훈을 라커룸으로 불러 "홈런을 맞은 것은 너의 실수"라고 날 선 지적을 한 뒤 "반성해"라는 말만 던지고 돌아섰다. 이토 코치가 야속하고 무서웠지만 곧 훌훌 털어냈다. 다음 훈련 때는 다시 웃는 얼굴로 찾아가 이토 코치의 지도에 따라 비지 땀을 흘렸다. 

최재훈은 한 때 "나는 주전감도 아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며 회의에 빠졌다. "야구를 계속해야 하나"하며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토가 남긴 한마디, "너는 나를 뛰어 넘을 선수" 

그러나 이토 코치를 만나 "너는 나를 뛰어 넘을 선수"라는 격려를 받았다. 자신감이 생겼고, 당당함을 알게 됐다. 또 "실수는 털어버리고 담담하게 야구해라, 항상 겸손해야 더 잘 할 수 있다"는 조언을 마음 속 깊이 새겨 놓았다.

최재훈은 이토를 만나 포수로서 생각하는 방법을 바꿨다. 바꾼 생각은 이제 그라운드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올해 '가을 야구'에서 화려하진 않지만 가장 소중한 별로 자리 잡았다. 

현해탄 건너 일본에서도 '가을 야구'가 한창이다. 이토 롯데 감독도 최재훈의 소식을 듣게 되면 환한 미소를 머금을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똑같이 땀 흘리며 쌓아 온 '사나이의 정과 약속'을 뜨겁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리라.

한국아이닷컴 이창호기자 chang@hankooki.com



[KS] ‘일등공신’ 최재훈, “저 아직도 멀었어요”

출처: http://osen.mt.co.kr/article/G1109709557
2013.10.22
OSEN= 박현철 기자

[OSEN=박현철 기자] “제가 잘한다고 생각지 않아요. 제가 먼저 그런 생각을 갖게되면 결국 제 하락세를 스스로 만드는 꼴이 될 테니까요”.

위력적인 도루 저지와 허를 찌르는 투수리드. 준플레이오프 승부처 역전 결승포에 플레이오프에서는 크로스플레이에서 주자를 피하지 않는 투혼으로 팬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그러나 더욱 높이 평가받을 만한 부분은 바로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르는 투지와 겸손함이다. 5년 만의 팀 한국시리즈 진출에 결정적 역할을 한 포수 최재훈(24, 두산 베어스)은 “저 아직 멀었어요”라며 더욱 고개를 숙였다.

2008년 덕수고를 졸업하고 두산에 신고선수 입단한 최재훈은 2010~2011년 경찰청 2년 복무 동안 유승안 감독 등 경찰청 코칭스태프의 지도를 받으며 1군에 걸맞는 선수로 자라났다. 지난해와 올 시즌 주전 양의지를 보좌하는 백업 포수로 경험을 쌓은 최재훈은 후반기 허리 통증과 체력 고갈로 인해 흔들린 양의지를 대신해 포스트시즌 마스크를 쓰고 있다.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5경기서 2할9푼4리 1홈런 2타점을 기록한 최재훈은 LG와의 플레이오프 4경기서 2할5푼의 타격 성적을 남겼다.



최재훈이 돋보인 부분은 바로 수비 능력. 상대 타자들의 약점을 찌르는 리드로 두산의 큰 힘이 된 최재훈은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서는 도루 저지 능력으로 넥센 주자들의 그린라이트 특권을 대폭 줄였다. LG와의 플레이오프서도 좋은 수비를 보여줬는데 특히 3차전 정성훈과 이병규의 안타 때 홈으로 쇄도한 주자들과의 충돌에도 공을 놓지 않고 아웃을 이끄는 투혼을 발휘했다. 3차전 5-4 신승을 거둔 뒤 최재훈은 부축을 받으며 덕아웃으로 향했으나 이튿날에도 선발 포수로 마스크를 쓰고 5-1 승리에 기여했다.

