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2-05-11 17:26
ⓒ박동희
![]() |
당신은 최고의 선수는 누구를 기억하는가? 아마도 대답은 아브라함의 가계도처럼 다양할 것이다.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 ‘철완’ 최동원, ‘헐크’ 이만수, ‘오리 궁둥이’ 김성한, ‘노송’ 김용수, ‘불사조’ 박철순, ‘명포수’ 박경완, ‘회장님’ 송진우, ‘마지막 20승 투수’ 정민태 등 역대 최고의 선수들을 거명할 터.
하지만, ‘당신이 기억하는 최고의 투수전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견은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당신이 격동의 1980년대를 살았다면 답은 하나로 집약될 게 분명하다. 선동열과 최동원이 펼친 3차례의 맞대결이 그것이다.
롯데 최동원과 해태 선동열. 그들은 한국 야구 사상 최고의 투수들이었다. 지금도 많은 야구인은 두 투수를 ‘숙명의 라이벌’이자 한국 야구 발전을 이끈 위대한 맞수로 기억한다. 사실이다. 두 투수는 갈색 말떼 속에 섞인 얼룩말과 같았다. 그만큼 두 투수의 존재감은 돋보였고, 누구도 두 투수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했다.
‘불멸의 투수’ 고 최동원과 ‘국보급 투수’ 선동열(KIA 감독)은 현역시절 세 번 맞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1승1무1패. 특히나 1987년 5월 16일에 열린 3번째 맞대결은 한국 프로야구 사상 가장 인상적인 투수전이었다. 맞대결 성적 1승1패를 기록하던 두 투수는 3번째 맞수전에서 연장 15회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그리고 4시간 56분 동안의 혈투 끝에 마침내 2대 2로 비겼다.
최동원은 연장 15회까지 60타자를 맞아 투구수 209개를 기록했고, 선동열은 56타자를 상대로 232구를 던졌다. 경기가 끝나고서 최동원은 선동열의 손을 맞잡으며 “동열아, 우리 끝날 때까지 한번 던져볼까?”하고 농을 건넸고, 선동열은 그런 선배를 보고 “형님, 한번 해볼까요?”하며 웃음으로 되받았다.
경기가 끝나고. 마운드 위에선 적이었지만, 그 아래선 절친했던 두 이의 꼭 잡은 손을 지금도 많은 야구팬은 기억하고 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현재의 야구팬들은 ‘최동원-선동열’ 맞대결에 버금가는 최고의 투수전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 한화 류현진과 KIA 윤석민의 맞대결이다.
한국 프로야구 최고 왼손 에이스 류현진(25)과 오른손 에이스 윤석민(26)은 2007년 8월 26일 광주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두 투수 모두 7이닝을 던져 윤석민이 3실점, 류현진은 1실점 호투를 펼쳤다. 그러나 8회 KIA가 대역전극을 펼치면서 두 이는 공히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다. 최동원과 선동열처럼 두 젊은 투수 역시 아직 우열을 가리지 못한 상태다.
지난 1월 13일 윤석민은 네이버 <매거진S>에서 “절친한 후배 류현진과의 맞대결을 고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동원, 선동열 선배님들처럼 ‘나도 미친 듯이 마지막까지 던지고 싶다’”며 “류현진과 야구팬의 뇌리에 영원히 남을 명승부를 펼치고 싶다”고 털어놨다. ☞ <매거진S - 윤석민 편> 바로가기
4개월 후. <스포츠춘추>가 윤석민에 이어 류현진을 찾았다. 윤석민과의 맞대결 입장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최근 호투에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 ‘불행’의 이유와 ‘불행’을 대하는 에이스의 자세를 듣기 위해서였다. 여기다 그의 오랜 꿈인 국외진출에 관해서도 듣고자 했다. 마운드에 서면 냉정한 투사가 되지만, 마운드 아래에선 환한 미소가 아름다운 청년 류현진은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
부분 리모델링이 끝난 대전구장에서 KIA-한화전이 열리고 있다. 대전 야구팬들은 팀 성적에 관계없이 연일 홈구장을 찾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눈을 크게 뜨며) 왜요?
