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7일 일요일

[토요판 커버스토리]프로배구 ‘멘털 고수’ 삼성화재 팀의 일상 보니

출처: http://news.donga.com/Main/3/all/20131116/58930363/1
2013-11-16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멘붕’ 이길 비법 있다]
야참으로 라면 금지… 늦은밤 휴대전화 금지
‘고교팀’ 놀림 받지만… 6연속 우승 승승장구


‘코트 위의 제갈공명’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은 평소 기본 지키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동아일보DB

오전 6시 반. 잠에서 깨자마자 체중계에 올라선다. 간밤에 몰래 치킨이라도 시켜 먹은 날이면 가슴을 졸여야 한다. 기준 체중보다 500g이 더 늘거나 줄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간식으로 라면은 절대 불가. 취침을 앞둔 오후 10시 50분에는 휴대전화도 내놓아야 한다.

다이어트 합숙소의 살풍경이 아니다. 프로배구 삼성화재 선수단의 하루 일과의 처음과 끝이다. 이 원칙을 만든 사람은 ‘코트 위의 제갈공명’으로 불리는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58)이다.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는 프로에서는 보기 드문 원칙이다. 

신 감독은 “밤에 라면을 먹으면 다음 날 훈련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 휴대전화도 같은 맥락이다. 늦은 밤 친구와 통화하다 잠을 못 자면 몸 상태가 좋을 리 없다. 좋은 생활이 좋은 훈련과 결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다른 팀 선수들은 우스갯소리로 삼성화재를 ‘고교 팀’이라고 놀린다. 하지만 이 팀의 성적은 놀랍다. 신 감독은 1995년 삼성화재 창단 이후 19년째 같은 팀을 맡으면서 ‘고교 문화’의 최강 프로팀으로 이끌었다. 2005년 프로 출범 이후 통산 7회 우승. 지난 시즌까지 6연패를 이뤘다.

명장(名將)끼리는 통하는 걸까. ‘만수’(萬手·1만 가지 지략을 갖고 있다고 해서 얻은 별명)로 불리는 프로농구 모비스 유재학 감독의 스타일도 비슷하다. 불편하더라도 선수들이 기본에 충실하기를 주문한다. 그는 선수들이 약속 시간에 늦는 꼴을 못 본다. 고참이든 외국인 선수든 늦으면 가차 없이 버리고 출발한다. 식사를 할 때도 선수단이 함께 이동해 다 같이 한다. 유 감독은 “팀은 작은 사회다. 그 안에서 인간관계와 협동, 배려를 배운다. 기량은 나중 문제고 건강한 사회인으로서 기본이 먼저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모비스 주장 양동근은 유 감독의 ‘판박이’다. 양동근은 동료와 코칭스태프에게 언제나 깍듯하다. 자기관리는 더욱 칼 같다. 프로 10년 차인 그는 신인 시절부터 농구 일기를 써왔다. 자기계발을 위해 틈틈이 영어 공부도 한다. 그의 숙소 벽면에는 지금도 농구 관련 전술과 명언이 적힌 쪽지가 붙어 있다. 유 감독 밑에서 국내 최고의 가드로 거듭난 양동근은 우승 반지만 3개(2006∼2007, 2009∼2010, 2012∼2013시즌)를 모았다.

명장이 말하는 성공의 조건은 단순하다. 운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운동만 잘해서는 안 된다. 평소 생활에서 기본을 지키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런 원칙을 최초로 스포츠에 도입한 인물이 고 존 우든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농구 감독이었다. 우든 감독은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이 2000년 실시한 ‘20세기 가장 위대한 스포츠 지도자’ 설문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로 뽑혔다. 우든 감독은 2010년 100세를 일기로 타계했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최고의 지도자로 존경받고 있다. 우든 감독이 전설로 남은 것은 승리보다 과정을 중요시한 최초의 스포츠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우든 감독은 초등학교 졸업 때 아버지 조슈아 휴 우든으로부터 인생의 가치가 담긴 교훈을 선물 받았다. 아버지가 건넨 2달러짜리 우편엽서에는 
△자신에게 진실하라
△남을 도와라
△매일을 최고의 날로 만들어라
△좋은 책의 내용을 깊이 소화하라
△우정을 예술 작품처럼 아름답게 가꿔라
△만일에 대비하는 계획을 항상 세워둬라
△기도하고 모든 축복에 감사하라
는 ‘7계명’적혀 있었다. 훗날 우든 감독은 이를 바탕으로 ‘성공을 위한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성공 피라미드를 밑받침하는 건 평소 생활이다. 우든 감독의 피라미드는 수많은 스포츠 스타와 지도자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2013년 11월 13일 수요일