포스트시즌은 팬들과 미디어의 집중도 차이가 확실히 다르다. 실수를 하면 엄청난 비난 공세를 받지만 좋은 플레이에는 칭찬의 정도가 굉장히 높아진다.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팀의 2연속 업셋을 이끈 최재훈을 향한 야구 관계자들의 팬들의 극찬이 이어지는 가운데 선수 본인은 “아직도 멀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저는 제가 지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스스로 ‘나 잘하고 있어. 이 정도면 잘 하는 거야’라고 생각해버리면 결국 기량 성장폭과 페이스의 저하를 제 스스로 자초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아직 멀었어요”.

예전부터 최재훈은 야구 욕심이 컸고 또 그만큼 훈련량도 대단했다. 지난해 두산 수석코치를 맡았던 이토 쓰토무 현 지바 롯데 감독은 고마키 유이치 불펜코치와 함께 최재훈을 괴롭히는 듯이 맹훈련을 시켰다. 그냥 괴롭히는 정도가 아니라 이러다 울겠다 싶을 정도의 강훈련이었다. 그러나 최재훈은 꾹 참고 이를 모두 소화했다. 이토 감독은 최재훈을 괴롭히며 웃으면서도 “저 녀석은 훗날 한국의 국가대표 포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재훈을 칭찬했다.

올 시즌도 마찬가지다. 이토 감독이 블로킹, 도루 저지, 크로스 플레이 등 포수로서 기본적인 수비 능력을 강조했고 현재 두산 배터리 코치를 맡고 있는 강성우 코치는 상대 약점을 찌르는 데 대해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 수준이다. 최재훈은 강 코치의 지도에 따라 상대를 괴롭히는 포수로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원래 경기 중 고생이 많고 훈련 강도도 높은 포수 포지션이지만 최재훈은 군말없이 훈련들을 모두 소화했고 지금은 팀을 살리는 숨은 영웅이 되었다.

야구 인기가 높아지면서 젊은 선수가 자신을 둘러싼 팬들의 응원과 사랑에 섣불리 부화뇌동되고 더 클 수 있는 선수가 아쉬운 성장세를 보이는 모습도 최근 들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 야구 원로는 “팬들이 좋아한다고 그에 만족하고 자만하는 선수가 많아지면 결국 이는 리그의 치명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최재훈은 어깨를 으쓱하기보다 “난 더 해야 한다”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farinelli@osen.co.kr


2013년 10월 21일 월요일

두산 최재훈, 홍성흔과 추억 간직한 채 꿈 키워

출처: http://sports.donga.com/SPORTS/3/all/20131020/58343484/3
2013-10-21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트위터 @kimdohoney



두산 최재훈, 홍성흔과 추억 간직한 채 꿈 키워

올 시즌 초 어느 날이었다. 두산 홍성흔(37)이 라커룸에 앉아 있을 때, 최재훈(24)이 살며시 다가왔다. 최재훈은 지난해까지 롯데에 몸담다 친정팀으로 돌아온 대선배에게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쑥스러운 듯 사진 한 장을 불쑥 내밀었다. 그가 내민 빛바랜 사진 한 장에는 둘의 13년 전 추억이 깃들어 있었다.


2000년 5월 5일이었다. 지금은 지명타자로 뛰고 있지만 한때 국가대표 포수로 이름을 날렸던 홍성흔은 두산의 안방마님으로서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그의 곁에는 어린이날 행사를 위해 짝이 된 한 초등학교 야구선수가 서 있었다. 홍성흔의 머릿속에선 이미 지워진 기억이었지만, 그 초등학교 꼬마 어린이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한 손에 풍선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홍성흔의 손을 꼭 잡고 식전행사를 지켜보고 있던 그 소년이 바로 최재훈이었다. 최재훈은 그날 이후 이 사진을 항상 가슴 속에 간직하며 ‘홍성흔 같은 포수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홍성흔은 13년 전 추억을 되살려준 최재훈이 무척 고맙고 같은 팀에 선수로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 그 사진을 자신의 휴대폰 카메라에 다시 담았다.

