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2-11-16 11:23
ⓒ김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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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4일, 추신수(30)와 류현진(25)은 미국으로 날아갔다. 원래부터 동반 출국을 계획하지 않았지만 류현진이 LA다저스로부터 2,573만 7737달러 33센트(한화 약 280억 원)의 포스팅 금액을 제시받자 출국 일정을 조정, 추신수와 함께 떠나게 된 것이다.
추신수와 류현진의 인터뷰는 LA다저스의 포스팅 입찰이 결정되기 전인 11월 8일, 부산에서 진행됐다. 다음날 제주도에서 열리는 야구클리닉을 위해 서울서 부산으로 이동, 개인적인 일을 봤던 추신수를 따라 류현진도 부산까지 동행했고, 제주도도 함께 갈 것이라고 했다. 한화에서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포스팅 진출을 허락해주면서 팀을 나오게 된 류현진은 추신수와 ‘바늘과 실’처럼 움직였고,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추신수로부터 메이저리그에 대한 다양한 얘기들을 듣고 물으면서 마음의 준비를 해나갔다.
11월 8일 오후 부산에서 만난 류현진은 이전과 다름이 없었다. 언론에선 연일 그와 관련된 기사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는데, 이 청년은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도 마치 남의 일인 양 맛집을 찾아다니고, 부산의 명소를 돌아보는 등 모처럼 선수가 아닌 일반인 류현진으로 돌아가 야구장 밖 생활을 만끽했다.
8일 오후까지만 해도 언론에서는 메이저리그 포스팅 입찰 마감을 앞둔 류현진의 상황과 메이저리그의 현지 분위기를 전하며 입찰액이 얼마인지를 놓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양산해 냈지만 정작 류현진은 태평해도 너~무 태평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되는 사안들이라 자신이 초조해 하고 조급해 한다고 달라질 건 아무 것도 없다는 이유를 들이댄다.
이미 메이저리거로 활약 중인 추신수는 후배의 메이저리그 도전에 대해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인터뷰 대부분의 내용이 후배에 대한 조언과 충고로 이어졌지만 문제는 추신수 또한 현재 트레이드 대상으로 지목돼 있어 빠르면 이번 겨울에 다른 팀 유니폼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메이저리그’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는 두 선후배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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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맨' 촬영을 하며 남다른 재미와 긴장감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촬영에 임했다는 추신수와 류현진. 이 방송을 통해 추신수는 'Go Choo'로, 류현진은 '국민 귀요미'로 불려지게 됐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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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할 때만 해도 ‘런닝맨’이 방송되지 않은 시점이라 기자 입장에선 ‘런닝맨’에서 보여준 두 선수의 활약상이 궁금했다. 추신수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추신수(추):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힘들게 촬영했어요. 그 프로그램 특성상 매 게임이 서프라이즈이잖아요. 이상한 야구 게임도 있고 승용차를 끄는 게임도 있고…. 시즌 끝나고 운동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몸을 쓰다 보니까 정말 힘들더라고요. 특히 승용차 끄는 게임이 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사전에 양해를 구했을 거예요. 우리가 하지 않겠다고 하면 방송 분량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거절을 못했었죠.(그런데 실제 방송에선 예고편과 달리 승용차를 끄는 장면은 한 컷도 나오지 않았다).
류현진(류): 이름표 떼기가 재밌었어요. 신수 형은 (김)종국이 형이랑 맞붙었다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져 종국이 형한테 이름표를 떼이고 말았어요.
추: 어휴, 정말 아쉬워요. 제가 조금만 생각을 더 했더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는데. 처음 출연해 보니까 요령이 좀 부족했던 것 같아요.
류: 전 종국이 형을 배신했어요. 종국이 형 이름표를 제가 뗐으니까. 악수하는 척 하다가…. (생각만 해도 기분 좋다는 듯이 류현진은 계속 싱글벙글 웃어댄다).
추: 출연 멤버들과 함께 고생을 하면서도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게 찍었던 것 같아요.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류: 전 종국이 형이랑 많이 친해질 수 있었어요. 얘기도 많이 나누고. 예능은 첫 출연이었는데 재미도 있었고, 하루 재미있게 놀다 온 기분이었어요. 신수 형이 은근 승부욕이 강해 질 때마다 힘들어했지만 전 그냥 즐겼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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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8일 부산에서 진행된 추신수-류현진의 '유쾌한 인터뷰'.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두고 있는 류현진한테 추신수의 존재는 든든한 선배이자 '우리 형'이었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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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은 자신의 메이저리그 포스팅 입찰이 어떻게 되는 지의 여부보다 최근 계속 기사가 쏟아지고 있는 추신수의 트레이드에 대해 더 큰 관심을 나타냈다.