'75억 FA 초대박' 강민호, 천운을 타고난 사나이

http://osen.mt.co.kr/article/G1109724567
2013.11.13
OSEN=이상학 기자

[OSEN=이상학 기자] 롯데 포수 강민호(28)가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고액 FA로 초대박을 쳤다. 천운을 타고난 사나이답게 역사를 썼다. 

강민호는 13일 롯데 구단과 4년 총액 75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11일 첫 협상 때부터 두 번이나 만남을 갖는 등 충분한 교감을 이뤘고, 13일 두 번째 협상에서 금액까지 합의하며 계약 발표에 이르렀다. 지난 2004년 11월 현대에서 삼성으로 옮기며 4년 총액 60억원을 받은 심정수의 최고액 기록도 9년 만에 경신했다. 

강민호가 이처럼 FA 초대박을 이룰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실력이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역사를 쓸 수 없다. 하지만 강민호의 대박에는 '운'이라는 요소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앞으로 강민호 같은 사례가 두 번 다시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그는 천운을 타고난 사나이로 불릴 만하다. 


제주도 출신으로 포철중-포철공고를 거친 강민호는 지난 2004년 신인 드래프트 2차 지명에서 3라운드 전체 17순위로 롯데에 지명됐다. 당시 고졸 포수로 가능성을 인정받은 그는 비교적 높은 순위에 롯데로부터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계약금은 9000만원으로 특급 유망주 수준은 아니었다.

2004년 프로 데뷔 첫 해 1군에서는 3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당시 롯데에는 최기문이라는 공수겸장 포수가 주전으로 뛰고 있었다. 강민호의 자리는 백업이었다. 하지만 강민호는 최기문으로 인해 기회를 잡았다. 최기문이 팔꿈치 부상을 당하며 전열에서 이탈했고, 강민호에게 갑작스럽게 주전 기회가 온 것이다. 

강민호는 프로 2년차였던 2005년 주전과 백업을 넘나들며 104경기를 뛰었다. 20살 어린 포수가 프로 1군에서 100경기 이상 뛰는 건 흔치 않은 기회. 최기문이 수술 후 재활에 들어간 2006년부터 롯데 안방은 강민호의 차지가 됐다. 2006년에는 126경기 모두 출전하며 가능성을 펼쳐보이기 시작했다. 포수로서 경험이라는 최고 자산을 쌓은 시기였다. 

2007년부터 공수겸장 신예 포수로 확실하게 자리 잡은 강민호에게 두 번째 행운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었다. 그는 올림픽에서 진갑용의 백업 포수로 시작했으나 그가 부상을 당하자 주전 마스크를 쓰고 금메달을 견인했다. 결승전 막판 심판 볼 판정에 격분에 글러브를 집어던지는 장면은 유명했다. 당시 금메달로 그는 20대 선수의 가장 큰 고민인 병역 문제를 해결했다. 

병역이 해결된 20대 주전 포수는 강민호가 유일했다. 이미 그때부터 강민호의 FA 대박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2010년 타율 3할5리 23홈런 72타점으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찍은 강민호는 그러나 2011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공격 지표에서 꾸준히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투수리드와 수비력에서 향상을 이루며 보완을 이뤘고, FA 시장에서 최고 대우를 받기에 이르렀다. 

FA 시장 상황도 강민호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두산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팀들이 포수 고민을 안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포수 세대교체가 더뎠고, 강민호를 탐내지 않는 구단이 없었다. 게다가 롯데는 지난 2년간 이대호 홍성흔 김주찬 등 내부 FA들을 모두 놓치며 흥행에 타격을 입었다. 강민호마저 빠지면 치명타를 입을 게 뻔했다. 