최재훈은 고교 졸업 후 신고선수로 두산에 입단해 고난의 시절을 거쳐 올 포스트시즌에서 자신의 이름 석자를 팬들에게 제대로 각인시키고 있다.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준PO)에서 맹활약을 펼친 그는 LG와의 PO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한껏 증명하고 있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트위터 @kimdohoney



2013년 9월 29일 일요일

당신이 몰랐던 홈런의 비밀

출처: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issue&mod=read&issue_id=620&issue_item_id=8815&office_id=314&article_id=0000000018
2013-09-25
기사제공 : 송민구 칼럼


(명실공히 국내 최고의 거포로 성장한 박병호)

홈런은 “야구의 꽃”이라 불린다. 팬들에게는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을 주고, 상대팀에게는 스윙 한번으로 비거리 만큼이나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홈런이 많았던 해에는 항상 관중이 많았으며, 홈런 타자들의 경기에는 항상 관중이 구름같이 몰려든다. 일례로 2003년에는 팬들이 이승엽의 홈런공을 잡기 위해 잠자리 채 까지 사서 야구장에 입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홈런에 대해서, 기록에 나타나는 숫자 외에 크게 알려진 것은 없다. 간간이 어떤 코스의, 또는 어떤 구종에서 홈런이 잘 나온다는 말을 들을 수는 있었으나, 자세한 수치를 내놓는 이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래에서는 지금까지 잘 알수 없었던 ‘홈런’에 대한 진실을 파헤쳐 본다.

1.좌타자와 우타자, 어느 방향의 홈런이 많을까?
힘이 좋은 타자들은 밀어쳐서도 공을 외야 펜스 너머로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나, 리그에서 그정도의 힘을 가진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홈런의 대부분은 타자의 방향, 즉 우타자의 경우 좌익수쪽, 좌타자의 경우 우익수쪽으로 가게 마련. 이것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우타자들이 친 홈런의 대부분이 좌익수쪽(73.3%)으로 갔으며, 좌타자들이 친 홈런의 대부분은 우익수쪽(71.1%)으로 갔다. 즉 밀어쳐서 나오는 홈런이 있을 수는 있으나, 대부분의 홈런은 그렇지 않다는 것. 최형우의 홈런공을 잡고 싶다면 우익수쪽, 박병호의 홈런공을 잡고 싶다면 좌익수쪽 자리를 잡아 앉아 있는것이 조금이나마 확률을 높일 수 있는 행동이라 할 수 있겠다.

2,변화구와 직구, 어디서 홈런이 많이 나올까?
변화구와 직구, 시속 160km의 패스트볼과 시속 100km의 커브볼은 홈 플레이트에 도달하기 까지 0.25초 정도의 시간차이를 보인다. 160km 패스트볼이 홈플레이트 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0.38초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큰 시간차가 있는 셈. 그래서 ‘변화구를 칠 때의 홈런수가 직구를 칠 때보다 많을 것이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과연 그러할까. 아래는 2013시즌 메이저리그의 전체 홈런을 투수의 구속 별로 나눈 것이다.


위 그래프에 나타나는 대로, 시속 140km를 넘는 공의 비율이 그 이하에 비해 월등히 많다. 수치로 따지면, 140km이상의 공을 쳐 홈런이 된 공의 비율이 61.2%정도. 140km이상의 공 중에서도 물론 슬라이더, 스플리터 같은 공들이 있을 수 있기에, 한국에서 ‘직구’라 통용되는 포심, 투심 패스트볼만을 따로 묶어 ‘직구’라는 항목으로, 그리고 나머지는 ‘변화구’로 묶어 그 비율을 조사해 보았다.
홈런 중 ‘직구’와 ‘변화구’의 비율
직구 - 51.9%  / 변화구 - 48.1%
2013시즌 전체 투구수
직구 - 49.1% / 변화구 - 50.9%
전체 투구수 대비 홈런비율
직구 - 0.67% / 변화구 - 0.60%

