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3일 목요일

[매거진S] 마리아노 리베라, '신화가 된 마무리'

출처: 네이버 스포츠 [매거진 S]
기사입력 2010-01-14 17:39
ⓒ김형준



현덕은 공명과 함께 한강까지 와서 군사들에게 물었다.
"장군께서는 어떻게 싸우시더냐."
군사가 대답했다.
"장군은 신이십니다. 황 장군을 구해 낼 때 모습을 이야기하오리다. 한번 창을 들고 적전을 헤치시는데 마치 배꽃이 펄펄 낙화가 되어 춤을 추는 듯하고 하얀 눈이 퍼뜩퍼뜩 공중에서 나는 듯하옵니다. 십만 대병을 앞에 놓고 필마단기로 딱 버티고 서 계신 용맹스런 모습은 혼신(渾身)이 도시담(都是膽)이더이다."
현덕은 기쁨을 이길 수가 없었다. 좌우편 험준한 산천을 돌아보며, 혼연히 공명을 향하여 말하였다"
"자룡의 일신은 과연 도시담이지."
-월탄 박종화 삼국지 中-
두 번이나 적의 포위망을 뚫고 유비의 아들과 황충을 구해낸 상산 조자룡은 실로 일신도시담(一身都是膽)이었다.
메이저리그에도 '온 몸이 담덩어리'인 선수가 하나 있다. 상대의 검을 진흙 자르듯 했다는 조운의 청홍검처럼, 커터로 수많은 방망이를 박살내며 13년째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무리로 군림하고 있는 마리아노 리베라(40·뉴욕 양키스)다.
2이닝 이상을 던졌던 과거의 마무리들은 대부분 혹사 속에서 일찍 산화했다. 반면 현재의 마무리들은 철저한 보호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롱런하는 선수는 많지 않다. 이닝 부담은 줄어들었지만, 그로 인해 과거보다 더욱 커진 실패에 대한 심리적 중압감이 이들의 생명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많은 마무리들이 육체적 부상 못지 않게 정신적 부상을 입고 사라진다.
2001년 월드시리즈 최종전에서 맞은 끝내기 안타, 2004년 2경기 연속 세이브 실패와 그로 인한 리버스 스윕. 리베라에게도 큰 충격이 될 만한 사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리베라의 심장에 생채기도 내지 못했다.
10년이 훌쩍 넘은 롱런,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가 된 그의 비결은 무엇일까.
늦은 출발
파나마에서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리베라는 어렸을 때부터 고기잡이 배를 탔다. 19살 때는 정어리잡이 배에 올랐다가 난파, 부서진 조각을 잡고 떠 있다 다른 배에 구조된 일도 있었다. 농장일을 하며 근력을 키운 블라디미르 게레로처럼, 그물질도 리베라의 팔을 강인하게 만들었다.
야구를 늦게 시작한 리베라의 포지션은 유격수였다. 그러던 어느날 리베라는 자원해서 마운드에 올랐고, 그 모습을 양키스의 스카우트가 지켜보게 됐다. 결국 리베라는 1990년 만 20세라는 늦은 나이에(대부분의 히스패닉 유망주들은 17살에 입단한다) 단돈 2000달러를 받고 양키스와 계약했다. 양키스가 이듬해 1순위로 지명한 브라이언 테일러에게 준 돈은 155만달러였다. 
1992년 리베라는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강속구를 잃었다. 양키스는 플로리다와 콜로라도를 위한 확장 드래프트에서 리베라를 보호선수로 지명하지 않았다. 1995년에는 디트로이트에서 데이빗 웰스를 데려오기 위한 카드로 내놓았다.
트레이드 성사를 앞둔 어느날, 진 마이클 단장은 트리플A 콜럼버스에서 온 보고서 속에서 결정적인 한 줄을 발견했다. 리베라가 갑자기 강속구를 펑펑 꽂아대기 시작했다는 것. 팔꿈치가 마침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양키스는 디트로이트로 보내기로 한 명단에서 리베라를 뺐고 트레이드는 결렬됐다.

1996년. 데뷔 초기의 리베라 ⓒ gettyimages/멀티비츠
1995년 5월, 25살의 늦은 나이에 데뷔한 리베라는 5번째 등판에서 8이닝 11K 무실점의 선발승을 따내기도 했다. 하지만 양키스는 리베라가 불펜에서 더 좋은 활약을 할 것으로 판단했다. 예상 적중. 1996년 리베라는 셋업맨이었음에도 사이영상 투표 3위에 오르는 대활약을 했다. 양키스는 월드시리즈 MVP 존 웨틀랜드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리베라에게 마무리를 맡기는 2번째 결단을 내렸다.
1997년 27살에 마무리가 된 리베라의 출발은 좋지 않았다. 개막전에서 마크 맥과이어에게 초대형 홈런을 맞은 등 첫 6번의 세이브 기회 중 3번을 날린 것. 텍사스로 간 웨틀랜드가 세이브 행진을 이어가자 뉴욕 언론들이 들고 일어섰다. 리베라가 3번째 경기를 망친 날, 조 토레 감독은 낙담해 있는 리베라를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그리고 리베라와 양키스를 살리는 한 마디를 했다.
"네가 나의 팀에 있는 한, 나의 마무리는 너뿐이다."
6월의 어느날, 리베라의 포심이 갑자기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똑바로 던지려 해도, 공은 계속해서 왼쪽으로 휘었다. 커터성 무브먼트가 생긴 것이었다.