그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롯데는 일찌감치 최고액을 베팅하며 눌러 앉혔다. 강민호는 시장에도 나가지 않았지만, 이미 FA 최대어로 분류돼 최고액에 사인했다. 심각한 포수 품귀 시대와 롯데의 흥행 실패까지 겹치면서 강민호는 FA 사상 최고액 대박을 쳤다. 

waw@osen.co.kr



2013년 11월 1일 금요일

‘신의 한 수’ 보스턴, 오티즈(#34) 영입 후 WS 3회 우승

출처: http://sports.donga.com/3/all/20131101/58609644/2
2013-11-01
동아닷컴 조성운 기자 madduxly@donga.com



[동아닷컴]
‘신의 한 수’란 이런 것일까? 오랫동안 ‘밤비노의 저주’에 시달리던 보스턴 레드삭스는 ‘빅 파피’ 데이빗 오티즈(38)를 영입한 뒤 10년 간 3번이나 월드시리즈 정상에 섰다.

보스턴은 지난달 31일(한국시각) 미국 메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위치한 펜웨이 파크에서 열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6-1로 승리했다.

지난 2007년 이후 6년 만의 정상 등극. 최우수선수(MVP)에는 6경기에서 홈런 2개를 포함해 16타수 11안타 6타점 타율 0.688와 OPS 1.948을 기록한 오티즈가 선정됐다.



오티즈는 지난 2002년 미네소타 트윈스 소속으로 125경기에서 20홈런을 때려냈음에도 불구하고 난데없이 방출 통보를 받았다.

가난한 미네소타는 높지 않았던 오티즈의 연봉마저 부담스러워 했고, 이에 하루아침에 논텐더 신세가 된 것.

이러한 상황에서 오티즈는 당시 보스턴을 이끌던 테오 엡스타인 단장의 구제를 받았고, 2003년 31홈런과 101타점으로 기대에 부응했다.



이후 오티즈는 보스턴이 86년 만에 월드시리즈 정상에 선 2004년 41홈런과 139타점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정상급 타자로 우뚝섰다.

또한 2006년에는 54홈런과 137타점을 기록하며 이 부문 아메리칸리그 선두에 오르며 당시 미네소타의 선택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이어 오티즈는 2007년에도 35홈런을 때려내며 보스턴의 21세기 두 번째 정상 등극에 큰 역할을 했으며, 이번 월드시리즈에서는 MVP까지 따내며 최고의 활약을 했다.

미네소타 시절 거포로 성장할 가능성만 지녔던 오티즈는 보스턴 이적 후 기량이 만개해 지난 11년간 373홈런을 때려냈고, 소속팀을 월드시리즈 정상에 세 번이나 올려놨다.

수많은 전설적인 선수들이 하지 못한 보스턴의 저주 격파. 하지만 보스턴은 오티즈를 영입한 후 10년 간 3번이나 우승하며 21세기 최고 명문 팀으로 거듭났다.

동아닷컴 조성운 기자 madduxly@donga.com



2013년 10월 22일 화요일

연봉으로 살펴본 KS,부자군단 삼성VS고효율 두산

출처: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1257219.htm
2013.10.21
김경윤기자


삼성-두산 KS 주력선수 연봉 비교표 / 스포츠서울

올시즌 9개 구단 연봉 총액 1위를 기록한 삼성과 3위에 오른 두산(55억 1700만원)이 한국시리즈(KS)에 나란히 진출했다. 양 팀 모두 프로야구 9개 구단 평균 금액을 웃도는 자금을 투입했고, 이에 걸맞는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내부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삼성은 고액 연봉자들이 이름값을 했지만 두산은 저연봉 선수들의 활약상이 더 뛰어났다.


◇삼성과 두산, 들인 돈은 비슷했다


삼성은 지난해에 비해 3.7% 오른 67억 1200만원을 투입했다. 9개 구단 중 유일하게 60억원이 넘는다. 최하위 NC(24억 5100만원)에 비해 2배가 넘는 인건비를 지불했다. 삼성의 선수 평균 연봉은 1억 2204만원이다. 이 역시 1위다. 두산은 55억 1700만원(3위)을 투자했다. 지난해에 비해 1.4% 올랐다. 두산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1억 31만원으로 4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KS 엔트리에 합류할 주요 주전 선수들의 연봉을 비교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삼성의 예상 출전 선수들의 총 몸 값은 두산의 2배가 넘는다. 삼성은 정확한 투자를 했고, 두산은 저연봉 선수들의 투혼이 빛났다고 할 수 있다.