홈런 중에서의 비율로 따지자면 직구를 쳤을 때의 홈런개수가 변화구를 쳤을 때보다 근소하게 많았다.
하지만 리그 전체에서 직구의 구사비율이 높다면, 이것을 그대로 ‘직구의 홈런 비율이 높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올시즌 전체 투구수에서 직구의 비율을 조사해 보았고, 이에 따른 전체 투구수 대비 홈런의 비율을 다시 계산해 보았다. 그 결과 직구는 1000개당 6.7개, 변화구는 1000개당 6개의 꼴로 홈런이 터져나왔다.(1000개당 6개 정도라 하여 아주 적게 들리지만, 메이저리그 정규시즌동안 투수들이 던지는 공의 총 개수는 약 70만개 정도. 그래서 시즌당 4300~4500개, 경기당 1.7~1.9개의 홈런이 생산된다.)
넓은 의미의 패스트볼(패스트볼의 범주에 스플리터, 커터, 싱커가 포함)로 따지자면 홈런 중 패스트볼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아지지만, 한국적 의미의 ‘직구’와 ‘변화구’로 따지면 둘 사이의 차는 크지 않다는 점. 참고로 코스별 직구와 변화구의 비율은 아래와 같다.


스트라이크존 위쪽에서는 직구를 쳐서 홈런을 만들어낸 비율이 높았으나, 타자의 벨트 아래쪽으로 내려올수록 변화구의 비중이 높았다.

3.정중앙 코스는 홈런의 제물일까
투수들이 왠만해서 던지려 하지 않는 코스. 바로 스트라이크 정중앙이다. ‘실투’로 여겨지는 이 코스는 타자가 좋은 타구를 날리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홈런에 있어서는 약간 다를 수 있는데, 개인의 스윙 궤적에 따라 낮은 공을 선호하는 선수도 있고, 벨트 높이 위쪽의 높은 공을 선호하는 선수도 있다. 아래의 좌/우타자별 전체 홈런 개수를 보자.(그림의 왼쪽이 우타자의 타석, 오른쪽이 좌타자의 타석)


좌우타자 할것 없이, 역시나 정중앙은 홈런의 지름길이다. 정중앙으로 던진 공의 홈런 개수가 가장 많았는데, 흥미로운 것은 좌타자들의 홈런분포이다. 우타자들은 안쪽 코스의 홈런비율이 바깥쪽 보다 높았던 반면, 좌타자들은 그 반대이거나 거의 비슷한 편이었다. 투수들은 좌/우타자 가릴것 없이 바깥쪽 승부를 선호하기에 바깥쪽 코스의 홈런(비율이 아닌) 개수가 많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타자는 안쪽 코스의 홈런 개수가 많았다는 점은 그만큼 메이저리그 장타자들이 당겨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은, 중앙으로 던지면 크게 맞는다는 점.

4.발사 각도는 어느정도의 영향을 줄까
타격은 순간적인 접촉을 통해 공의 운동 방향을 정반대로 바꾸는 운동이기에 굉장히 많은 힘이 필요하다. 게다가 홈런을 치는 경우라면 더욱. 140km로 들어오는 공을 145km로 되받아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임팩트 순간은 0.001초정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홈런은 이러한 ‘되받아치는’ 순간에 더해, ‘적정 발사각’을 요구한다. 아무리 잘 받아쳐 본들, 공이 땅으로 향한다거나 하늘 높이 치솟아 버린다면, 결과는 뻔하다. 내야 뜬공 또는 땅볼. 그래서 타자가 공을 시속 144km로 되받아친다고 가정했을 때, 발사각도에 따른 비거리를 계산해 보았다.(해발 0미터, 온도 24도, 습도 50%를 기준으로 함)

