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14일 목요일

두산 김동주 "지난해 정든 두산 떠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출처: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302140100082890007039&servicedate=20130214
2013-02-14 08:53:55
미야자키(일본)=류동혁 기자


두산 김동주가 숙소인 일본 미야자키 라그제 히도츠바호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두산 베어스제공

현역 스타들 중 엄격한 의미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불릴 수 있는 것은 그가 유일하다.

1998년 OB(두산의 전신)에서 데뷔, 무려 16년째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있다. '두목곰'이란 그의 애칭은 순도 100%. 설명이 필요없는 대한민국 간판타자. 정확성과 장타력을 겸비해 '좌승엽, 우동주'라는 말을 나오기도 했다. 

통산 평균 타율 3할9리, 272개의 홈런을 터뜨렸다. 그러나 지난해는 부상과 부진을 반복했다. 66경기에 출전, 2할9푼1리, 2개의 홈런만을 기록했다. 시즌 도중 2군으로 내려갔다 오기도 했다.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린 홍성흔을 두산에서 데려오자, '롯데가 FA 보상선수로 김동주를 데려갈 수도 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그의 심경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는 "사실 지난해 좀 힘들었다. 그래서 정든 두산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10대1 인터뷰의 주인공으로 초대했다. 두산이 전지훈련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일본 미야자키 라그제 히도츠바호텔 그의 방에서 질문세례를 퍼부었다. 

─성흔이가 주장이 됐는데 어떻게 도와주실건지요. 그리고 해외진출 기회가 있었는데 안 한 걸 지금 후회하지 않으시나요. (롯데 조성환) 

▶(동갑인 조성환과 홍성흔은 롯데에서 막역하게 지냈다) 성흔이도 워낙 경력이 많은 베테랑이잖아. 알아서 잘할 것으로 봐. 당연히 힘들어하는 부분을 상의하면 당연히 도와야지. 그리고 해외진출은 별다른 후회는 없어. 오히려 국내에 남은 게 더 잘 된 것 같아. 

─작년 시즌 재활군과 2군에 많은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당시 1군 무대에서 야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지요. 또 1군 경기를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궁금합니다.(한화 이대수)

▶2군에서 힘들었어. 물론 선수들과 교감을 나누면서 괜찮은 부분도 있었지만. 사실 가장 힘들었던 건 가족들이 걱정하니까 더 힘들더라고. 2군에서 1군 경기를 본 적이 없어.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안 보게 되더라고. 집에 있을 때도 쌍둥이들(김동주는 쌍둥이 아빠다)과 주로 놀아주면서 있었어.

(이 시점에서 질문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지난해 두산은 FA로 풀린 홍성흔을 영입했다. 그리고 롯데가 보상선수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김동주도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하지만 롯데 김시진 감독은 당시 전화통화에서 "전력이 보탬이 되는 선수는 누구든 데려온다는 원칙을 얘기한 것 뿐이다. 김동주의 이름을 직접 거론한 적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김동주에게 당시 심정에 대해 물었다. 심각한 질문이었지만, 김동주는 오히려 농담을 섞어 대답했다.) 그 얘기를 당연히 들었어요. 김시진 감독님과 인연이 없었어요. 처음에는 "왜 그러시지"라고 생각했어요.(웃으면서 한 농담이었다) 별로 가고 싶지 않았어요. 사실 지난해 다른 팀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든 적도 있었어요. 1, 2군을 왔다 갔다하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나봐요. 그런데 두산을 어떻게 떠나겠어요. 매년 연봉싸움도 하고,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미우나 고우나 이 팀이니까. (기자가 "미운 정이 든 건가요"라고 하자) 하하. 그런 것 같아요. 가족들과도 얘기를 많이 했지만, 워낙 오래있다가 보니까 안 떠나게 되더라구요. 물론 보낸다면 갈 수밖에 없지만, 이 팀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야구를 하면서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한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지.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넥센 이택근)