요즘 잘 던지고 있는데 승운이 따라주지 않더군요. 5월 8일 대전구장에서 치러진 KIA전에 선발등판했을 때도 7회까지 4피안타, 1볼넷으로 2실점 했지만,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어요. 5월 10일까지 6경기에 선발등판해 5번이나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으나, 성적은 1승2패에 불과합니다. 특히나 5번의 퀄리티스타트 가운데 4번은 ‘7이닝 이상 3실점 이하’의 퀄리티스타트 플러스(QS+)였어요. 타선과 야수진의 도움을 받았다면 4, 5승은 충분히 거뒀을 것이라는 게 야구계의 중평이에요.
글쎄요. 주변에서 ‘아쉽지 않느냐’라는 말씀을 하시는데요. 저는 솔직히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다고 크게 신경쓰지 않아요. 비록 1승이지만, 평균자책이 괜찮기 때문에 그걸 위안으로 삼고 있어요. 예전에도 그런 말을 자주 했는데요. 12승 이상을 거뒀는데 평균자책은 3, 4점대라면 선발투수로 제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보단 10승 언저리를 해도 평균자책이 2점대인 게 선발투수로서 더 자격이 있다고 봐요. 그게 팀을 위해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요.
현재 평균자책이 2.14로 리그 4위입니다. WHIP(이닝당 출루허용수)은 0.93으로 KIA 윤석민에 이어 2위에요. 안타허용율은 1할9푼2리로 3위고요. 그만큼 주자를 내보내지 않고, 실점도 적었단 뜻이에요. 그래서 더 현진 씨 팬들이 승수를 쌓지 못한 걸 아쉬워하는 듯싶어요.
걱정해주시는 건 정말 고마워요(웃음). 하지만, 전 정말 승리투수가 못됐다고 신경쓰지 않는 편이에요. 해마다 그런 생각으로 던지고 있어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전 선발투수라면 평균자책이 좋아야 한다고 믿어요. 승수보단 평균자책에 신경쓰는 것도 사실이고요.
평균자책과 어떤 기록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이닝이요.
이닝?
그래도 선발투수라면 180이닝 이상은 던져야 한다고 봐요.
한 시즌에 180이닝?
(고개를 끄덕이며) 네.
지난해 KBO리그에서 180이닝 이상을 소화한 투수는 세 명에 불과해요. 2010년엔 단 두 명. 2009년에도 단 세 명에 지나지 않았어요. 한 시즌 25번 이상 선발등판을 하려면 체력 안배가 중요합니다. 거기다 현대야구는 투수 분업화 정착으로 선발투수의 완투가 더는 미덕이 아닙니다. 특히나 현진 씨는 2006년 프로 데뷔 이후 6년 연속 120이닝 이상을 던졌고, 그 가운데 4번이 180이닝 이상 투구였습니다. 무엇보다 데뷔 이래 5년간 960⅓이닝을 던졌어요. 역대 고졸 투수 가운데 데뷔 이후 5년간 현진 씨보다 더 많이 던진 이는 없습니다. 이 정도면 대개 투수는 몸 관리 차원에서도 많은 이닝을 소화하기보다 적당한 이닝을 던지려고 할 게 자명해요.
글쎄요. 저는 힘 닿는 데까지 던지고 싶어요. 선발투수가 하는 일이 그런 것이기도 하고요. 사실 해마다 투구이닝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어요. 2010, 2011년엔 조금씩 부상도 있었고. 2010년은 몸만 괜찮았으면 2007년 기록한 211이닝을 깼을 거예요. 부상 때문에 시즌 막판 5경기 정도 등판을 거르는 바람에 결국 (기록을) 깨지 못했지만요.
예전에도 그렇고, 현진 씨는 선발투수에 각별한 애정 혹은 자부심을 느끼는 듯싶어요. 젊은 ‘대투수’ 류현진이 생각하는 선발투수, 어떤 의미인가요?
한 경기를 책임져야 하는 투수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한 경기에서 선발투수의 책임범위는 어디까지라고 봅니까.
가장 많이 책임져야 하는 포지션 같아요. 누굴 원망하거나 탓할 수 없는 자리 같아요. 팀이 이기려면 실점하지 않아야 하잖아요. 누가 실책하고, 누가 안타를 못 치건 간에 투수가 공을 던질 때부터 플레이가 시작하니까, 결국엔 책임도 투수부터 지는 게 맞다고 봐요.