'새로운 포심'은 강력했다. 하지만 제구를 잡을 수가 없었다. 리베라는 멜 스토틀마이어 투수코치와 함께 커터성 무브먼트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지만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할 수 없이 이 정체불명의 공의 제구를 잡아보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마침내 커터와 포심을 분리해 내는 데 성공했다. 
리베라는 롭 넨, 빌리 와그너와 같은 포심-슬라이더 마무리로 출발했다. 하지만 커터를 얻자 슬라이더를 포기하고 포심-커터 조합을 선택했다. 그리고 투심을 추가해 공포의 '패스트볼 3종 세트'를 만들었다. 이로써 메이저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오로지 패스트볼만 던지는 마무리가 탄생했다.
한때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종교에 귀의하려 했을 정도로,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리베라는 신이 자신에게 커터를 내려준 것으로 믿고 있다.
신은 리베라를 구했고, 리베라는 양키스를 구했다.
리베라표 커터
리베라가 유행시킨 커터는 메이저리그에서 점점 필수 구종이 되어가고 있다. 많은 투수들이 경쟁적으로 커터를 추가하고 있으며, 이제는 아예 마이너리그에서 부터 장착하고 올라오는 유망주까지 생겨나고 있다.
로이 할러데이가 더 안정적인 투수가 된 것 역시 커터가 결정적이었으며(할러데이에게 커터 그립을 가르쳐준 것은 바로 리베라다), 앤디 페티트와 제이미 모이어의 롱런 비결 또한 커터다. 지난해 17승을 올린 스캇 펠드먼의 깜짝 활약도 비중을 13%에서 33%로 높인 커터에 있었다.
하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리베라와 같은 커터를 던지는 투수는 없다.
커터는 포심과 슬라이더의 중간 형태의 공이다. 슬라이더와 같은 방향으로 휘지만 슬라이더보다는 훨씬 덜 휘며, 슬라이더보다 빠르지만 포심보다는 느리다. 90마일(145km) 정도만 되면 대단히 빠른 커터로 꼽힌다. 하지만 한때 리베라의 커터는 평균구속 93마일(150km)에 최고구속이 95마일(153km)이었다.
화면 상으로 커터를 구분해 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슬라이더 못지 않게 휘는 리베라의 커터 만큼은 식별이 가능하다. 커터는 일반적으로 홈플레이트 앞에서 우타자의 바깥쪽이자 좌타자의 몸쪽으로 2.5~5cm 가량 휜다. 하지만 리베라의 커터는 그 움직임이 12~15cm에 달한다(슬라이더 30~45cm).
"무슨 슬라이더가 이리 빠르나 싶어 전광판을 봤더니 96마일이 찍혀 있었다. 더 까무라쳤던 것은 그 공이 커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였다"
마이크 스탠리의 말처럼, 리베라의 커터는 '95마일짜리 슬라이더'였던 셈이다. 그의 커터가 칼 허벨의 스크루볼, 샌디 코팩스의 커브, 브루스 수터의 스플리터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공포의 커터 ⓒ gettyimages/멀티비츠
그렇다면 리베라는 어떻게 해서 남들과 다른 커터를 던질 수 있는 것일까. 이른바 '손가락 장난'을 통해 패스트볼에 다양한 무브먼트를 주는 것은 손가락의 악력이 뛰어나지 않고는 수행해내기 어렵다. 리베라는 과거 최고의 투심을 선보였던 그렉 매덕스와 함께 손가락의 힘이 가장 강한 투수다.
이제 리베라는 과거 만큼 빠른 포심을 던지지 못한다. 과거 만큼 빠른 커터도 없다. 하지만 리베라는 2008년 피안타율 등 위력을 나타내는 거의 모든 지표에서 개인 최고의 기록을 작성했으며, 지난해에는 36연속 세이브 성공이라는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리베라에게 일어난 실로 놀라운 일은, 포심 구속이 95마일에서 4마일이 떨어지는 동안, 93마일이었던 커터 구속은 2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리베라의 포심과 커터는 91마일 지점에서 뭉쳤다.
커터는 타자가 포심인 줄 알고 치기를 바라는 공이다. 따라서 포심과의 구속 차이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대부분의 커터는 그 투수의 포심보다 2마일 이상 구속이 적게 나온다. 하지만 이제 리베라의 커터는 포심과 사실상 같은 속도로 들어온다(리베라 다음으로 차이가 적은 투수는 할러데이다).
좌타자의 악몽
우투수의 커터는 서클 체인지업 만큼이나 좌타자에게 유용하다. 대부분의 좌타자는 몸쪽 낮은 코스를 선호한다. 이에 우투수들은 체인지업을 바깥쪽으로 흘려 보내거나, 커브나 슬라이더를 몸쪽으로 낮게 떨어뜨려 헛스윙을 유도한다. 하지만 커터를 장착하게 되면 몸쪽 높은 코스까지 공략이 가능해진다.
1년에 방망이 44개를 박살내기도 했던 리베라는 역대 최고의 '배트 브레이커'다. 리베라 때문에 방망이 값을 많이 쓰는 타자들은 대부분은 좌타자다. 치퍼 존스는 1999년 월드시리즈에서 라이언 클레스코가 한 타석에서 방망이 3개를 날리는 장면을 보고 리베라의 커터에 '톱날칼(buzzsaw)'라는 별명을 붙였다.

2006년까지만 해도 리베라의 패스트볼과 커터는5대5 비율을 유지했다. 하지만 커터 비중은 2007년 73%, 2008년 82%로 오르더니, 지난해에는 93%에까지 이르렀다. 특히 좌타자를 상대로는 아예 커터만 던진다. 이는 스티브 칼튼이 슬라이더를 완성한 후 좌타자를 상대로는 슬라이더만 던졌던 것과 같다.
커터만 던지고도 좌타자를 상대하는 일이 가능한 것은 리베라의 커터가 다양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특히 좌타자의 바깥쪽으로 '백도어 커터'를 던지는 투수는 리베라뿐이다(반면 랜디 존슨의 '백도어 슬라이더'는 실패했다). 리베라의 통산 좌타자 피안타율은 .206로, 우타자 피안타율인 .218보다 훨씬 좋다. 오직 놀란 라이언 만이 우투수로서 리베라보다 낮은 좌타자 피안타율(.203)을 기록했다. 리베라는 과거 스위치히터가 우타석에 들어서는 장면을 연출해 내기도 했었다.
리베라는 포스트시즌에서의 2개를 포함해 15년 동안 총 62개의 홈런을 맞았다. 하지만 그 중 좌타자에게 내준 것은 22개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좌타자가 리베라의 공을 밀어쳐 만들어낸 홈런은 딱 한 번 있었는데, 커터를 던지기 전인 1995년에 일어난 일이다(월리 조이너).


양키스의 수호신 ⓒ gettyimages/멀티비츠

제구와 효율
커터 만큼이나 중요한 리베라의 성공 비결은 뛰어난 제구력이다. 제구력이 절정에 올랐던 2008년에는 70⅔이닝에서 77개의 삼진을 잡아내면서 단 6개의 볼넷을 내주기도 했다. 지역방송이 '볼넷 허용'을 속보로 전하기도 했던 1990년 데니스 에커슬리의 기록은 73⅓이닝 4볼넷이었다.
통산 3.93의 탈삼진/볼넷 비율은 역대 1000이닝 투수 중 커트 실링(4.38)과 페드로 마르티네스(4.15)에 이은 3위에 해당된다.
지난해 9월23일 리베라가 켄드리 모랄레스에게 내준 볼넷은, 1점 차 상황에서는 2005년 이후 처음으로 내준 9회 선두타자 볼넷이었다. <인사이드 엣지>에 따르면, 지난해 리베라가 던진 공 중 가운데 코스로 들어간 비율은 11.2%에 불과하다. 이는 조너선 파펠본(16.2)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18.3) 조너선 브록스턴(19.8) 트레버 호프먼(26.4) 등 다른 마무리들에 비해 월등히 좋다.
리베라는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가는 공조차 존에 걸친다. 리베라는 볼카운트 0-2의 절대적으로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홈런을 맞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리베라의 뛰어난 제구력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투구폼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밥 먹고 하는 일이 공을 던지는 것인 투수들이지만, 똑같은 딜리버리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리베라의 딜리버리에는 조금의 미세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알 라이터가 리베라를 '피칭 로봇'이라 부르기도 했을까. 
또한 리베라의 투구폼은 단 하나의 일시정지 화면에서도 문제를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유연하고 안정적이다. 이는 리베라의 롱런 비결이기도 하다.
슬라이더가 주무기였던 1996년, 리베라는 107⅔이닝에서 130개의 삼진을 잡아내 9이닝당 10.87K를 기록했다. 하지만 리베라는 최고의 탈삼진 구종인 슬라이더를 과감히 포기했다. 효율을 위해서였다. 리베라는 팀과 동료들을 위해 '10구 이내 3자범퇴'를 목표로 마운드에 오른다. 삼진은 필요 없다.
실제로 리베라는 지난 시즌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타석당 평균 투구수가 4개를 넘어섰던 적이 없다. SI에 따르면, 타석에서 오직 14%의 타자 만이 리베라로부터 4구째를 던지게 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인사이드 엣지에 따르면, 리베라로부터 정타를 뽑아낼 수 있는 확률은 평균적인 투수의 절반에 불과하다.