(공을 치는 순간 공의 회전방향이 바뀌면서, 지금까지와 반대의 회전력이 작용하게 되는 관계로 45도의 발사각 보다는 30~35도 사이의 발사각에서 좀더 높은 비거리를 기대할 수 있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 발사각 15도 정도의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는 같은 속도라 해도 멀리 나가지 못한다. 가장 많은 비거리를 기대할 수 있는 발사각은 30~35도 사이이며, 위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 그 차이는 꽤나 크다.
타자가 0.001초의 찰나에 ‘아 이번엔 이공을 33도로 쳐야지’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에 30~35도 사이의 발사각을 보인다면 홈런이 될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고 할 수 있는 것.
참고로, 매 시즌 꼭 한두번은 나오는 ‘라인드라이브성 홈런’, 즉 거의 직선을 그리며 홈런이 되는 타구들이 있는데, 이들은 보통의 타구보다 속도가 현저히 빠르다.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라는 것이 이미 정타를 의미하기 때문에 공의 속도가 빠를 수 밖에 없는데, 발사각 20도로 외야펜스를 3.3초 이내에 넘기는 타구를 만들려면 타격 시점에서 타구의 속도는 시속 110마일, 즉 시속 176km에 육박해야 한다.





2013년 9월 6일 금요일

세이브 포수는 존재하는가

출처: http://futuresball.com/feature/%EC%84%B8%EC%9D%B4%EB%B8%8C-%ED%8F%AC%EC%88%98%EB%8A%94-%EC%A1%B4%EC%9E%AC%ED%95%98%EB%8A%94%EA%B0%80/3272
By 배지헌
8월 1, 2013



“팀을 우승으로 이끈 포수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몇 해 전 최고 포수를 가려달라는 질문에 모 해설가가 한 말이다. 실제로 프로야구 역대 한국시리즈 우승팀을 돌아보면,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뛰어난 안방마님들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가깝게는 2011년과 지난해 삼성의 진갑용부터 현대와 SK에서 왕조를 이룩한 박경완, 1994 LG 2000년대 현대를 우승으로 이끈 김동수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포수의 본분인 탁월한 게임 리딩과 정상급의 수비력은 물론, 타석에서도 중심타선 못지않은 파괴력을 발휘했다. 공수에서 가장 이상적인 조화를 보여준 이들 포수의 활약상은 야구에서 포수가 갖는 중요성을 새삼 확인하게 했다.

반면 어벤저스급 전력을 갖춘 팀도 포수가 흔들리면 우승과는 멀어졌다. 신인이던 이종범에 무더기 도루를 내주며 무너진 1993년의 삼성이 그랬고, 박경완의 공백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2009년의 SK도 한 끗 차로 울었다. 전문가들은 포수가 약하면 우승은커녕 애초에 4강에도 들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4강에 든 삼성, 롯데, SK, 두산은 저마다 확고한 주전 포수를 두고 있었다. 좋은 포수는 강한 팀의 필요조건이자, 보통의 팀을 강팀으로 끌어올리는 힘이 된다. 그래서 포수는 특별하다. 2010년 우승 순간, 에이스 김광현은 박경완에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2년 연속 우승을 이뤄낸 순간, 오승환은 좀처럼 보기 힘든 함박웃음을 지으며 풀쩍 뛰어 진갑용의 품에 안겼다