▶고등학교 1학년때로 돌아가고 싶어. 야구에 대한 열정이 가장 강했던 시기야. 승부욕도 가장 강했던 것 같아. 선택에 대해 후회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어. 고교 졸업 후 프로에 직행하고 싶었는데, 대학을 갔어. 그때 부모님 동의가 있어야 했거든. 근데 지금 대학 간 것에 대해서도 후회하진 않아. (김동주의 타격은 배명중-고 시절 사실상 완성됐다. 그는 "제가 훈련을 많이 안 할 것 같은 선수로 보이는데, 예전에 훈련을 죽기 살기로 했어요"라고 했다. '거기에 대한 에피소드 하나만 들려주세요'라고 하자, 그는 "배명고 1학년 때 고교 최고의 투수가 휘문고 3학년 임선동 선배셨어요. 정말 너무 잘 던지셨는데. 그때 그 선배한테 안타 하나만 만들려고 정말 날을 새서 스윙을 한 적이 있어요"라고 했다.)

─고교시절 좋은 투수로 기억하는데 야수를 선택한 이유와 지금 투수를 하지 않을 걸 후회하지 않습니까. (한화 장성호)

▶(배명고 시절 그는 고교 최고의 타자였다. 한마디로 괴물이었다. 동시에 수준급의 투수이기도 했다. 강한 어깨로 145㎞ 안팎의 패스트볼을 뿌렸다) 투수도 하고 싶었었어. 고민이 좀 있었어. 대학 들어가서 타자를 할 건지, 투수를 할 건지 고민을 했는데, 결론은 타자였어. 당시 생각에는 '더 잘하는 걸 하자'는 판단을 했었고, 타자를 더 잘했으니까. 투수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결정에 대한 후회는 없어. 

─타석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이야. 투수와 기싸움에서 이기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알려줘. (SK 임경완)

▶(김동주와 임경완은 동기다) 글쎄. 특별히 그런 건 없는데. 타석에서 항상 나를 믿고 들어가는 편이야. 당연히 기싸움에서는 지지 말아야하지. 좀 더 세부적으로는 티는 안 내지만 자신있는 투수가 있고, 자신없는 투수가 있어. 내가 타격할 때 타이밍이 맞는 투수가 분명히 있어. 그럴 때는 아무래도 더 적극적으로 하는 것 같아. 

─예전 대만과의 WBC 아시아예선 중 1루에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들어가다 어깨부상을 당하셨는데 그때 진짜 슬라이딩을 하셨던 건가요? 아님 넘어지신건가요?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넥센 강정호)

▶(사실 인터뷰 내내 김동주는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다. 강정호의 질문은 농담이 섞였다. 그 뉘앙스를 기자가 설명했지만, 여전히 김동주는 '진지모드'다) 슬라이딩이야. 그때 선두타자였기 때문에 살아나가야 한다는 생각만 했어. 아~ 정말 안했어야 했는데. 너무 많이 후회했어. 1년을 허비했으니까. 그때 몸이 가장 좋았었는데.(약간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드러난다. 표정의 변화를 처음봤다.)

─선배님에게 야구란.(넥센 이택근) 

▶인생. 거의 30년간 야구밖에 하지 않았으니까. 야구장은 집. (짧은 질문에 짧은 답변. 정말 '쿨'하다.)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때나 선배님은 정말 전설적인 분이셨습니다. 늘 궁금했던 건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야구를 잘 할 수 있을까요. 노하우가 있으시면 하나만 알려주세요. 그리고 예전 대학교 2학년 때 두산하고 연습경기가 있었는데, 선배님께 인사드렸더니 배트 한 자루를 주셨습니다. 그 방망이가 진짜 좋았는데, 그만 그날 연습경기 때 부러졌어요. 배트 하나만 또 주실수는 없으신지요. (KIA 황정립·배명고-고려대 후배)

▶아~ 정립이. 근데 그때 배트를 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배트를 준 후배들이 너무 많아서. 니가 원하면 당연히 주지. 야구장에서 보자. 