류: 형, 진짜 다른 팀으로 가는 거예요?
추: 아마도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 같아.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가 윈터미팅 때 메이저리그 단장들과 미팅을 갖고 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고 들었어. 그런데 막상 그런 움직임이 있다고 하니까 현진이랑 같은 팀에서 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 그것도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의 팀에서 뛴다면 최상의 시나리오 같은데.
류: 진짜 그랬으면 좋겠어요. 전 형이랑 같은 팀에서 뛴다면 걱정은 반으로 줄어들 것 같아요. 형이 알아서 다 도와줄 거니까(웃음).
추: 넌, 진짜 ‘연구 대상’이야. 그 능글거림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아냐? 나한테 찾아온 후배가 내 용품들을 말도 안 하고 그냥 가져가는 놈은 너 밖에 없었다.
류: 하하, 사실 지금 신고 있는 이 신발도 신수 형 거예요. 형 발 사이즈가 나랑 똑같아요. 형 방으로 놀러갔다가 신발이 예뻐서 그냥 신고 나왔어요.
추: 현진이의 이런 성격이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무덤덤함, 별로 걱정하지 않는 태평한 마음들,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성격 등등이 외국에서 활동하는데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고 봐. 난 너무 예민해서 문제인데, 현진이 성격은 정말 내가 뺏을 수만 있다면 뺏고 싶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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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아시안게임 때 추신수와 같은 방을 썼던 류현진. 류현진은 추신수, 봉중근과 함께 생활하면서 메이저리그에 대한 얘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고, 이때부터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고 한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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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은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대회에서 처음 만난 추신수의 이미지를 잊지 못했다. 부상으로 대표팀 합류가 늦어진 추신수가 타석에서 방망이를 휘두르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추신수의 파워가 남달랐다고 말한다. 한국의 장타자들이 즐비한 대표팀에서조차 추신수는 돋보이는 존재였다.
류: 형, 제가 언제부터 메이저리그에 가서 야구하고 싶다는 결심을 굳힌 줄 아세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형이랑 (봉)중근이 형, (송)은범이 형이 같은 아파트를 사용했잖아요. 그때 훈련이나 시합 끝나면 할 게 없으니까 방에 모여 앉아 수다 떨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중근이 형이랑 신수 형이랑 메이저리그의 세계에 대해 많은 얘기들을 풀어내셨어요. 오랜 시간동안 형들이랑 함께 하면서 멀게만 느껴졌던 메이저리그가 내 앞에 와 있는 듯 했고, 기회가 된다면 도전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었죠.
추: 네 말대로라면 광저우 아시안게임 선수촌 아파트에서 류현진의 인생이 결정난 셈이네. 그때 대표팀 생활하면서 정말 재밌었어. 우리가 너한테는 빨래도 안 시켰잖아. 금메달 따려면 네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국보급 투수를 잘 모셔야 한다며 빨래는 죄다 송은범을 시켰는데, 결국 네가 빨래 안 한 대가를 금메달로 보상해줬지.
류: 제가 제일 막내였고 ‘방졸’이었는데 대우는 최고참 대우를 받았으니까(웃음). 금메달 못따면 밀린 빨래가 죄다 저한테 돌아올 것 같아 혼신의 힘을 다해 던졌습니다. 저 때문에 졸지에 빨래 담당이 되신 은범이 형한테는 미안하면서 고마웠고요.
추: 난 네가 하루 빨리 메이저리그로 오기를 바랐어. 그동안 한국 야구가 메이저리그에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거든. 프로 선수 출신 중 단 한 명도 메이저리그 문턱을 넘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일본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엄청난 대우를 받고 뛰는 걸 보면 배가 아프다 못해 쓰릴 지경이었지. 한국은 절대로 일본보다 야구 실력이 뒤떨어지지 않아. 단, 메이저리그에선 한국 야구를 제대로 파악할 만큼의 관심도 선수도 없다고 생각했던 거지. 그런 점에서 현진이가 미국으로 온다면 한국 야구의 실력과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
류: 저도 그런 점에서 어깨가 무거워요. 아직 가게 될지, 어떨지 결정 나진 않았지만 프로야구 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는 타이틀이 알게 모르게 부담을 주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형! 걱정마세요. 제가 적응만큼은 끝내주잖아요. 형한테도 바로 적응했는데요 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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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에서 혼자 생활했던 추신수는 류현진이 미국 진출이 더할 나위 없이 반갑다. 여건이 허락하는 한, 류현진의 미국 정착을 위해 도움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이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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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는 평소 후배들 잘 챙기기로 유명하다. 스프링캠프 때마다 만나는 마이너리그 후배들한테는 자신의 용품을 아낌없이 내놓고 식사를 함께 하면서 그들의 고충도 들어주고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건넨다. 하물며 류현진의 미국 진출이 가시권에 들어왔는데 ‘바늘’이 ‘실’을 생각하는 마음이야 오죽할까.