지난해에 이어 올 시즌도 현진 씨가 등판했을 때 유독 타선이 터지지 않는 것 같아요. 야수들의 실책도 다른 투수가 등판했을 때보다 유독 많아 보이고. 실제로 올 시즌 현진 씨가 던진 42이닝 동안 한화 득점은 13점에 불과합니다. 9이닝당 득점이 고작 2.8점밖에 되지 않아요. 9이닝을 완투해 3실점해도 결과적으로 패전투수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요. 그렇다면 현진 씨의 책임범위는 다른 선발투수에 비해 훨씬 작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그것도 별로 신경쓰지 않아요. 솔직히 어느 야수가 실책하고 싶겠어요. 실책하면 얼마나 미안하겠어요. 저는 야수가 실책했다고 투수가 인상 쓰거나 화를 낸다면 투수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
에이스 류현진은 호투를 거듭하고 있어도 한화 다이너마이트 타선은 아직 물에 젖어 있다(사진=삼성)
|
KIA 선동열 감독은 “야수들의 실책으로 패전투수가 돼도 야수를 비난하지 마라. 오히려 ‘내가 왜 삼진을 잡지 못했을까’하고 투수 스스로 반성하는 편이 낫다”고 하더군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투수는 야수를 원망하면 안 돼요. 그건 자기가 자기보고 뭐라고 하는 것과 같아요. 투수도 야수니까요. 선 감독님 말씀에 일리가 있는 것 같아요.
일전 모 방송국 휴먼다큐멘타리 프로그램에 출연해 초등학교 야구선수들에게 들려준 말이 화제가 됐어요.
아, “수비 믿고 던지면 안 돼” 했던 거요(웃음).
하하. 그래요. 당시 현진 씨가 “수비믿고 던지면 안 되지. 네가 잡아야지. ‘이 타자를 무조건 삼진으로 무조건 잡아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던지라”고 했던 말이 누리꾼 사이에 꽤 재미난 이야기로 등장했습니다. 일부에선 “류현진이 한화의 물방망이 타선과 구멍 뚫린 수비진을 우회적으로 꼬집은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어요.
전혀 그런 건 아니고요(웃음). 투수 입장에서 보면요. 투수는 삼진이고, 타자는 홈런이잖아요. 그런 의미에 이야기한 거지, 별 내용은 아니었어요(웃음).
잘 던지고도 패전투수가 되거나 승리를 따내지 못할 때 야수들이 뭐라고 해요?
별말 없더라고요(웃음). 그냥 타자들이 가끔 그래요. “현진아, 미안하다. 니가 고생이 많다”(웃음).
왜 현진 씨가 등판하면 타선이 터지지 않거나 실책이 나오는지 생각해본 적 있어요?
네, 있어요.
자신이 내린 결론은?
결론…안내렸어요. 다음 경기부터 잘 쳐주리라 기대하고 있어요(웃음).
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실책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올 시즌은 아니고요. 뭐 실책도 아니었는데요. 2010년 8월 26일 목동 넥센전에서 30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에 도전할 때가 기억나요. 그때 1회 무사 2, 3루에서 유한준 선배가 친 공이 조명에 가리는 바람에 우익수가 타구 방향을 놓치면서 2점을 내줬거든요. 그날 7회까지 4실점하면서 연속 경기 퀄리티스타트 기록이 중단됐어요.
아쉬웠나 보군요.
아니요. 반대였어요. 돌아보면 그 경기가 무척 도움이 됐어요.
도움?
그날 경기 끝내고, 다음 경기에 등판했는데 5이닝 던지고 내려갔어요. 그때부터 좀 몸이 좋지 않아서 던지지 않았거든요. 만약 퀄리티스타트 기록을 이어갔으면 그후로도 계속 던졌을 거예요. 그랬으면 아마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때 그 타구가 조명에 사라진 게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2012년 업그레이드된 ‘괴신’ 류현진
![]()
호투에도 아직 1승을 기록 중인 류현진. 그러나 5월 10일 대전구장에서 만난 류현진의 표정은 환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5월 9일 대전구장에서 KIA 선동열 감독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류)현진이나 우리 팀 (윤)석민이나 처지가 비슷하다”고 말했다. 에이스들이 등판할 때마다 타선이 침묵하기 때문이다. 선 감독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풀이했다.