◇저연봉 선수들이 활약한 두산


두산은 적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의 기여도가 높았다. 대표적인 선수가 유희관이다. 그의 올 시즌 연봉은 2600만원. 프로야구 최저연봉(2400만원)과 큰 차이가 없다. 그는 이번 KS에서 에이스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투수 변진수(4500만원), 오현택(3000만원), 윤명준(2400만원)이 예상 밖의 깜짝 활약을 펼쳤고, 포수 최재훈(3500만원), 야수 김재호(7000만원), 오재일(5000만원), 최주환(5000만원), 민병헌(5200만원)도 자신의 몸값을 뛰어 넘는 역할을 했다. 많은 돈을 받고도 걸맞지 않은 성적을 내는 선수들도 있다. 김선우(5억원), 정재훈(3억5000만원)은 포스트시즌(PS)에서의 활약이 미미했다. 김현수(3억1000만원)는 부상여파로 KS 초반 선발 출전이 불투명하고 김동주(7억원), 이혜천(2억원)은 아예 PS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고연봉 선수들에게 기대하고 있는 삼성


삼성은 고연봉 선수들이 이름값에 걸맞는 성적을 냈다. 이번 KS에서도 고연봉자들의 어깨가 무겁다. 끝판왕 오승환(5억5000만원)을 비롯해 10승 트리오 배영수(4억5000만원), 장원삼(4억원), 윤성환(3억원), 불펜핵심 안지만(3억원), 권혁(2억 2000만원)이 대표적이다. 주전 야수들의 몸값도 ‘억소리’가 난다. 이승엽(8억원), 진갑용(4억원), 박한이(3억5000만원), 박석민, 최형우(이상 2억8000만원) 등 5명의 야수가 받는 총 연봉이 전 선수단 연봉의 30%가 넘는다. 이번 KS에서 뛸 것으로 예상되는 저 연봉 선수들도 있다. 지난해 부상 여파로 대폭적인 연봉 삭감의 아픔을 겪은 채태인(5000만원), 배영섭(8500만원)과 정형식(6000만원)이 있다. 부상을 입은 김상수와 조동찬을 대신해 정병곤(2700만)과 김태완(7000만원)이 뛴다. 마운드에선 심창민(6000만원)이 비교적 적은 연봉을 받는다.


김경윤기자 bicycle@sportsseoul.com



[이창호의 야구, 야구인]아버지와 아들, 이토와 최재훈

출처: 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1310/h2013102116224391670.htm
2013.10.21
이창호기자

이토를 만나 야구 보는 눈을 바꾸다, 가을의 지배자가 되다


두산 포수 최재훈이 홈플레이트를 지키고 앉아 야수들에게 투 아웃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두산 베어스 제공

"보는 사람들마다 아버지와 아들 같다고 했어요."

김태룡 두산 단장은 올해 '가을 야구'에서 한국시리즈 진출의 일등공신으로 자리매김한 포수 최재훈(24)의 이야기가 나오자 서슴지 않고 말한다. 올해부터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의 사령탑을 맡아 라쿠덴과 퍼시픽리그 클라이막스 파이널 스테이지를 치르고 있는 이토 쓰토무(伊東 勤·51) 전 두산 수석코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최재훈은 이토 코치가 생각날 때면 "함께 있을 때 아버지 같은 존재였고, 저 역시 아버지처럼 따랐어요. 그 때는 내가 아들이 된 느낌이었죠"라며 털어놓곤 한다.

'아버지와 아들-'

두산의 주전 포수로 발돋움하고 있는 최재훈의 성장 스토리 속에서 이토 코치의 역할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선수 생활을 계속해야 하나, 아니면 그만 두고 다른 삶을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시절, 정신적 멘토였을 뿐 아니라 힘든 시간을 이겨내게 해준 길잡이였다.

▶ 두산의 '가을 야구'를 지배하는 포수 최재훈

최재훈은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LG와의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동안 9게임에 모두 출전했다. 지난 8일 준플레이오프 1차전과 17일 플레이오프 2차전 때 선발에서 빠진 뒤 교체 멤버로 출전했을 뿐이다. 나머지 7게임은 당당하게 주전으로서 홈플레이트를 지켰다. 

올해 포스트시즌 9게임에서 25타수에 홈런 1개를 포함한 7안타로 타율 2할8푼과 2타점, 희생타 3개, 몸에 맞는 공 2개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 12일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 때는 0-1로 뒤진 6회말 1사 1루에서 밴 헤켄으로부터 좌중간 외야 관중석에다 역전 결승 2점포를 날려 벼랑 끝에 몰린 곰에게 기사회생의 기회를 안겨 주었다. 