1998년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서 ⓒ gettyimages/멀티비츠

가을의 지배자
리베라는 ML 역사상 2번째로 세이브를 많이 따낸 마무리이며(1위 호프먼과의 차이는 65개. 리베라는 호프먼보다 2살이 적다) 역대 200세이브 이상 투수 중 조 네이선(90.77%) 다음으로 높은 세이브 성공률(89.98%)을 기록하고 있다(마무리 시즌만 계산). 네이선이 소화한 마무리 시즌은 리베라의 절반이다.
리베라가 기록 중인 통산 202의 조정 평균자책점은 역대 1000이닝 투수 중 1위에 해당된다(2위 페드로 마르티네스 154). 호프먼의 경우 147이며, 데니스 에커슬리는 선발 시즌을 제외하더라도 136이다.
리베라의 통산 WHIP(1.01)과 평균자책점(2.25)은 라이브볼 시대를 보낸 그 누구보다도 좋다. 하지만 리베라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포스트시즌이다. 무수히 많은 에이스들이 심리적 중압감과 체력적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지는 포스트시즌에서, 리베라는 그야말로 펄펄 날아다닌다.
정규시즌  : ERA 2.25 / AVG .211 / WHIP 1.01 / SV% 89.5
포스트시즌 : ERA 0.74 / AVG .175 / WHIP 0.77 / SV% 88.6
리베라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월드시리즈에서 '우승 확정 아웃카운트'를 3번이나 잡아낸 유일한 투수다. 포스트시즌에서 거둔 통산 39세이브는 2위 브래드 릿지(16세이브)보다 23개가 많으며(3위 에커슬리 15세이브), 월드시리즈에서 따낸 11세이브도 2위 롤리 핑거스(6세이브)의 거의 2배에 해당된다.
지난해 PS에서 기록한 3개를 포함, 리베라가 1998년 이후 거둔 38세이브에는 아웃카운트를 4개 이상 잡아낸 세이브 29개가 들어있다. 같은 기간 리베라를 제외한 나머지 마무리들이 기록한 '1이닝+ 세이브' 숫자는 34개다(2위 릿지-파펠본 4개). 지난해에도 흔들리는 필 휴즈를 대신해 8회까지 책임진 리베라가 없었더라면 양키스는 챔피언십시리즈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반면 에인절스는 푸엔테스에게 1이닝조차 맡기기 힘들었다).
리베라가 포스트시즌에서 범한 블론세이브는 5개다. 마무리 첫 해였던 1997년 디비전시리즈 4차전에서 샌디 알로마 주니어에게 동점 홈런을 맞아 첫 블론을 범한 리베라는, 이후 23세이브 연속 성공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리베라가 포스트시즌에서 맞은 2개의 홈런 중 나머지 하나는 세이브가 아닌 상황에서 허용한 것이다. 즉, 리베라는 포스트시즌에서 끝내기홈런을 맞아본 적이 없다).
리베라의 기록이 멈춘 것은 2001년 월드시리즈 7차전이었다. 축구선수 출신으로 가장 뛰어난 번트 수비 능력을 가진 것으로 정평이 난 리베라는 번트 타구를 잡아 악송구를 범했고, 결국 빗맞은 끝내기안타를 맞았다.
나머지 3개가 나온 것은 2004년이었다. 미네소타와의 디비전시리즈 2차전에서 통산 3호 블론세이브를 범한 리베라는, 시리즈가 끝난 직후 사촌 형과 그의 아들이 자신의 집 수영장을 청소하려다 감전사를 당했다는 비보를 듣고 급히 날아가 장례식에 참석했다. 당초 결장할 것으로 보였던 리베라는 챔피언십시리즈 직전 극적으로 합류했다. 하지만 그 피로를 버티지 못하고 4차전과 5차전에서 2경기 연속 블론세이브를 범했다. 리베라가 고향을 다녀오는 일이 없었더라면, 보스턴의 리버스 스윕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빌 밀러의 동점 적시타와 제이슨 배리텍의 동점 희생플라이 이후, 리베라의 포스트시즌 블론세이브는 다시 5년째 나오지 않고 있다.


유니폼을 벗으면 소박한 모습의 리베라 ⓒ gettyimages/멀티비츠

심장으로 던지다
지난해 9월19일, 리베라는 이치로에게 끝내기홈런을 맞았다. 2007년 4월 이후 2년 5개월 만에 허용한 끝내기홈런이었다. 하지만 SI에 따르면, 리베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웃는 얼굴로 세이프코필드를 떠났다.
이는 뻔뻔한 것이 아니라 팀을 위해 하는 행동이다. '망각'은 마무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능력 중 하나다. 자신의 실패를 마음에 담아두면, 언제 갑자기 실패에 대한 불안함에 휩싸이게 될지 모른다. 자신의 실패를 깨끗이 잊을 수 있다는 것. 바로 정신력이 만들어주는 능력이다. 데릭 지터는 자신이 경험한 모든 사람을 통틀어 가장 강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으로 리베라를 꼽았다.
담력이 약한 투수는 몸쪽을 던질 수 없다. 바깥쪽 공은 벗어나면 볼이지만 몸쪽 공은 타자를 맞힌다. 이에 가운데로 몰리는 실투가 될 확률이 대단히 높다. 또한 요즘 메이저리그 심판들은 몸쪽 공에 대단히 인색하다. 하지만 리베라는 전혀 아랑곳없이, 우타자에게도 포심으로 몸쪽을 공격해 들어온다.
평상복을 입은 리베라의 모습은 1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갑부'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소박하다. 짧은 머리, 끝까지 채운 단추, 치켜 입은 바지는 패션 테러리스트에 뽑혀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리베라가 야구에 몰입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야구는 그의 또 다른 종교다.
모든 팀들이 양키스를 꺾고 싶어한다. 하지만 양키스의 심장부로 통하는 최종 관문에는, 커터를 비껴들고 유유히 서 있는 '끝판왕' 리베라가 있다.