“에이스가 등판하면 동료 타자들의 마음이 너무 편해질 수 있어요. 1, 2점만 뽑으면 이긴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방망이를 마구 휘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편으론 에이스가 나왔으니까 ‘오늘 경기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어요. 나도 현역 때 등판만 하면 하도 타선이 안 터지길래 타자들한테 ‘왜 나만 나오면 못 치는 거요?’하고 물은 적이 있어요. 대답은 대개 제 생각과 비슷하더군요.”
한화 한대화 감독도 선 감독과 같은 생각이었다. 다만, 한 감독은 “올 시즌 한화 타선이 이상하게 왼손 선발투수에게 약하다”는 말로 류현진의 승수 쌓기 실패 원인을 분석했다.
“4월 중순 이후 류현진이 등판하면 상대 팀에선 으레 ‘오늘 경기는 포기한다’는 생각으로 고만고만한 투수를 등판시켰어요. 그러면 우리가 이겨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어요. ‘이유가 뭔가’ 살펴봤더니 류현진이 등판할 때마다 상대 팀에서 이승우, 최성훈(이상 LG), 심동섭(KIA) 등 왼손 선발투수를 등판시켰더라고요. 이상하게 우리 팀 타자들이 그 투수들 공을 공략하지 못했어요. 하여튼 요즘 류현진만 보면 미안해 죽겠어요.”
한 감독은 “승수 쌓기에는 실패하고 있지만, 류현진의 공이 지난해보다 월등히 좋아졌다는 건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사실이다.
올 시즌 류현진의 속구 구속은 지난해보다 시속 2, 3km 높아졌다. 공끝의 묵직함도 한창 컨디션이 좋았을 때로 돌아왔다. 여기다 슬라이더의 스피드와 휘는 각도도 더 향상됐다. 간간이 던지는 커브의 위력 역시 몰라보게 좋아졌다. 올 시즌 류현진과 상대한 타자들이 “괴물에서 ‘괴신’으로 변신했다”고 칭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지금도 인터뷰를 하고 있지만, 마운드에 서면 그렇게 무표정한데, 사석에서 보면 참 해맑은 청년이란 느낌을 받아요. 어쩌면 삼성 오승환에 이어 마운드 위에서 가장 무표정한 투수가 아닐까 싶어요.
제가 좀 마운드에서 표정이 없는 편이에요. 투수라면 그게 맞다고 봐요. 솔직히 삼진 잡았다고 좋아하면 상대 팀 타자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아요. 가끔 위기에서 삼진 잡고 조용히 어퍼컷 동작을 취할 때도 있지만, 가능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요. 야수들이 실책했다고 인상 쓰거나 해보세요. 전 그런 투수는 투수 자격이 없다고 봐요.
2006년 처음 프로에 입단했을 때부터 한결같이 무표정했던 듯싶어요.
맞아요. 신인 때부터 그랬어요. 그때부터 표정에 변화가 없었던 것 같아요.
경기 전 만나 KIA 타자들이 하나같이 “류현진의 속구가 지난해보다 훨씬 강력해졌다”고 하더군요. 전력분석팀에서도 속구 구속이 2, 3km 정도 올랐다고 하고.
제가 봐도 속구는 올해 좀 좋아진 것 같아요. 지난해 시속 146, 147km가 나왔는데, 올해는 시속 151km까지 기록했어요. 아무래도 몸이 좋아지니까 구속도 상승하는 것 같아요.
현재 몸 상태는 어느 정도로 좋은 거예요?
작년엔 어깨 등쪽이 아팠고요. 2010년엔 팔꿈치가 좋지 않았아요. 지금은 양쪽 모두 좋아진 상태에요.
한화 코칭스태프에서 그런 말을 하더군요. “류현진이 보기엔 흐느적흐느적 하는 것 같지만, 몸 관리 하나는 최고”라고요. 몸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어요?
저는 웨이트트레이닝보다 보강운동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투구하는 날 빼고 거의 매일 해요. 하루에 40분씩 트레이너 코치님과 어깨, 팔꿈치 보강운동을 하고 있어요. 보강운동을 하면 잔근육이 좋아지고, 부상 위험도 덜하고 힘도 더 생기는 것 같아요. 사실 제 투구폼이 부드러워 보이니까 제 몸도 부드럽겠지 생각하시는데,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웃음). 꾸준한 운동이 계속 필요할 것 같아요. (뭔가 생각하다가) 속구는 좋아졌는데, 문제는 변화구가 좀 말을 안 듣네요(웃음).