최재훈은 그동안 양의지보다 타격이 약해 백업 멤버에 머물렀지만 이 한방으로 방망이도 살아 있음을 보여줬다.

최재훈의 진짜 능력은 공격보다 수비에 있다. 천부적으로 강한 어깨에서 쏘아대는 2루 송구 뿐 아니라 정확하고 과감한 판단력으로 상대 작전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하고, 공격의 맥을 끊어내기도 한다. 

20일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두산이 1-0으로 아슬아슬 앞서가던 3회초 무사 1루에선 9번 윤요섭의 투수 앞 보내기 번트 때 빠르고, 크고 분명한 동작으로 타구를 잡은 유희관이 매끄럽게 2루 송구를 할 수 있도록 콜 플레이를 했다. 중전 안타로 출루했던 손주인은 2루에서 포스 아웃. LG는 동점 기회를 만드는데 실패했다. 

4회초 무사 1, 2루에서도 5번 이병규의 투수 앞 보내기 번트가 나오자 주저하지 않고 3루 송구를 지시해 2루 주자 이진영을 잡아냈다. 상대의 추격 의지에 찬물을 끼얹었다. 포수가 단순하게 투구의 공만 받아주는 역할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그라운드를 지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보여줬다. 

투수 리드와 볼 배합도 만점이었다. 타자들의 고정된 머리 속 계산을 역으로 이용하면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최재훈은 무명이다. 

2008년 덕수고를 졸업했지만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하는 팀이 없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저 그런 선수로 여겼다. 결국 두산에 신고 선수로 입단했지만 주목 받지 못하다 2010년 경찰청에 복무하면서 야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2011년 퓨처스리그 북부리그에서 타율 3할3푼3리와 홈런 16개, 타점 79개를 기록하면서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리고 2012년 두산에 돌아와 세이부 감독에서 물러나 쉬고 있다가 한국 무대를 밟게 된 명포수 출신의 이토 코치를 만나 잠재 능력을 끌어올렸다. 

▶ 일본 야구의 '살아 있는 전설' 이토, 한국에서의 좌절 

이토 코치는 1982년 일본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1위로 세이브에 입단해 22년 동안 현역 생활을 하는 동안 11차례 포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고, 퍼시픽 리그 우승 14회와 8번 재팬 시리즈 우승을 이끌어낸 '살아 있는 전설'이다. 

2004년 은퇴와 함께 세이부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고 '1점이 소중한 야구', '1점을 지키는 야구'를 강조하면서 그 해 12년 만에 재팬 시리즈 우승까지 일궈냈다. 그러나 그 후 계속된 성적 부진으로 2007년 감독에서 물러나 해설가로서 야구의 폭을 넓히다 두산에서 '러브 콜'을 하자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낯선 땅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토는 두산의 수석코치로서 성공하지 못했다. 2012년 큰 꿈을 안고 한국 생활을 시작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야구와 현실 속의 한국 야구와는 차이가 컸다. 우여곡절을 겪었다. 수석 코치로 출발해 시즌 도중 수석 코치와 타격 코치를 겸직하다 다시 이름 뿐인 수석코치로서 남아야 했다. 

결국 "한국 야구를 바꿔보고 싶다"던 생각을 내려놓고 한발 물러섰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타격 코치를 그만둘 때는 "사실상 강등"이라고 쿨하게 인정했고, 포수 조련에 집중했다. 

▶ 두산에서 찾은 희망, 신고 선수 출신의 무명 포수 최재훈 

이 때부터 오죽하면 '이토는 (최)재훈이 하고 만 논다'는 말이 나왔을까. 이토 코치는 최재훈에게 애정을 쏟았다. 때론 따끔하게 혼냈고, 때론 덕아웃에서도 장난을 치며 살갑게 지냈다.

"너에게 전부 힘을 쏟을 것"이라면서 "내가 갖고 있는 포수에 관한 것을 3분의 1은 꼭 전수 하겠다"고도 했다. 그럼 최재훈은 "모두 뺐겠다"며 스스럼없이 대꾸하면서 이토를 졸졸 따라다녔다. 