'Enter Sandman' 이 울려퍼지는 순간 ⓒ gettyimages/멀티비츠

리베라의 마무리 시즌 (괄호안은 나이)
   SVBS  %ERAERA+ AVGWHIP피홈런
97 (27)   43 982.71.88238.2371.19   5
98 (28)   36 587.81.91232.2151.06   3
99 (29)   45 491.81.83259.1760.88   2
00 (30)   36 587.82.85169.2081.10   4
01 (31)   50 787.72.34191.2090.91   5
02 (32)   28 487.52.74161.2031.00   3
03 (33)   40 687.01.66265.2351.01   3
04 (34)   53 493.01.94231.2251.08   3
05 (35)   43 491.51.38307.1770.87   2
06 (36)   34 391.91.80251.2230.96   3
07 (37)   30 488.23.15143.2481.12   4
08 (38)   39 197.51.40317.1650.67   4
09 (39)   44 295.71.76243.1970.91   7
평균   404.589.982.04220.2090.98  3.7





[매거진S] 스트라스버그, '천재인가 거품인가'

출처: 네이버 스포츠 [매거진 S]
기사입력 2009-07-09 22:37
ⓒ김형준



드래프트가 생긴 이래 최고의 투수. 역사상 나머지 선수들과의 실력 차이가 가장 큰 선수. 마크 프라이어와는 다른 레벨의 투수.
올 드래프트에서 워싱턴 내셔널스로부터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은 우완 스티븐 스트라스버그(20)를 두고 하는 말이다. 1965년에 처음 시작된 메이저리그의 아마추어 드래프트에서, 지금까지 1라운드 지명을 받은 투수 만도 700여 명에 달한다. 그런데 역대 최고라니,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러는 것일까.
스타덤에 오르기까지
1988년 7월21일생인 스트라스버그는(김광현은 1988년 7월22일생이다) 샌디에이고에서 태어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팬으로 자랐다. 1998년 꼬마 스트라스버그는 샌디에이고 에이스 케빈 브라운이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상대로 1경기 16탈삼진의 디비전시리즈 신기록을 세우는 모습을 보고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투수로서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교 시절까지 그는 완벽한 무명 선수였다. 졸업반 때는 그 흔한 드래프트 지명도 받지 못했다.
스트라스버그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교이자 어린 시절의 영웅 토니 그윈이 감독으로 있는 샌디에이고주립대에 진학했다. 그윈이 스트라스버그에게 한 첫번째 주문은 살부터 찌우라는 것.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14kg의 몸무게를 불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구속 역시 10마일(16km) 이상이 빨라진 것이었다. 이렇게 스트라스버그는 90마일 후반대의 강속구를 던지는 괴물 신입생이 됐다.
그의 이름이 미 전역에 알려지게 된 것은 마무리에서 선발투수로 전향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해 4월이었다. 유타 대학을 상대로 1피안타 완봉승을 거두면서 무려 23개의 삼진을 잡아내는 대사건을 일으킨 것. 대학 시즌이 끝난 후에는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하기도 했다. 올림픽에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참가할 수 있게 된 후, 미국 대표팀이 대학생을 뽑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미 그 때부터, 스트라스버그는 올 드래프트의 절대적인 1순위 후보로 인정을 받았다. 올 드래프트에 나올 선수들은 '스트라스버그와 나머지'로 정리가 됐으며, 2008시즌 꼴찌 경쟁에는 '스트라스버그 쟁탈전'이라는 꼬리표가 붙여졌다. 결국 지난달 스트라스버그는 지금껏 가장 논란이 없는 1순위 지명을 받았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 gettyimages/멀티비츠
얼마나 대단하기에
에이스가 갖추어야 하는 3가지 요소는 구위, 제구력, 신체다. 구위가 아무리 좋더라도 제구가 잡히지 않으면 소용없다. 구위가 좋은데 신체조건이 나쁘면 쉽게 고장난다. 제구가 뛰어나더라도 구위가 받혀주지 않으면 에이스가 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3가지 요소가 완벽한 조화를 이뤄야 비로소 에이스가 탄생한다.
그런데 스트라스버그는 이 3가지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스트라스버그는 평균 96~98마일(154~158km)에 최고 구속 103마일(166km)을 자랑하는 무시무시한 강속구를 던진다. 이는 대학 시절 역시 강속구 투수로 이름을 떨쳤던 프라이어나 팀 린스컴(샌프란시스코)보다도 한 단계 높은 수준이다.
올해 거의 모든 팀의 스카우트들이 모여 그를 지켜본 경기에서, 스트라스버그는 초구로 99마일을 꽂아넣었다. 99번째로 던진 공 역시 99마일이었다. 그 경기에서 스트라스버그는 스피드건에 101마일을 2번이나 찍었다.
100마일 강속구는 99%가 스트레이트다. 때문에 많은 투수들이 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음에도 구속을 줄이고 무브먼트를 얻는다. 하지만 스트라스버그의 100마일짜리 공은 엄청난 무브먼트까지 동반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놀란 라이언 이후 구속과 무브먼트가 가장 완벽히 조화된 패스트볼로 평가하고 있다.
올해 스트라스버그는 주 변화구를 최대 89마일(143km)까지 찍히는 고속 슬라이더에서 80~82마일대의 슬러브성 커브로 바꾸었다. 안전을 고려한 조치였지만, 그렇다고 위력이 준 것은 아니다. 가공할 만한 움직임을 지닌 그의 커브는 린스컴과 동급이며 케리 우드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드래프트에 100마일의 강속구를 투수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콜트 그리핀처럼, 100마일을 찍고 나타난 고등학교 선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그들 대부분이 끝내 제구력을 잡지 못하고 사라졌다. 결정적으로 스트라스버그가 그들과 차원이 다른 것은 바로 제구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승패 ERA안타/9홈런/9볼넷/9삼진/9 K/BB
프라이어15승 1패1.70  6.5  0.3  1.2 13.2 11.2
린스컴12승 4패1.94  5.4  0.6  4.5 14.3  3.2
스트라스버그13승 1패1.32  5.4  0.3  1.5 16.1 10.3
대학 3학년 시즌에서 스트라스버그가 기록한 9이닝당 볼넷수는 프라이어의 기록과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피안타와 삼진은 스트라스버그가 더 뛰어났다. 한편 스트라스버그의 피안타수는 린스컴과 일치한다. 하지만 삼진을 더 잡아냈으며 볼넷은 훨씬 적게 내줬다. 기록만 놓고 보면 스트라스버그는 프라이어와 같은 수준의 제구력을 가지고 있으며, 프라이어보다 더 위력적이다. 또한 린스컴과 같거나 약간 더 위력적이며, 린스컴보다 제구가 더 뛰어나다.
스트라스버그의 키는 라몬 마르티네스와 같은 193cm다. 하지만 튼튼한 하체와 적당한 몸무게를 가지고 있어 큰 키에 비해 너무 말랐던 마르티네스(78kg)와는 다르다. 스트라스버그의 몸무게는 100kg으로, 공교롭게도 로저 클레멘스와 똑같은 신체 지수를 가지고 있다. 또한 당시 스카우트들이 마음에 쏙 들어 했던 프라이어(195cm 103kg)와도 거의 같다.
린스컴이라는 돌연변이가 나타나 '신체 지수는 숫자에 불과할 뿐'을 외치고 있지만, 아직은 검증되지 않았다. 아직도 대부분의 스카우트들은 에이스급의 구위는 그를 버텨낼 수 있는 큰 그릇에 담겨져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스트라스버그가 프라이어와 다른 점은 대학에서 완벽에 가까운 보호를 받았다는 것이다. 프라이어가 마지막 해 138이닝을 비롯해 2,3학년 2년간 267이닝을 던진 반면, 스트라스버그는 마지막 해 109이닝을 비롯해 2,3학년 2년간 프라이어보다 61이닝을 덜 던졌다. 또한 1학년 때는 마무리로 뛰었기 때문에 37이닝밖에 던지지 않았다. 그윈은 스트라스버그를 일주일에 한 번 씩만 마운드에 올렸으며 투구수를 철저하게 관리해줬다.
한국과 다르다고 해도, 미국 역시 스타덤에 오른 아마추어 투수는 무리를 했기 마련이다(전체 1순위 투수들이 대부분 비극적 결말을 맞는 것도 그 때문이다). 1996년 전체 1순위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입단한 벤슨은 그 해 무려 190이닝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스트라스버그의 어깨는 아직 싱싱하다.