하지만 박경완, 진갑용 같은 포수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한 야구인은 “박경완 같은 정상급 포수는 10년에 한번 꼴로 나오면 다행”이라 했다. 그만한 재능을 갖춘 포수가 드물기도 하지만, 신인포수가 박경완처럼 데뷔하자마자 꾸준하게 1군에서 출전기회를 얻고 경험을 쌓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공수에서 균형을 갖춘 포수도 좀체 보기 드물다. 대개 공격이 좀 되면 수비가 떨어지고, 수비력이 괜찮은 포수는 타격이 류현진만도 못하다. 그러다 보니 현재 프로야구에서 절반 이상의 팀이 확실한 주전포수 없이 시즌을 치르는 실정이다. 그나마 강민호가 건재한 롯데와 양의지가 버티는 두산, 김태군이 선전하는 NC 정도가 포수 걱정이 덜한 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시즌 뒤 FA가 되는 강민호의 몸값이 역대 최고액을 달성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포수진 운영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전성기 박경완처럼 확실한 주전 포수에 수비력 좋은 백업 포수가 뒤를 받치는 구도다. 이런 경우 감독은 주전 포수를 계속 내보내다 체력 안배가 필요할 때 백업에게 마스크를 씌우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런 완벽한 조합을 만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데 감독들의 고민이 있다. 그래서 포수진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포수 운용법이 등장했다. 가장 대표적인 형태는 전담포수제다. 그날 선발투수와 가장 호흡이 잘 맞는 포수를 선발로 내는 방식이다. 일부 팀은 아예 외국인 투수 전담 포수를 따로 두기도 한다. 신인 포수를 키우려는 팀은 먼저 선발로 젊은 포수를 기용한 뒤, 후반에 베테랑 포수로 교체해서 안정을 꾀한다. 윤요섭과 조윤준을 선발로 기용한 작년 LG나 이지영의 출전이 잦은 올해 삼성이 대표적이다. 메이저리그의 탬파베이 같은 팀은 계획적으로 ‘미트질’이 가장 뛰어난 포수들만 영입해서 교대로 내보낸다. 볼을 스트라이크로 판정받는 능력으로 투수진의 성적 향상에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취약한 포수력을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는 고육지책이다.

최근 프로야구에서는 ‘세이브 포수’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세이브는 팀이 이기고 있는 경기를 마무리하는 투수에게 주어지는 기록. 그와 마찬가지로 팀이 앞선 경기 후반에 승리를 지키기 위해 투입하는 포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세이브 포수를 처음 직접적으로 거론한 이는 넥센 시절 김시진 감독(현 롯데). 김 감독은 2009년 공격형의 강귀태를 선발로 내고 블로킹이 좋은 허준을 경기 후반에 내는 방식을 시도했다. 지난해도 최경철을 먼저 쓰고 허도환을 뒤에 쓰는 식으로 ‘포수 분업’을 이어갔다. 두산 역시 마무리 프록터 등판시에는 전담포수로 최재훈을 앉히는 방식으로 포수진을 운영했다. 당시 김진욱 감독은 마무리 포수를 쓰는 이유를 “후반에는 상대의 도루 저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올 시즌에도 넥센 염경엽 감독이 허도환을 주전으로, 경기 후반에는 송구가 좋은 박동원을 교체 투입하는 식으로 포수진을 끌어가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경기 후반 수비 강화를 위해 투입되는 포수는 존재했다. MBC에서는 차동렬, LG에선 김동수의 뒤에 이어 등장하던 고 심재원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 초중반 삼성에서는 박선일이 중요한 순간 이만수와 김성현의 뒤에서 자주 등장했다. 이들은 대개 백업 포수 내지는 수비형 포수로 불렸다. ‘세이브 포수’라는 그럴듯한 호칭이 쓰이기 시작한 건 최근 일이다. ‘패전처리’라는 불명예스런 이름으로 불리던 구원투수들이 ‘추격조’라는 멋진 이름을 갖게 되고, 강명구-유재신 등이 ‘대주자 스페셜리스트’로 분류되는 것과 비슷한 흐름에 속한다