![]()
스프링캠프에서 류현진이 트레이너 코치와 함께 보강운동을 하고 있다.(사진=한화)
|
변화구라면 어떤 구종?
서클체인지업 실투가 많아졌어요. 홈런 맞은 것도 거의 체인지업이었어요. 슬라이더도 던지다 하나 맞긴 했는데, 대부분 체인지업이었어요.
야구 연구서적 가운데 그런 내용이 있더군요. 속구 구속이 증가하면 체인지업 구속도 올라가고, 속구 공끝이 좋아지면, 체인지업의 떨어지는 각도가 둔해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런 것 같아요. 속구 스피드가 좋은 날엔 팔 스윙도 자연스럽게 빨라져요. 저는 속구와 체인지업을 같은 투구폼, 같은 팔 스윙으로 던지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속구 구속이 빠른 날엔 체인지업을 던질 때도 평소보다 팔 스윙이 빨라지고, 스피드도 10, 20km가량 늘어나는 것 같아요. 떨어지는 각도도 좀 밋밋해지고요. 체인지업이 낮게 깔려야 하는데, 높은 코스로 형성되다 보니까 자주 맞는 게 아닌가 싶어요.
올 시즌 슬라이더 구사율이 높아졌다고 분석하는 야구전문가가 많아요. 하지만, 화요일 KIA전에선 커브가 돋보이더군요.
올 시즌 슬라이더를 많이 던지긴 했어요. KIA전에선 (최)희섭이 형한테만 슬라이더 던지고, 거의 던지지 않았어요. 상대 팀에 따라 변화구 결정구를 결정하는데, 그날은 커브로 효과를 좀 본 것 같아요.
![]()
류현진(사진 왼쪽부터)의 서클체인지업 그립은 중지로 공을 잡지만, 구대성의 서클체인지업 그립은 중지를 공에서 뗀 상태로 던진다(사진=한화)
|
서클체인지업 이야기가 나와 하는 말입니다. 현진 씨의 체인지업은 국내 아니 아시아 최고로 꼽히고 있습니다. 뛰어난 체인지업을 던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프로 데뷔할 때 구대성 선배님으로부터 배운 건 다 아시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구대성 선배님이 알려준 것과는 다른 그립으로 서클체인지업을 던지고 있어요. 구 선배님은 체인지업 던질 때 중지는 공에서 떼라고 하셨는데요. 저는 중지도 공에 붙인 채 던지고 있어요. 특별히 비결이라고 말하긴 그런데요. 전 체인지업을 던질 때 오른손 타자 기준 바깥쪽을 향해 의식적으로 손을 틀어요. 그래서 싱커처럼 조금 역회전 돼서 떨어지는 것 같아요.
전 서클체인지업은 속구 던질 때와 같은 투구폼, 같은 팔 스윙으로 던지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야 속구처럼 오는데 공은 느리고, 떨어지는 각도도 커져요. 타자가 속기에도 좋고요. 다른 투수들도 그걸 알면 좀더 체인지업 구사능력이 좋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체인지업 구사능력만 보면 다른 투수들은 어떻다고 봐요?
(윤)석민이 형도 좋고, TV 보니까 삼성 외국인 투수 미치 탈보트 선수도 좋은 것 같아요. 석민이 형은 속구 던질 때에 비해 팔 스윙이 조금 느리긴 한데, 체인지업 각을 크게 하려고 천전히 스윙하는 것 같아요.
속구 위력도 위력이지만, 제구력도 업그레이드됐다는 평이 많아요. 실제로 올 시즌 9이닝당 볼넷이 1.93으로 이 부문 4위에요. 지난해는 시즌 초반 볼넷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리고 시즌 내내 제구 불안을 경험하기도 했어요.
저는 볼넷 주면 안타나 홈런 맞는 것보다 더 짜증 나요. 돌아보면 어릴 때부터 제구 향상에 신경 쓴 게 지금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 제구 향상에 신경쓴 거예요?
어릴 때 망 같은 것에 구멍을 뚫어서 거기다 공을 집어넣는 훈련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투수는 스피드보단 제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윤석민과의 맞대결? 먼저 마운드에서 내려가지 않는다.”