   승패ERA이닝볼넷삼진볼넷/9삼진/9 K/BB
1학년1승3패7세2.43 37 15 47  3.6 11.4  3.1
2학년  8승3패1.5797.1 16133  1.6 12.3  8.3
3학년 13승1패1.32109 19195  1.5 16.1 10.3

에이스의 '그릇'을 가지고 있는 스트라스버그 ⓒ gettyimages/멀티비츠
스카우트들의 증언
현재 스트라스버그에 더 열광하고 있는 쪽은 기록 전문가보다는 스카우트다. 기록으로 볼 때 스트라스버그는 프라이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현장에서 그를 직접 지켜본 스카우트들은 스트라스버그가 완벽하게 한 수 위라고 주장한다.
익명의 한 스카우트는 "이번이 내 36번째 드래프트다. 하지만 저런 레벨의 투수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고 했다. 또 다른 스카우트는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린스컴 만큼 위력적인 피칭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지난 3월에 있었던 인터뷰에서 "지금 당장 메이저리그 로테이션에 집어넣더라도 2선발급이며, A J 버넷보다 좋은 피칭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스카우트도 있었다.
그를 메이저리그에 직행시켜야 한다는 주장의 진원지 역시 바로 스카우트들이다(하지만 그윈은 빅리그 직행에 대해 절대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스카우트들의 이러한 지원사격 덕분에, 스캇 보라스는 자신 있게 프라이어가 받았던 계약에 곱하기 5를 했다. 6년간 5000만달러 계약은 보스턴이 마쓰자카를 영입하면서 지불한 6년간 5200만달러와 같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때 많은 메이저리그 팬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과연 스트라스버그가 어떤 피칭을 하느냐였다. 올림픽에서 스트라스버그가 보여준 모습은 다른 더블A 투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스트라스버그는 대학 시즌을 끝낸 직후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또한 스카우트들은 스트라스버그가 지난해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투수가 됐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스트라스버그가 프라이어와 마찬가지로 위험한 '뒤집힌 W'자의 팔 동작을 가지고 있다는 소수 의견을 제외하더라도, 메이저리그 정상급의 체인지업을 던질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린스컴이 풀타임 첫 해 사이영상을 차지한 비결과 풀타임 첫 해 많은 공을 던지고도 이상이 생기지 않은 비결은 바로 체인지업이었다. 프라이어가 패스트볼과 커브-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의 비중이 5대1이었던 반면, 린스컴은 벌써 1대1을 마크하고 있다. 강속구와 폭포수 커브로 유명했던 놀란 라이언도 사실은 커브와 같은 비율의 체인지업을 던졌다.
나이가 들고 나서 여러 구종을 추가하긴 했지만, 랜디 존슨은 강속구와 슬라이더의 '투 피치'로 성공한 투수다. 하지만 투 피치 투수가 선발 에이스로 성공하기 얼마나 어려운지는 요즘 데이빗 프라이스(탬파베이)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스트라스버그 역시 투 피치에 그친다면 선발투수로서의 성공은 장담할 수 없다.

프라이어에 대한 열광 역시 대단했다 ⓒ gettyimages/멀티비츠
'네오'는 전에도 있었다
NBA와 달리,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은 결코 성공의 보증수표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1순위 지명자 중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는 놀랍게도 1명도 없다. 켄 그리피 주니어, 치퍼 존스,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향후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겠지만, 투수 중에서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선수조차 없다.
역대 드래프트에서 가장 먼저 스타덤에 올랐던 1순위 투수는 고졸 좌완 데이빗 클라이드였다. 1973년 클라이드는 처음으로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은 투수가 됐다. 클라이드를 손에 넣은 텍사스는 흥분한 나머지, 그에게 지명 20일 만에 선발 데뷔전을 치르게 했다. 하지만 클라이드는 메이저리그에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18승33패 평균자책 4.63의 성적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1989년 대학 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떠오른 벤 맥도날드를 전체 1순위로 뽑은 볼티모어도 텍사스의 실패를 답습했다. 맥도날드는 클라이드와 마찬가지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후 2주 만에 데뷔했는데, 나이가 더 많았던 맥도날드는 클라이드보다는 훨씬 잘했다. 하지만 대학 시절의 혹사에다 프로에서의 무리한 등판이 겹쳐져 어깨 부상을 불러왔고(이는 프라이어와 상당히 유사한 대목이다) 결국 78승70패 3.91의 성적으로 만 30세가 되기 전에 은퇴했다.
1990년 오클랜드가 전체 14순위에서 뽑은 토드 밴 포플도 등장 당시에는 지금까지 나타난 투수와는 차원이 다른 투수로 인정을 받았다. 이에 오클랜드는 당시로서는 충격이었던 120만달러의 메이저리그 계약을 보장했다. 이는 1986년 캔자스시티가 미식축구 스타였던 보 잭슨을 잡기 위해 쏜 100만달러 계약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하지만 밴 포플은 단 한 번도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결국 불펜 투수로서 통산 40승52패 5.58의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1991년 뉴욕 양키스가 전체 1순위로 뽑고 역대 최고인 155만달러의 입단 보너스를 준 브라이언 테일러가 술집에서 싸우다 어깨를 다치고 결국 메이저리그에 올라오지 못하게 되자, 투수에게 1순위 지명은 마치 저주처럼 여겨졌다. 뒤이어 폴 윌슨, 크리스 벤슨, 맷 앤더슨, 브라이언 벌링턴 등의 실패작들이 쏟아졌다.
2001년 '1순위 같은 2순위' 프라이어는 마침내 그 고리를 끊는 듯했다. 프라이어는 풀타임 첫 해 사이영상 투표 3위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부상이 그를 산산조각냈다. 이들은 모두 지금의 스트라스버그 못지 않은 기대와 주목을 받았던 선수들이다. 이런데도 스트라스의 성공을 확신할 수 있을까.