이토는 최재훈에게 포수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초 체력 뿐 아니라 경기를 보는 방법, 볼 배합하는 요령, 타자와 수 싸움하는 법, 사인 내는 법 등에 대해 두루 지도했다. 한국 야구와 일본 야구의 차이 탓에 벽에 부딪히면 조목조목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최재훈은 잘 따라 했다. 어느 날 이토 코치는 최재훈을 라커룸으로 불러 "홈런을 맞은 것은 너의 실수"라고 날 선 지적을 한 뒤 "반성해"라는 말만 던지고 돌아섰다. 이토 코치가 야속하고 무서웠지만 곧 훌훌 털어냈다. 다음 훈련 때는 다시 웃는 얼굴로 찾아가 이토 코치의 지도에 따라 비지 땀을 흘렸다. 

최재훈은 한 때 "나는 주전감도 아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며 회의에 빠졌다. "야구를 계속해야 하나"하며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토가 남긴 한마디, "너는 나를 뛰어 넘을 선수" 

그러나 이토 코치를 만나 "너는 나를 뛰어 넘을 선수"라는 격려를 받았다. 자신감이 생겼고, 당당함을 알게 됐다. 또 "실수는 털어버리고 담담하게 야구해라, 항상 겸손해야 더 잘 할 수 있다"는 조언을 마음 속 깊이 새겨 놓았다.

최재훈은 이토를 만나 포수로서 생각하는 방법을 바꿨다. 바꾼 생각은 이제 그라운드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올해 '가을 야구'에서 화려하진 않지만 가장 소중한 별로 자리 잡았다. 

현해탄 건너 일본에서도 '가을 야구'가 한창이다. 이토 롯데 감독도 최재훈의 소식을 듣게 되면 환한 미소를 머금을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똑같이 땀 흘리며 쌓아 온 '사나이의 정과 약속'을 뜨겁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리라.

한국아이닷컴 이창호기자 chang@hankooki.com



[KS] ‘일등공신’ 최재훈, “저 아직도 멀었어요”

출처: http://osen.mt.co.kr/article/G1109709557
2013.10.22
OSEN= 박현철 기자

[OSEN=박현철 기자] “제가 잘한다고 생각지 않아요. 제가 먼저 그런 생각을 갖게되면 결국 제 하락세를 스스로 만드는 꼴이 될 테니까요”.

위력적인 도루 저지와 허를 찌르는 투수리드. 준플레이오프 승부처 역전 결승포에 플레이오프에서는 크로스플레이에서 주자를 피하지 않는 투혼으로 팬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그러나 더욱 높이 평가받을 만한 부분은 바로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르는 투지와 겸손함이다. 5년 만의 팀 한국시리즈 진출에 결정적 역할을 한 포수 최재훈(24, 두산 베어스)은 “저 아직 멀었어요”라며 더욱 고개를 숙였다.

2008년 덕수고를 졸업하고 두산에 신고선수 입단한 최재훈은 2010~2011년 경찰청 2년 복무 동안 유승안 감독 등 경찰청 코칭스태프의 지도를 받으며 1군에 걸맞는 선수로 자라났다. 지난해와 올 시즌 주전 양의지를 보좌하는 백업 포수로 경험을 쌓은 최재훈은 후반기 허리 통증과 체력 고갈로 인해 흔들린 양의지를 대신해 포스트시즌 마스크를 쓰고 있다.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5경기서 2할9푼4리 1홈런 2타점을 기록한 최재훈은 LG와의 플레이오프 4경기서 2할5푼의 타격 성적을 남겼다.



최재훈이 돋보인 부분은 바로 수비 능력. 상대 타자들의 약점을 찌르는 리드로 두산의 큰 힘이 된 최재훈은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서는 도루 저지 능력으로 넥센 주자들의 그린라이트 특권을 대폭 줄였다. LG와의 플레이오프서도 좋은 수비를 보여줬는데 특히 3차전 정성훈과 이병규의 안타 때 홈으로 쇄도한 주자들과의 충돌에도 공을 놓지 않고 아웃을 이끄는 투혼을 발휘했다. 3차전 5-4 신승을 거둔 뒤 최재훈은 부축을 받으며 덕아웃으로 향했으나 이튿날에도 선발 포수로 마스크를 쓰고 5-1 승리에 기여했다.