![]()
한국 최고의 좌우완 투수 류현진(사진 왼쪽부터)과 윤석민(사진=삼성)
|
‘최동원-선동열’ 맞대결 이후 각종 빅매치가 이뤄졌다. 그러나 두 투수 맞대결의 인상이 원체 강해선지 야구팬들은 그 정도 무게감의 빅매치가 다시 한번 이뤄지길 희망한다. 2000년 이후 한 번 기회가 있었다. 왼손 에이스간의 맞대결이었다. 바로 류현진과 SK 김광현의 맞대결이었다. 2010년 5월 23일 두 투수는 대전구장에서 물러설 수 없는 맞대결을 펼치기로 했다. 언론과 야구팬의 관심이 대전구장으로 쏠린 건 당연했다. 당시 류현진과 김광현은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있던 터라, 두 이의 맞대결은 ‘최동원-선동열’ 이후 최고의 빅매치가 예상됐다.
그러나 기대는 현실화하지 못했다. 경기 시작 1시간 전부터 비가 뿌리기 시작했고, 결국 우천취소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많은 야구팬은 그때의 아쉬움을 ‘류현진-윤석민’ 맞대결로 풀고자 한다. 과연 두 투수의 맞대결은 성사될 수 있을까. 한화 한대화 감독과 KIA 선동열 감독은 “기회가 되면 맞대결을 피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윤석민도 같은 입장이다. 과연 류현진의 반응은 어떨까.
많은 야구팬이 현재 최고의 왼손 에이스인 현진 씨와 오른손 에이스인 윤석민의 맞대결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윤석민과의 맞대결 기억나요?
(기억을 더듬다가) 아마 1승1패일 걸요. 이제 3차전 해야죠(웃음).
실제론 한 번 선발 맞대결을 펼쳤어요. 결과는 두 투수 모두 승패를 기록하지 못하며 무승부로 끝났어요. 일전에 윤석민한테 물으니까 “류현진이라면 꼭 한번 맞붙고 싶다”고 하더군요.
저도 하고 싶어요(웃음).
젊은 ‘대투수’ 류현진이 생각하는 윤석민은 어떤 투수입니까.
최고의 투수죠. 속구 구속이라든지, 제구, 변화구, 어느 것 하나 모자름이 없는 톱클래스죠.
일부에선 역대 성적을 토대로 현진 씨가 더 좋은 투수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사실 석민이 형은 팀 사정 때문에 마무리를 맡은 적도 있어요. 그래서 좀 비교하기 그래요. 제가 석민이 형보다 나은 건…체인지업밖엔 없는 것 같아요. 속구, 슬라이더는 석민이 형이 저보다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두 선수가 무척 친하죠?
네.
혹시 맞대결 이야기는 나눈 적이 없어요?
그런 이야기는 서로 안 했던 것 같아요.
만약 두 선수가 맞붙는다 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과거 ‘최동원-선동열’처럼 연장 15회까지 사투를 펼칠까요.
그렇게까지 가면 안 되고요(웃음). 둘 중에 먼저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사람이 진다고 봐야죠. 음, 15회까지 가도 재밌겠네요.
만약 경기가 팽팽하게 동점을 이뤄 9회를 넘긴다면, 누가 먼저 내려갈까요.
제가 석민이 형보다 좀 더 던질 것 같아요. 점수가 0대 0이라면 서로 120개까진 던지겠죠. 전 아마 150개까진 던지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먼저 내려가진 않으려고 할 거 같아요.
윤석민처럼 현진 씨도 당연히 맞대결을 피하진 않겠지요?
윤석민처럼 현진 씨도 당연히 맞대결을 피하진 않겠지요?
그럼요. 피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저도 꼭 던져보고 싶어요. 기회가 없을 뿐이죠. 신이 성사를 시켜주시면 따를 생각이에요. 가능한 대전구장에서 붙으면 좋을 것 같아요(웃음). 너무 욕심이 과하나.
대전이나 광주구장이나 투수들에게 썩 유리한 구장은 아니에요.