추신수는 류현진에게 자신의 루키 시절 추억담을 꺼내 놓았다.
추신수는 류현진에게 자신의 루키 시절 추억담을 꺼내 놓았다.
추: 내가 2001년 시애틀 루키리그에 합류했을 때 요즘 말로 ‘멘붕’ 상태였었어. 한국 고교야구에서는 최고의 실력을 가졌다고 평가받았던 내가 트리플도 아닌 루키리그였는데 나보다 잘 하는 애들이 ‘수두룩 빽빽’인 거야. 아, 내가 야구를 잘하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절망감이 들었었지. 하지만 현진이는 이미 국제대회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잖아. 그렇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너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거고.
류: 그래도 걱정은 돼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선수들과 어울려 생활하는 부분에서요. 한화에 있을 때 외국인선수들을 대하며 느꼈던 감정을 반대로 제가 그들 입장이 되는 거잖아요. 잘 어울릴 자신도 있고, 제가 먼저 다가가서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것도 아는데, 문제는 말(언어)이 안 된다는 거죠(웃음).
추: 나도 처음에 미국갔을 때는 영어 A, B, C 밖에 몰랐어. 넌 그래도 외국인 선수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했다며?
추: 나도 처음에 미국갔을 때는 영어 A, B, C 밖에 몰랐어. 넌 그래도 외국인 선수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했다며?
류: 형, 그게 순전 ‘콩글리쉬’였어요.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선수 입장에선 ‘콩글리쉬’를 받아줬지만 제가 미국 가서 그런 언어를 구사하면 미국 애들이 날 완전 이상한 놈으로 볼 것 같아요.
추: 현진아, 경기가 끝나면 매번 클럽하우스에서 기자들을 만나게 돼. 첫 번째 질문이 ‘오늘 경기가 어떠했느냐’는 내용이거든. 만약 네가 등판한 날 기자들이 너한테 그런 질문을 한다면 넌 어떻게 대답할래?
류: 뭘 고민해요. 잘 던졌으면 ‘good’, 못 던졌으면 ‘no good’이지(웃음).
추: 하하, 역시 류현진이야! 처음에는 통역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불필요한 말을 해서 오해를 사면 안 되고. 만약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된다면 ‘신인’의 자세로 다시 시작해야 될 거야. 한국에선 최고의 투수였지만, 거기선 3,4선발 정도의 대우를 받을 수 있어. 내가 잘났다는 생각보다는 무엇이든지 배운다는 자세로 임하는 게 중요해. 예를 들어 ‘야구의 신’이 왔다고 치자. 매일 홈런 세 개씩 때리고 수비는 완벽 그 자체야. 그런데 선수들과 어울리지 않고 자기 할 것만 하고 지내. 그렇다면 선수들이 그 선수를 좋아할까? 절대 그렇지 않아.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팀워크를 중시해. 기쁨도 슬픔도 같이 나누고 마음을 털어 놓는 그런 선수에게 정을 느끼게 되지. 영어가 안 되더라도 선수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는 빠지지 마. 통역을 대동하고 가서라도 그런 자리에는 가급적 함께 하도록 해. 야구도 중요하지만 야구 외의 선수들과의 관계, 구단 관계자들과의 관계, 모두 중요해. 야구는 항상 잘 할 수 없어. 잘 할 때는 아쉬울 게 없지만, 내가 못하고 있을 때는 아쉬운 게 많아지거든. 그럴 때 도움이 돼. 평소 네가 쌓아둔 인간관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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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다저스와의 연봉 협상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류현진. 기자와의 인터뷰 때만 해도 그는 '한국 프로야구 선수 출신의 최초 메이저리그 진출'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헐값에 미국으로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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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LA다저스의 포스팅 금액이 공개되고, 류현진은 연봉 협상을 위해 LA로 건너갔지만, 인터뷰를 할 때만 해도 LA다저스란 팀이 노출되지 않은 탓에 류현진과 추신수는 류현진이 미국에 가게 된다면 어느 정도의 몸값을 받아야 하는지를 놓고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았다.