포스트시즌은 팬들과 미디어의 집중도 차이가 확실히 다르다. 실수를 하면 엄청난 비난 공세를 받지만 좋은 플레이에는 칭찬의 정도가 굉장히 높아진다.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팀의 2연속 업셋을 이끈 최재훈을 향한 야구 관계자들의 팬들의 극찬이 이어지는 가운데 선수 본인은 “아직도 멀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저는 제가 지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스스로 ‘나 잘하고 있어. 이 정도면 잘 하는 거야’라고 생각해버리면 결국 기량 성장폭과 페이스의 저하를 제 스스로 자초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아직 멀었어요”.

예전부터 최재훈은 야구 욕심이 컸고 또 그만큼 훈련량도 대단했다. 지난해 두산 수석코치를 맡았던 이토 쓰토무 현 지바 롯데 감독은 고마키 유이치 불펜코치와 함께 최재훈을 괴롭히는 듯이 맹훈련을 시켰다. 그냥 괴롭히는 정도가 아니라 이러다 울겠다 싶을 정도의 강훈련이었다. 그러나 최재훈은 꾹 참고 이를 모두 소화했다. 이토 감독은 최재훈을 괴롭히며 웃으면서도 “저 녀석은 훗날 한국의 국가대표 포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재훈을 칭찬했다.

올 시즌도 마찬가지다. 이토 감독이 블로킹, 도루 저지, 크로스 플레이 등 포수로서 기본적인 수비 능력을 강조했고 현재 두산 배터리 코치를 맡고 있는 강성우 코치는 상대 약점을 찌르는 데 대해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 수준이다. 최재훈은 강 코치의 지도에 따라 상대를 괴롭히는 포수로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원래 경기 중 고생이 많고 훈련 강도도 높은 포수 포지션이지만 최재훈은 군말없이 훈련들을 모두 소화했고 지금은 팀을 살리는 숨은 영웅이 되었다.

야구 인기가 높아지면서 젊은 선수가 자신을 둘러싼 팬들의 응원과 사랑에 섣불리 부화뇌동되고 더 클 수 있는 선수가 아쉬운 성장세를 보이는 모습도 최근 들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 야구 원로는 “팬들이 좋아한다고 그에 만족하고 자만하는 선수가 많아지면 결국 이는 리그의 치명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최재훈은 어깨를 으쓱하기보다 “난 더 해야 한다”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farinelli@osen.co.kr


2013년 10월 21일 월요일

두산 최재훈, 홍성흔과 추억 간직한 채 꿈 키워

출처: http://sports.donga.com/SPORTS/3/all/20131020/58343484/3
2013-10-21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트위터 @kimdohoney



두산 최재훈, 홍성흔과 추억 간직한 채 꿈 키워

올 시즌 초 어느 날이었다. 두산 홍성흔(37)이 라커룸에 앉아 있을 때, 최재훈(24)이 살며시 다가왔다. 최재훈은 지난해까지 롯데에 몸담다 친정팀으로 돌아온 대선배에게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쑥스러운 듯 사진 한 장을 불쑥 내밀었다. 그가 내민 빛바랜 사진 한 장에는 둘의 13년 전 추억이 깃들어 있었다.


2000년 5월 5일이었다. 지금은 지명타자로 뛰고 있지만 한때 국가대표 포수로 이름을 날렸던 홍성흔은 두산의 안방마님으로서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그의 곁에는 어린이날 행사를 위해 짝이 된 한 초등학교 야구선수가 서 있었다. 홍성흔의 머릿속에선 이미 지워진 기억이었지만, 그 초등학교 꼬마 어린이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한 손에 풍선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홍성흔의 손을 꼭 잡고 식전행사를 지켜보고 있던 그 소년이 바로 최재훈이었다. 최재훈은 그날 이후 이 사진을 항상 가슴 속에 간직하며 ‘홍성흔 같은 포수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홍성흔은 13년 전 추억을 되살려준 최재훈이 무척 고맙고 같은 팀에 선수로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 그 사진을 자신의 휴대폰 카메라에 다시 담았다.

최재훈은 고교 졸업 후 신고선수로 두산에 입단해 고난의 시절을 거쳐 올 포스트시즌에서 자신의 이름 석자를 팬들에게 제대로 각인시키고 있다.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준PO)에서 맹활약을 펼친 그는 LG와의 PO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한껏 증명하고 있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트위터 @kimdoho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