린스컴의 라이벌이 될 수 있을까 ⓒ gettyimages/멀티비츠
최고의 블록버스터?
얼마전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는 로저 클레멘스라는 가장 완벽한 모범 사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클레멘스 신화는 참담하게 무너졌다.
그렉 매덕스가 이미 유니폼을 벗었고, 랜디 존슨, 톰 글래빈, 존 스몰츠의 은퇴가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이들을 대체할 수 있는 백인 또래 에이스 집단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이제 막 린스컴이 그 구심점으로 등장했을 뿐이다. 이에 프라이어에 열광했던 메이저리그는 지금은 그 관심을 스트라스버그에 온통 쏟아붓고 있다.
스트라스버그의 아쉬움은 프라이어와 달리 인기 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는 것. 하지만 월터 존슨이라는 찬란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오랫동안 야구에 목말랐던 팬들과 최신식 구장을 이미 보유하고 있는 워싱턴은 성적만 좋아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인기 구단이 될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다.
계속되는 패배로 인한 '팬심 이반' 현상을 돌려야 하는 워싱턴 입장에서도 스트라스버그 만큼 좋은 기회는 없다. 비록 보라스가 요구하는 5000만달러 계약은 올해 연봉 총액인 6000만달러보다 불과 1000만달러가 적을 뿐이지만, 흥행 카드를 잡겠다고 1억달러짜리 FA를 사오는 것보다는 훨씬 안전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워싱턴은 아예 올해도 꼴찌를 해 스트라스버그의 타자 버전인 브라이스 하퍼까지 손에 넣으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스트라스버그는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 짐 보든 전 워싱턴 단장은 1500만달러 수준에서 타결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실 2000만달러만 해도 역대 최고였던 프라이어의 2배다. 하지만 보라스가 지금까지 자신이 목표한 것을 거의 이뤄냈다는 점에서, 목이 타들어가고 있는 워싱턴이 결국은 보라스가 내민 시원한 얼음물에 영혼까지 내줄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메이저리그에서 드래프트 지명 선수가 계약을 끝내야 하는 마감 시한은 동부시간으로 8월16일 자정이다. 분침이 12를 넘어가기 바로 직전에, 스트라스버그라는 사상 최대의 모험은 시작될 것이다.







[매거진S] 리키 헨더슨, '신이 빚어낸 1번타자'

출처: 네이버 스포츠 [매거진 S]
기사입력 2009-01-09 09:03
ⓒ김형준



마운드 위에서 무서울 게 전혀 없었던 랜디 존슨이 농담으로나마 '고의 死구'를 심각하게 고려했다는 타자가 있다.
신인이었던 1989년, 존슨은 1번타자에게 당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테러를 경험했다. 1회말 존슨은 6구 승부 끝에 오클랜드의 1번타자 리키 헨더슨에게 선두타자 볼넷을 허용했다. 하지만 악몽은 이제부터였다. 헨더슨은 존슨의 다음 공에 2루, 그 다음 공에 3루를 훔쳤다. 흥분한 존슨은 2번타자의 평범한 투수땅볼을 놓쳤고, 헨더슨은 가볍게 홈을 밟았다. 헨더슨은 3회에도 선두타자 볼넷 후 2루 도루, 5회에도 선두타자 볼넷 후 2루 도루, 6회에는 2사 2루에서 볼넷으로 걸어나가 2루 도루에 성공했다(더블 스틸). 그리고 모두 홈을 밟았다. 그날 헨더슨은 4타석 4볼넷 5도루 4득점으로 존슨을 철저히 유린했다. 
완벽한 1번타자의 모습을 그려보자. 먼저 출루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베이스에 나가면 도루로 상대를 위협할 수 있어야 한다. 타선의 선봉으로서 투수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수 있어야 한다. 장타력까지 좋으면 금상첨화다.
이 모든 기준을 완벽히 충족시키는 1번타자가 있었으니, 신이 만들어낸 1번타자, 또는 1번타자 진화의 최종 테크까지 도달했던 헨더슨이다.


출루능력 : 헨더슨의 통산 타율은 3할에 한참 못미치는 .279. 하지만 헨더슨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4할대 출루율(.401)로 은퇴한 유일한 1번타자다(2위 루크 애플링 .399). '1만 타수 클럽' 24명 중에서는 데드볼 시대 선수들인 타이 콥(.433)과 트리스 스피커(.428), 그리고 스탠 뮤지얼(.417)에 이은 4위다.
헨더슨은 1980년부터 1997년까지 18년간, 한 차례(1986년 .358)를 제외하고는 모두 .390 이상을 기록했으며, 4할을 14차례 찍었다. 지난 8년간 4할대 출루율을 기록한 1번타자는 2004년 이치로(.414)와 지난해 핸리 라미레스(.400)뿐이다. 헨더슨의 출루율은 앨버트 푸홀스의 타율만큼이나 기복이 없었다. 홈(.398)과 원정(.404) 낮경기(.401)와 야간경기(.401) 우투수(.394)와 좌투수(.409)의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았으며, 가장 부진한 달(9월)의 출루율이 .382였다.
높은 출루율의 원천은 볼넷이었다. 콥의 출루율-타율 차이가 .067인 반면, 헨더슨은 .122에 달한다. 헨더슨은 2000볼넷을 달성한 4명 중 하나다. 다른 3명(배리 본즈, 베이브 루스, 테드 윌리엄스)은 장타에 대한 공포를 무기로 고의사구 또는 고의사구에 준하는 볼넷을 많이 얻어낸 선수들이다. 반면 헨더슨의 볼넷은 '내주면 끝장'이라는 각오로 임한 투수들로부터 얻어낸 것들이다. 본즈의 볼넷에서 고의사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27%인 반면 헨더슨은 3%에 불과하다.
끈질김 : 애플링이 '이리 던져도 파울, 저리 던져도 파울' 전략으로 투수를 괴롭혔다면, 헨더슨의 필살기는 '그보다 더 좁을 수 없는' 스트라이크 존이었다. 한 기자는 헨더슨의 스트라이크 존을 '히틀러의 심장보다도 작다'고 표현했다. 헨더슨은 눈과 공을 최대한 가까이 하기 위해, 마치 두꺼운 안경을 쓴 모범생이 책을 코 앞에 놓고 보듯, 웅크린 자세를 취하고 고개를 쑥 내밀었다.
헨더슨은 '도루를 주더라도 차라리 초구에 맞혀 내보내는 것이 낫다'는 존슨의 농담이 진심으로 들릴 정도로 투수를 정말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특히 방망이를 전혀 휘두르지 않은 채 6개의 공을 보고 걸어나가는 것은 그의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베이브 루스의 최다볼넷 기록을 깨기 위해 대놓고 볼을 골랐던 1997년, 헨더슨은 투수들로 하여금 타석당 4.61개의 공을 던지게 했다.