류: 형, 근데 미국은 장거리 이동이 많잖아요. 시차도 있고.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아요?
추: 많이 힘들지. 어떨 때는 원정경기 갔다가 새벽에 도착해서 3시간 자고 야구장으로 출근한 적도 있으니까. 무승부가 계속 될 때는 새벽까지 경기를 치른 적도 있었어. 시차에다 이동에 따른 체력소모 등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부분이야. 그래도 선발투수는 나은 편이야. 로테이션이 있기 때문에 체력 안배를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포스팅 입찰이 성사됐다고 해도 연봉 또한 중요한 부분인데, 현진이는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어?
류: 가고 싶다고 해서 적은 연봉을 받고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연봉이 적은 선수는 구단에서도 쉽게 처리하잖아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바로 버려 버리니까. 즉 기다려주질 않는 거죠. 반면에 비싼 돈을 지급한 선수한테는 그걸 빼 먹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잖아요. 신경도 많이 써주고 대우도 좋고. 에이전트는 절 3,4선발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정말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몸값을 받고 싶어요.
추: 그건 현진이 말이 맞아. 선수들 몸값은 그 선수의 가치를 대변해주는 거야. 100원을 주고 산 물건과 1000원을 주고 산 물건이 있다면 어떤 게 더 애착이 가겠어. 100원 짜리는 조금 쓰다가 기대에 못 미치면 금세 버릴 수 있거든. 1000원은 그래도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더 관찰하려 할 것이고.
류: 한국 프로야구 선수 최초의 메이저리그 진출이라는 타이틀이 오기와 자극이 돼요. 만약 만족할 만한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한국 복귀는 꿈도 꾸지 않을 거예요. 야구인생의 승부를 걸었고, 어렸을 때부터 소원했던 무대에 진출하는 건데, 승부를 보기 전에 돌아오는 건 류현진 답지가 않은 거죠. 형, 전 미국에서 마흔 살 까지 살 거예요.
추: 왜 마흔 살 까지야?
류: 난 마흔 살에 은퇴할 거예요. 형이랑 나랑 다섯 살 차이 나니까 난 마흔 살에, 형은 마흔 다섯 살에 동시에 은퇴해요. 미국에서(웃음).
추: 뭐? 마흔 다섯? 어휴, 내가 그때까지 뛸 수 있겠나. 무엇보다 한화 팬들이 현진이 보고 싶어 난리 날 텐데.
류: 이번 일을 겪으면서 새롭게 깨달은 게 있어요. 한화 팬들 중 다수가 저의 미국 진출을 응원해 주셨거든요. 한화의 열혈 팬이지만 제 꿈을 위해 미국으로 가는 걸 이해해주신 거예요. 그만큼 팬 문화가 성숙됐다는 걸 느꼈어요. 만약 제가 미국에서 좋은 모습으로 정착해 가고 있다면 팬들은 굳이 한화로 돌아와서 마무리하길 바라기 보단 멋진 모습으로 미국에서 은퇴하길 바라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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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남자와 덤덤한 남자의 조합은 의외로 꽤 괜찮은 호흡을 보여준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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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신수 형! 결혼하니까 좋아요? 형은 서른 살 밖에 안 된 나이에 아이가 셋이나 있고, 아름다우신 형수님도 계시고…, 완전 부러워요.
추: 나도 야구 다음으로 잘 한 게 결혼을 일찍 했다는 사실이야. 지금까지 결혼 안 하고 혼자 있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갔을지도 몰라. 서로 아무 것도 없이, 빈 몸으로 만나서 하나씩 만들고 이뤄가고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과정에서 쌓인 아내와의 사랑과 정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지. 어느 선수의 아내보다 우리 와이프는 정말 심하게 고생하며 내 뒷바라지를 해줬거든. 마이너리그 원정 경기 따라와서는 다른 선수 부부와 한 방을 같이 쓴 적도 있어. 방 값을 아끼려고. 그런 생활이 마이너리그에서는 일반화 돼 있었고. 그런데 그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는 바람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었지. 지금은 그런 일들이 소중한 추억이 됐고, 이젠 경제적으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내가 성공해서 만난 아내가 아닌, 내가 마이너리그의 밑바닥에 있을 때부터 날 믿고 미국까지 건너온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부부보다 우리 부부 사이가 특별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류: 형, 그럼 전 어떤 여자를 만나야 해요? 결혼한 형들을 보면 가끔은 부럽기도, 또 가끔은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는 게 편하다는 생각도 해요(웃음).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말하는 선배들도 계시거든요.