─그야말로 두산에 가장 오래있었던 프랜차이즈 스타입니다. 두산 유니폼을 입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두산 니퍼트)

일본 미야자키 기요다케 구장에서 연습하는 도중 환하게 웃고 있는 홍성흔 김동주 이원석(맨 왼쪽부터).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물론 니퍼트가 질문은 존댓말로 하지 않았다. 임의로 처리했다. 김동주는 1976년생, 니퍼트는 1981년생. 니퍼트가 동생이다) 2001년 우승했을 때가 가장 생각난다. 프로에 들어와서 처음 우승한 것이었고, 당시 선수들도 너무나 잘해줬고. 야구가 너무 재미있던 시기였어. 

─나도 그렇고 동주 형도 그렇고 이제 야구를 할 수 있는 날들이 그리 많이 남지는 않았어요. 나도 미래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많은데, 동주 형은 선수생활 이후 어떤 인생계획을 가지고 있나요(두산 홍성흔)

▶음. 글쎄.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둔 계획이 없어. 현역에서 은퇴하면 그때 물론 생각은 하겠지만, 아직 선수고 현역이기 때문에 거기까지 생각은 하지 않았어. 

─국제대회 출전 경험이 정말 풍부하시잖아요. 국제 대회에 나가면 긴장되지는 않으신지요. 부담을 떨쳐낼 수 있는 노하우는 어떤 것이 있나요.(삼성 김상수)

▶내가 생각할 때는 일단 내 마인드 자체가 긴장을 안하는 것 같아. 국제대회에서 단 한 번도 떨어본 적은 없었어. 특별한 노하우는? 음. 그냥 똑같은 야구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별 거 아니다 뭐 이런 생각. (기자가 '그럼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떨어본 적이 없습니까'고 물었다.) 프로에서는 그랬던 것 같아요. 페넌트레이스나 포스트 시즌이나 똑같은 마음으로 임했어요. 떨어본 적은 딱 한 번 있는 것 같아요. 대학교 고연전(영락없는 고려대 출신이다) 당시 많이 떨었어요. 너무나 해보고 싶었던 개인적인 로망이었거든요. 

─장타력과 정확성을 모두 겸비한 최고의 타자인데,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투수와 구종은 어떤 게 있나요.(삼성 장원삼)

▶(질문에 곧바로 시원하게 대답하던 그가 갑자기 곰곰히 생각한다) 음. 이강철 선배님, 김현욱 선배님이 가장 힘들었어. 이강철 선배는 변화구가 워낙 좋았어. 탁구공이 날아온다고 하는 표현이 정확한 것 같아. 김현욱 선배님은 싱커를 치기가 너무 힘들었어. 

─선배님, 올해 선배님과 멋지게 대결해보고 싶습니다. 근데 아직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 멋진 승부를 위해 선배님과 잘 상대할 수 있는 팁 좀 얻을 수 있을까요.(NC 이재학·두산 시절 후배)

▶재학아 왜 그래. 나보고 그냥 죽어달라는 거냐. 재학이는 좋은 투수니까 평소 실력대로 하면 좋은 성적이 날꺼야. 

─어린 시절부터 선배님의 플레이를 보고 자랐습니다. 꼭 선배님과 한 번 뛰어보고 싶습니다. 부드러운 스윙과 장타의 비결은 무엇인가요(NC 강진성)

▶나는 특유의 고집이 좀 있어. 타격 폼 바꾸는 것도 싫어하고. 내가 유일하게 폼을 바꾸지 않은 것 같아. 어렸을 때 훈련을 정말 징글징글하게 했던 것 같아. 대학교 때도 마찬가지고. 그게 쌓이면서 일정한 타격폼을 유지하니까 그런 거 아닐까. 