솔직히 서울처럼 큰 곳에서 붙고 싶어요.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
2010년 5월 11일 청주구장에서 열린 LG와의 경기에서 9회까지 탈삼진 17개를 기록하며 정규이닝 최다 탈삼진을 기록한 류현진이 경기를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오고 있다(사진=한화)
|
원래 현진 씨의 맞대결 상대는 SK 김광현이었어요. 지금도 라이벌이고요.
석민이 형도 그렇지만, (김)광현이랑도 친해요. 요즘은 못하는데 그전엔 전화통화도 자주 했어요. 이상하게 석민이 형과 광현이랑은 고교 때부터 붙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광현이랑은 정규시즌에서 한번 붙을 뻔했는데, 비로 취소 됐죠.
우천취소될 때 심정이 어땠어요?
그때는 솔직히…‘그냥 취소되라’ 했어요(웃음).
왜요?
제가 이길 수도 있고, 광현이가 이길 수도 있는데, 그 한 경기로 누구는 엄청난 조명을 받고, 누구는 지면 난리 날 게 분명했거든요(웃음). 사실 그런 부담감이 있었어요. 음, 솔직히 광현이나 저나 라이벌 의식 같은 건 없어요. 그저 경기에 나가면 서로 이겨야 하는 입장이니까. 뭐 그런 거지, 특별한 의식은 하지 않아요.
얼마 전 김광현이 퓨처스리그에서 실전투구를 했습니다. 5월이 넘어가기 전 1군 복귀가 예상되는데요. ‘류현진의 라이벌’ 김광현, 어떤 투수로 생각해요?
광현이는 무척 파워풀한 선수에요. 전체적으로 투구폼도 그렇고. 파워피쳐죠. 맞춰 잡는 것 없이 타자를 윽박지르는 스타일에요. 1군에 올라가면 분명히 잘 던질 거예요.
“만약 국외진출을 한다면, 일본보단 미국이 우선이다.”
![]()
2007년 한 시상식장에서 이대호(사진 왼쪽부터)와 양준혁, 류현진이 함께 서 있는 장면(사진=삼성)
|
류현진이 두려워하는 타자가 있을까 싶어요. 지난해만 놓고보면 SK 최정과 롯데 이대호, 전준우에게 약했어요.
특히나 (이)대호형한테 약한 편이에요.
빙고! 지난해 이대호는 현진 씨와의 맞대결에서 10타석 8타수 4안타 2홈런을 기록했어요.
이상하게 제 공은 되게 잘 쳐요. 뭘 던져도(웃음). 대호 형이 몸은 그래도 되게 애 같아요. 저한테 홈런을 치거나 안타 치면 “역시 넌 내 동생이다”하는데, 삼진 먹거나 그러면 “야, 니 전화하지 마라”그래요(웃음).
그런 이대호도 올 시즌부터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뛰고 있습니다. FA(자유계약선수)자격을 취득하고서 국외진출에 성공했는데요. 현진 씨도 올 시즌이 끝나면 7년 차 FA가 되서 구단 동의하에 국외진출할 수 있습니다. 많은 국외리그 스카우트가 그걸 알고 현진 씨를 관찰하고 있어요. 미국 스프링캠프 때도 여러 팀의 스카우트가 현진 씨를 보러 캠프로 찾아오더군요. 물론 미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도 있겠지만, 제가 알기론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도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요.
FA 자격을 획득해도 지금은 조심스러워요. 일단 한화 팀 성적이 좋아야하고요. 구단의 허락도 있어야 한다고 봐요. ‘막’ 무리하게, 팬들을 실망시키면서까지 국외진출을 하고 싶진 않아요.
그래요. 한화 입장도 충분히 고려해야겠지요. 어쩌면 키는 한화가 쥐고 있는 것이니까요. 많은 야구인은 ‘만약’이란 전제 아래 현진 씨가 국외진출을 한다면 일본보단 미국을 택했으면 합니다. 한국 최고의 왼손 에이스가 가장 큰 무대인 미 메이저리그를 밟기를 바라는 마음인데요.
저도 만약 국외진출을 한다면 일본보단 미국에 갔으면 좋겠어요. 일본은 미국 들렀다가고(웃음). 제 스타일상 일본하고는 조금 안 맞는 것 같고요. 미국은 조금 자신감이 있는 게 국제대회에서 미국 선수들과 맞붙어보면 일본보단 확실히 적극적인 것 같아요. 체인지업에도 조금 잘 속고. 정말 재미있는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막상 메이저리그에 가보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존경심과 자신감을 갖고 뛴다면 소기의 성과는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일본 니혼햄 파이터스에서 뛰던 다르빗슈 유가 메이저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어요.