한 야구인은 “포수력이 약한 팀에서 포수진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의미는 있다”고 바라봤다. “분명한 목표와 역할이 주어지면 선수는 그에 맞는 준비와 훈련을 할 수가 있다. 가령 경기 후반 수비 강화로 역할이 제한된 포수라면 주로 불펜 투수들에 대해 파악하고, 타격보다는 블로킹과 2루 송구 훈련에 집중하는 식으로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확실한 주전 포수가 있다면 굳이 세이브 포수란 개념이 필요할지 의문”이라며 “한국 야구의 포수 자원이 그만큼 취약한 게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실제 근래 프로야구에서 한 경기와 시즌을 책임질 만한 역량을 갖춘 포수를 보유한 팀은 극히 드물다. ‘전설’ 박경완과 진갑용은 둘 다 1990년대 데뷔한 선수들로 은퇴를 앞두고 있다. 젊은 포수로 강민호, 양의지가 있긴 하지만 아직 팀을 우승시키는 포수의 특별함은 보여주지 못했다. 지도자들은 퓨처스리그와 아마추어 야구에 제대로 된 포수감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숨을 쉰다. 어린 선수들의 포수 기피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세이브 포수’라는 신조어의 등장에는 포수 자원이 고갈된 한국야구의 씁쓸한 현실이 담겨 있다

<GQ KOREA>에 기고한 글입니다.


넘치는 좌타자… ‘우투좌타’도 시든다

출처: http://news.donga.com/Main/3/all/20130905/57492346/1
2013-09-06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구단도 상품가치 높게 보지않아… 중-고교선수들 좌타 전향 줄어
신인 선발 비율 3년 연속 내리막



단언컨대 우투좌타(右投左打) 전성시대는 갔다.

국내 프로야구는 여전히 오른손으로 던지고 왼손으로 치는 타자가 득세하는 무대다. 올해 프로야구 등록 야수 중 57명이 우투좌타. 이는 전체 왼손 타자(99명) 중 57.6%에 달한다. 투수까지 포함하면 전체 선수 553명 중 12.8%(71명)가 우투좌타다. 2000년만 해도 이 비율은 3.1%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마추어 야구에서는 이미 우투좌타의 인기가 수그러들고 있다. 2011년 신인지명회의(드래프트) 때는 왼쪽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 13명이 프로 팀의 지명을 받았다. 이 중 진짜 왼손잡이, 즉 왼손으로 던지고 치는 선수는 1명(삼성 조원태)뿐이었다. 나머지 12명은 우투좌타 또는 스위치 타자였다. ‘만들어진 왼손 타자’가 92.3%나 됐던 것이다.

올해 열린 2014 드래프트 때는 이 비율이 61.5%로 줄었다. 최근 5년 동안 가장 낮은 비율인 건 물론이고 3년 연속 내림세다. 이 비율이 60%를 처음 넘어간 2002 드래프트 이후 3년 연속으로 수치가 내려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학생 야구 현장 분위기도 비슷하다. 학생 야구 전문 블로그 퓨처스볼(www.futuresball.com)을운영하는 배지헌 씨는 “리틀리그나 중학교 야구 감독들에게 물어봐도 요즘에는 왼쪽 타석에서 치려는 오른손잡이 선수가 별로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고 전했다.

우투좌타 열풍으로 왼손 타자 시장이 ‘레드오션’이 돼 버린 탓이다. 프로 원년 열린 1983 드래프트 때부터 1994 드래프트 때까지 12년 동안 우투좌타 또는 스위치 타자 야수는 4명밖에 뽑히지 않았다. 그 뒤 20년 동안에는 177명이다. 예전에는 오른쪽 타석에 들어섰을 선수 177명이 갑자기 왼손 타자가 되면서 과잉 공급이 일어난 것.

이 때문에 수요자인 프로구단에서 왼손타자를 별로 높게 쳐주지 않게 됐다. 사정이 이렇게 바뀌자 공급자인 선수들도 굳이 실패 위험을 무릅쓰고 우투좌타 변신을 시도할 필요가 없게 됐다. 순수한 오른손 타자가 생존확률이 더 높아진 상황이 시작된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개인의 사익 추구가 조화로운 공익을 만든다”고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야구 관계자들은 “우투좌타가 너무 많아 오른손 타자들 씨가 말랐다”고 염려했다. 그러나 수요와 공급이라는 간단한 경제 원리는 야구 생태계 전체의 ‘공익’을 살리고 있다. 단지 프로 구단에 뽑히고 싶다는 ‘사익’ 때문에 말이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