─시즌 초반부터 끝날때까지 배트 스피드가 똑같습니다. 시즌 끝까지 스윙 스피드를 유지하는게 매우 힘든데요, 선배님만의 노하우를 알려주세요.(LG 윤요섭)

▶나같은 경우에는 시즌 초반에는 많이 안 쳐. 힘을 아낀 뒤에 시즌 막바지에 오히려 더 많이 연습 배팅을 해. 떨어진 감을 올리는데도 효과적이고 지쳐있는 상태에서 회복도 되는 것 같아. 

─선배님 스윙을 보면, 노림수가 좋고, 장타를 칠 때도 노려치시는게 많은 것 같습니다.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기술이 아닐 것 같습니다.(웃음) 장타를 노릴 때 손목을 이용해 스윙을 하는지 매우 궁금하다. 자세하게 좀 알려주세요.(LG 오지환)

▶(약간 당황한 기색이다) 아~ 확실히 방법은 있는데. 이걸 여기서 밝히면 안될 것 같아. 나는 뭐 먹고 살라고. 개인적으로 야구장에서 만나면 가르쳐 줄께.("약속 하는거죠"라고 하자) 아. 그럼요. 지환아 야구장에서 봐.

─체력관리 비법과 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한화 김태균)

▶잘 먹고 잘 쉬고. 내가 좋아하는 거 하고. 따로 챙겨먹는 건 없어, 고민도 별로 없고. 미야자키(일본)=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취재후기>

김동주는 그만의 독특한 '쿨함'이 있다. 무뚝뚝하고 말수가 그리 많지 않다. 두산 홍성흔에게 '주장을 맡고 나서 김동주 선수와 많은 얘기를 나눴냐'고 질문하자, "동주 형이 말수가 적은 편이에요"라고 했다. 그런데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다. "지난 시즌 힘들었을 때 팀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는 솔직한 표현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의 '쿨함'에는 또 하나가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최선을 다해보고, 안되면 마는 거죠"라는 표현을 했다. 야구는 변수가 매우 많은 스포츠다. 올해 두산은 우승을 노리고 있다. 김동주는 "사실 우승은 하늘이 정해주는 것 같다. 우승을 노려서 최선을 다하고 안되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패배의식'이 아니라 김동주 특유의 의연함이 내포된 말이다. 

그는 어떤 상황에도 그렇게 큰 흔들림이 없다. '안되면 마는거지'라는 생각은 흔들리지 않는 그의 멘탈을 지탱하는 원천이다. 그는 "돌아가신 어머님의 영향이 컸다. 어렸을 때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돈이 없으면 마는 거야. 없으면 없는대로 안쓰면 되니까'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생각이 내 머리속에 박혀있다. 어머니가 저한테 좋은 재산을 남긴 셈"이라고 했다. 

사실 프로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 마인드다. 혹독한 연습이 실전으로 이어지기 위한 가장 중요한 매개체. 하지만 이런 배짱과 멘탈도 타고나거나 긴 시간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동주가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은 멘탈은 프로야구 선수로서 축복이다. 

그는 향후 선수생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사실 작년에 힘들었지만, 2군에 있을 때 '1군에 없으면 마는거지 뭐'라고 편하게 생각했어요. 다른 선수들같으면 은퇴도 고려했을텐데, 저는 그때 '2년 계약을 했고, 그 안에 잘하면 되는거고, 아니면 어쩔 수 없는거고'라고 생각했어요. 전 제 스스로 기량이 안된다고 생각되면 옷 벗고 나갈겁니다"라고 덧붙였다. 

<질문자 명단>

니퍼트, 김선우(이상 두산) 오지환 윤요섭(이상 LG) 이재학 강진성(이상 NC) 김태균 이대수 장성호(이상 한화) 강정호 이택근(이상 넥센) 황정립(KIA) 김상수 장원삼(이상 삼성) 조성환(롯데) 임경완(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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