지난주 일요일인가, 다르빗슈가 (추)신수형 팀이랑 붙는 걸 봤어요. 다르빗슈는 속구 구속도 좋고, 변화구도 다양한 투수에요. 제구도 좋고요. 모든 걸 다 갖췄으니까 메이저리그에서도 잘 던지는 것 같아요. 전 아직 다르빗슈 따라가려면 먼 것 같아요.
글쎄요. 다르빗슈의 장점을 현진 씨도 모두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속구 구속이 조금 더 높아질 필요가 있다”는 말은 하더군요.
메이저리그에서 통하려면 최고 속구 구속보단 평균 구속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아요. 평균구속 91마일(약 146km)을 7회까지 던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르빗슈 속구 구속보단 떨어지지만, 91마일 정도를 꾸준히 던지면 왼손투수의 이점을 고려할 때 다르빗슈 속구보다 크게 떨어질 것 같진 않아요.
향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특별히 준비하는 게 있어요?
지금 준비하는 건 없어요. 구종도 그대로고요.
팀 선배 박찬호는 뭐라고 조언하던가요?
일단 영어를 공부하라고(웃음).
영어라, 좋은 조언이네요.
포수랑 ‘토킹’ 하려면 영어공부를 하라고 하시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웃음). (박)찬호 형은 기술적인 이야기는 많이 안 하시고, 마인드 컨트롤이라든가, 몸 관리에 대해 많이 말씀해주세요.
현진 씨 에이전트가 스콧 보라스죠? 국외진출 준비는 잘하고 있답니까.
맞아요. 보라스에요. 지금 어떻게 준비하는지는 모르겠어요. 중요한 건 제가 지금 한화 소속이고, 한화 유니폼을 입는 게 자랑스럽다는 거예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개인적인 꿈은 언젠가 이루고 싶지만, 구단과 동료, 팬들께 피해를 주면서까지 제 꿈을 이루고 싶진 않아요.
올 시즌 꼭 이루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뭡니까.
가을에 꼭 야구하고 싶어요. 가을까지 야구하다보면 개인성적도 당연히 좋을 거라고 보고요. 개인적으로는 끝까지 던져보고 싶기도 해요.
끝까지?
지난 2년동안 풀타임으로 계속 던지지 못했어요. 그래서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등판하는 게 목표에요.
각별히 신경 쓰는 평균자책은 어느 정도까지 거두고 싶어요?
평균자책은 2점대가 목표에요. 1점대는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웃음).
지금 페이스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석민이 형이 평균자책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대요(웃음).
![]()
류현진의 호투 장면(사진=한화)
|
어느 롯데 선수가 그러더군요. “만약 2006년 류현진이 롯데로 왔다면 지금쯤 부산을 대표하는 ‘포스트 최동원’이 돼 있을 것”이라고요. 일부에선 류현진이 보다 강팀에 입단했다면 개인 기록에서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솔직히 다른 팀에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만약 롯데 갔으면 제가 이렇게까지 성장하진 못했을 거라고 봐요. 생각해보세요. 그때 롯데에서 누가 선발로 제게 기회를 주겠어요. 저는 다른 팀보다 한화가 정말 좋아요. 한화한테 늘 감사한 마음이에요(웃음).
마지막 질문입니다. 내년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열립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WBC 대표팀에 차출되면 당연히 가야죠. ‘뭔가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보단 이번엔 꼭 우승하고 싶어요. 1회 대회 때 4강, 2회 대회에서 준우승했으니 이젠 우승만 남았다고 생각해요. 2009년 WBC 때는 별로 못 던져서 아쉬움이 남아 있어요.
윤석민에게도 같은 질문을 한 바 있습니다. 여자친구와는 잘 지내고 있죠?
(화들짝 놀라며) 뭘 잘지내요? 에이, 유도신문하신다(웃음). 진짜 (여자친구) 없어요. 진짜. 부모님은 빨리 데리고 오라고 하시는데, 제가 못 데리고 가고 있어요. 저도 결혼은 빨리 하고 싶어요. 누구…좋은 사람 있나요?(웃음)
![]()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