도루 : 당신에게 있어 홈런의 상징은 누구인가. 베이브 루스? 알렉스 로드리게스? (혹시 배리 본즈?) 그렇다면 탈삼진은 누구인가. 놀란 라이언? 랜디 존슨? 하지만 도루는 고민할 필요 없다. 헨더슨 말고는 나올 답이 없기 때문이다.
헨더슨은 2위 루 브록(938)보다 무려 468개가 더 많은 1406도루를 기록했다. 이는 2위보다 50%가 좋은 1위 기록으로, 연속 안타 27%(조 디마지오 56, 피트 로즈 44) 다승 25%(사이 영 511, 월터 존슨 417) 탈삼진 19%(라이언 5714, 존슨 4789) 등을 크게 앞서는 가장 압도적인 1위 기록이다. 헨더슨은 성공률에서도 81.3%(우투수 83.5, 좌투수 75.5)로 브록(75.3)을 큰 차이로 앞섰다.
헨더슨은 1980년부터 1991년까지 12년간 11개를 쓸어담는 등 총 12개의 도루 타이틀을 따냈는데, 이는 루스의 장타율 13회-홈런 12회, 윌리엄스의 출루율 12회, 본즈의 볼넷 12회, 존슨의 탈삼진 12회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록이다. 2002년 헨더슨은 보스턴에서 뛰었는데, 헨더슨이 1395개의 도루를 기록한 22.5년 동안 보스턴 구단이 기록한 총 도루수는 1382개였다.
빈스 콜맨은 헨더슨과 함께 3번의 100도루 시즌을 달성한 선수다(나머지 100도루는 모리 윌스 1번, 브록 1번). 첫 7년간 기록에서 콜맨은 586도루로 573도루의 헨더슨을 앞섰다. 하지만 헨더슨이 이후 833개를 더 추가한 반면, 콜맨은 166개에 그쳤다. 결국 헨더슨은 콜맨의 2배에 달하는 기록을 만들어냈다.
헨더슨이 하루에 두 탕 세 탕을 가볍게 뛰던 시절, 그에게 볼넷을 내준다는 것은 곧 2루타를 의미했다. 1루로 보내주고 나면 후속타자와의 승부에 집중을 하지 못해 오히려 2루타를 맞은 것보다 더 나빴다. 강력한 마운드를 자랑했던 1980년대 후반 오클랜드의 경기들은 경기 중반까지 1-0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 한 점은 헨더슨이 발로 만들어낸 점수일 때가 많았다.
장타력 : 헨더슨의 통산 장타율은 출루율(.401)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419. 그래디 사이즈모어(통산 .491)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많이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헨더슨이 서른여섯까지만 뛰었다면 그의 장타율은 .441였을 것이다(지미 롤린스 통산 .441). 마흔살의 나이로 은퇴했어도 .428를 기록할 수 있었다.
사이즈모어와 핸리 라미레스처럼 장타를 지향하는 1번타자가 등장한 지금과 달리, 헨더슨이 뛰던 시절의 1번타자는 철저히 장타를 의식하지 않는 타격을 해야 했다. 헨더슨이 요즘에 활약했다면 장타율은 훨씬 좋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헨더슨은 통산 297홈런과 함께 81개의 ML 리드오프 홈런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93년에는 80년 만에 더블헤더 리드오프 홈런을 때려낸 선수가 되기도 했다.
완벽한 1번타자 : 초기 1번타자의 첫번째 요건은 빠른 발이었다. 하지만 라이브볼 시대의 개막과 부상에 대한 우려로 도루는 더 이상 환영받지 않는 공격 옵션이 됐다. 이 흐름에 맞춰 1950년 전혀 다른 모습의 리드오프가 나타났다. 볼넷에 기반을 둔 '출루형 리드오프'였다. 주인공은 통산 타율은 .254에 불과하지만 출루율은 .394에 달했던 에디 요스트다. 1956년 요스트는 .231에 그치고도 151개의 볼넷을 얻어 .412의 출루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스트는 통산 72도루/66실패에 그쳤을 정도로 발이 느렸다.
도루의 가치가 재평가받기 시작한 것은 1962년. 모리 윌스가 104개를 기록, 사상 최초로 100도루 고지에 오른 것이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윌스는 통산 출루율이 .330에 불과했다. 그러나 요스트의 볼넷 능력과 윌스의 도루 능력을 모두 가진 헨더슨의 등장으로 이상적인 리드오프의 꿈은 마침내 실현됐다.
가장 최근에 등장한 윌리 타베라스를 비롯해 뛰어난 도루 실력을 가진 선수들은 많다. 하지만 그 누구도 헨더슨의 출루능력은 흉내내지 못했다. 오히려 발과 출루율은 반비례한다. 헨더슨의 1406도루는 그만큼 출루를 많이 한 덕분이었다. 1번타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득점이다. 헨더슨 최고의 가치는 '적시타 없는 득점'이었다. 그는 혼자 점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1번타자였다.


오른손타자가 된 왼손잡이
헨더슨은 1958년 크리스마스에 병원으로 가던 차 뒷좌석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가 두 살 때 집을 나갔고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헨더슨은 7살 때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시카고를 떠나 오클랜드에 정착했다. 고교 시절 헨더슨은 미식축구를 가장 좋아했다. 런닝백이었던 그는 졸업반 때 1100야드를 기록했고, 24개 대학으로부터 장학금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위험한 미식축구를 하지 않기를 바랐다. 헨더슨은 대신 오클랜드의 4라운드 지명을 받아들였다.
우타자인 헨더슨은 원래 왼손잡이였다. 랜디 존슨처럼 좌투우타 투수는 종종 있다. 하지만 좌투우타 타자는 극히 드물다. 역사상 4000타수 이상을 기록한 좌투우타 타자는 할 체이스와 클레온 존스, 그리고 헨더슨뿐이다. 그렇다면 헨더슨은 어떻게 해서 우타석에 들어서게 됐을까.
어린 헨더슨은 동네 친구들이 모두 우타석에 들어서는 걸 보고 꼭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원래 오른손잡이였던 어린 타이 콥이 좌타석에 들어서면 1루까지 거리가 더 짧아지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좌타자가 된 것과는 반대의 경우다. 당시 좌타자 친구가 1명만 있었더라도, 헨더슨은 더 많은 안타와 도루를 기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헨더슨은 마이너리그에서 스위치히터 변신을 시도했지만, 타격 매커니즘이 무너질 것을 우려한 팀의 만류로 이루지 못했다.
마이너리그에서 380경기 249도루를 기록한 헨더슨은 1979년 6월 만 20세181일의 나이로 데뷔했다. 그리고 이듬해 행운이 찾아왔다. 뉴욕 양키스에서 해임된 빌리 마틴이 감독으로 온 것. 공격적인 야구를 선호한 마틴은 도루에 대단히 관대했고 헨더슨에게 주저없이 그린라이트를 켜줬다. 풀타임 첫 해였던 1980년, 헨더슨은 100도루로 타이 콥의 1915년 96도루를 넘는 새 아메리칸리그 기록을 만들어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3번째 100도루였다.
1982년 헨더슨은 130개로 브록의 118개 메이저리그 기록을 경신했고, 그 이듬해에도 108개를 훔쳤다. 헨더슨의 3차례 100도루는 모두 100볼넷이 동반된 것으로, 100볼넷-100도루는 오직 헨더슨만 해낸 기록이다. 1985년 헨더슨은 143경기에서 146득점을 기록했는데, 테드 윌리엄스의 1949년 150득점 이후 최고 기록이었으며, 경기수보다 많은 득점은 1936년 루 게릭(155경기 167득점) 이후 처음이었다. 헨더슨의 전성기는 1993년까지 계속됐다.
2001년 헨더슨은 샌디에이고 유니폼을 입고 루스의 볼넷 기록과 콥의 득점 기록을 경신했다(볼넷은 이후 본즈가 재경신). 3000안타도 달성했다. 콥을 넘어서게 된 2247득점째는 홈런이었는데, 헨더슨은 홈에서 슬라이딩을 했다. 시즌 마지막 경기는 토니 그윈의 은퇴경기였다. 헨더슨은 방해하지 않기 위해 경기에 나서지 않으려 했지만 그윈이 그럴 수는 없다며 헨더슨의 손을 잡아끌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이룬 헨더슨이 은퇴를 할 것으로 예상했다(그랬다면 우리는 립켄-그윈-헨더슨 트리오를 볼 뻔했다). 하지만 헨더슨은 은퇴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2003년 자신을 원하는 팀이 없자, 헨더슨은 독립리그에 입단했고 결국 7월에 다저스 유니폼을 입었다. 2004년에도 헨더슨은 독립리그에서 91경기 37도루(2실패)로 도루왕이 됐고 .462의 출루율을 기록했다. 헨더슨은 2005년에도 월봉 3000달러에 독립리그에서 뛰었지만 더 이상의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결국 헨더슨은 마흔여섯살의 나이로 30년의 프로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엽기적인 그분 
인류 역사상 뇌의 가장 많은 부분을 사용했다는 아인슈타인이지만, 일상생활은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마릴린 먼로도 조 디마지오가 냉장고 문을 열고 '우유 어디 있어?'라고 하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라운드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똑똑했던 헨더슨도 경기장을 벗어나면 지능지수가 급격히 떨어졌다.
1993년 헨더슨은 한 여름인 8월 말이었음에도 동상에 걸렸다. 아이스팩을 한 채로 잠이 들어서였다. 2004년에는 월드시리즈가 보스턴의 4연승으로 끝난 당일, 잔칫집이었던 보스턴 구단에 걸어 6차전 표를 부탁하기도 했다. 도미니카공화국 선수에게 차로 몇 시간 걸리냐고 한 것은 유명한 일화.
2000년 헨더슨은 존 올러루드에게 왜 수비할 때 헬멧을 쓰냐고 물었다. 올러루드가 친절하게 대답해주자 헨더슨은 "맞아. 예전에도 그런 친구가 있었어"라고 했다. 황당한 올러루드의 대답은 "그거 저였거든요"였다. 둘은 토론토와 메츠에 이어 3번째로 만난 것이었다. 1996년 스티브 핀리는 헨더슨에게 대선배이시니(You have tenure) 버스에서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이를 잘못 들은 헨더슨은 "10년이라고(Ten years?). 난 16,17년 됐는데?"라고 말했다.
헨더슨은 또한 괴짜 중의 괴짜였다. 그는 한동안 경기에 들어가기 전 라커룸에서 옷을 모두 벗고 거울 앞에 서서 "리키가 최고다! 리키가 최고다!"를 외치며 나체로 스윙을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동료들이 가장 참기 힘들었던 것은 헨더슨이 말을 할 때 '나는...'이 아니라 '리키는...'으로 말을 하는 버릇이었다. 한 선수는 대기타석에 있다가 헨더슨이 삼진을 당하고 들어가면서 '괜찮아 리키, 넌 여전히 최고야'라고 되뇌이는 것을 들었다.
헨더슨은 호텔에 체크인할 때는 항상 가명을 썼다. 이에 소속 팀의 단장들은 그가 자주 쓰는 가명 몇 가지를 알고 있어야 했다. 또한 헨더슨은 등번호 24번에 엄청나게 집착, 1989년 양키스에서는 론 헤시에게 골프클럽 풀세트와 최고급 정장 한 벌을 해주고 24번을 양보받았으며, 1993년 토론토에서는 터너 워드에게 아예 현금 2만5000달러를 줬다. 그 해 헨더슨의 연봉은 350만달러였다.
헨더슨은 겸손과 거리가 먼 선수였으며 이기적이었고 거만했다. 조지 스타인브레너와 뉴욕 언론이 두손 두발을 다 들었을 정도다. 또한 헨더슨은 동료들과 자주 충돌했다. 오클랜드 시절의 호세 칸세코가 대표적인 앙숙이었다. 1999년 헨더슨은 소속 팀인 뉴욕 메츠가 애틀랜타와 챔피언십시리즈를 치르고 있는 경기 도중, 라커룸에 슬쩍 들어가 바비 보니야와 카드를 치기도 했다. 이것이 그가 경기 내에서는 대단히 뛰어난 선수였음에도 13팀을 옮겨다닌 이유였다.
화려하게 입성할 명예의 전당
13일에 발표될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 결과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헨더슨이 얻게 될 득표율이다. 2년전 칼 립켄 주니어는 역대 3위에 해당되는 98.79%, 그윈은 7위에 해당되는 97.6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헨더슨 역시 12명뿐인 '95% 클럽' 입성이 유력하며 그 이상도 기대된다. SI.com의 조 포스난스키는 헨더슨에게 사상 첫 만장일치를 허락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중요한 것은 득표율이 아니다. 또 하나의 전설이 역사로 기록되는 감동적인 순간을 우리가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 Total Baseball, Historical Baseball Abstract, Who's Better Who's Best, Baseball Timeline, Baseball Digest, Baseball Page, Baseball Library,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