추: 세상의 모든 일이 완벽할 수가 없잖아. 나 또한 세 아이의 아빠이다 보니 야구 끝나고 집에 들어가도 제대로 쉴 수가 없어. 아내하고만 데이트 하고 싶은데 세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다녀야 해서 아이들 뒤쫓아 다니다 보면 야구할 때보다 더 기운이 빠져. 그래도 그런 생활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어. 나의 분신들, 가족들이고, 무엇보다 내가 없는 자리를 대신해 아내가 가정을 튼튼히 지켜주고 있으니까. 난 이렇게 오랫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있으면 아이들보다 와이프가 더 보고 싶다(웃음).
류: 형이 좀 유별나긴 해요. 매일 전화 통화하시면서 형수님한테 ‘보고싶다’ ‘사랑한다’는 말씀을 어찌나 잘 하시던지. 저도 형처럼 미국 생활을 혼자가 아닌 둘이 같이 했더라면 덜 외로웠을 것 같은데, 아직 만나는 여자가 없다 보니 싱글로 갈 수밖에 없어요. 형이 나중에 좋은 여성 분 좀 소개시켜 주세요.
추: 너 하는 것 보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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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귀국 일정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로 생각했던 한국시리즈 시구가 무산된 데 대해 아쉬움을 나타낸 추신수는 다음 기회를 약속했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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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신수 형이 이번에 일찍 귀국했었잖아요. 그 이유가 한국시리즈 시구 때문이라는 게 사실이에요?
추: 그렇지. 그게 아니었다면 일찍 들어올 일이 없었지. 뭐, 다 알려진 부분이지만 시구를 못하게 된 건 많이 아쉬워. 미국에서 한국시리즈 시구 제의를 받고 정말 행복한 마음으로 들어왔거든. 한국의 프로야구 팬들에게 제대로 인사를 하고 싶었고, 야구장에서 감독님들, 코치님들, 그리고 선후배들을 찾아뵙고 따뜻한 정도 느끼고 싶었고…. 그런데 유니폼 문제로 결국엔 무산되고 말았지만, 다음에 또 좋은 기회가 있겠지.
류: 전 미국 간다는 결심을 굳힌 이후부터 엄마 아빠의 걱정이 더 커지셨어요. 내일 모레 포스팅 입찰 여부가 발표되는데 부모님은 마치 수험생을 둔 학부모의 심정으로 매일 기도 중이세요. 그동안 한국에서 등판할 때마다 홈, 원정 가리지 않고 제가 나오는 날에는 빠짐없이 관중석에 앉아 계셨거든요. 이젠 그러실 수 없어 많이 아쉬우실 거예요. 앞으로는 텔레비전으로 부모님께 인사하려고요(웃음).
추: 현진이가 다 컸네. 부모님 마음도 헤아릴 줄 알고. 네가 아마 군대를 다녀와서 그럴 거야.
류: 형, 이런 얘기 함부로 하면 2년 (군에)다녀오신 ‘형님’들한테 혼나요. 우리야 고작 4주 기초군사훈련 받았는데, 이런 사람들이 군 생활 운운하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전 논산에서 했고, 형은 부산에서 하셨잖아요. 부산은 정말 편했을 것 같아요. 대우 잘 받으셨죠?
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야, 형은 분대장도 했어. 야간행군도 제대로 다 마쳤다고. 발에 물집 잡혀가면서. 특혜 받는다는 오해가 싫어서 모든 훈련에 앞장 서 참가했고, 단 한 번도 열외가 없었어.
류: 전 야간행군은 안 하고, 주간 행군만 했어요. 육교 내려오다가 발목을 접질리는 바람에 밑으로 구른 적도 있었어요. 그때 국군병원으로 이송돼 엑스레이를 찍는데 의사 분께서 ‘너, 여기 놀러왔지?’하며 아무 이상이 없다고 돌려보내려고 하시더라고요. 전 아파서 죽겠다고 하는데. 그래서 협상(?) 끝에 반 깁스하고 하루 입원하며 좀 쉬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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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내년 시즌의 향방이 달라진다. 미국에서 서로 몸 만들기에 나설 예정인 추신수와 류현진. 두 선수의 진한 형제애가 메이저리그에서 진가를 발휘해주길 기대해본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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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형, 그런데 어느 팀에서 저한테 관심을 나타냈을까요? 기사화 되는 팀들을 보니까 다들 쟁쟁한 팀들인데. 제 포스팅 금액으로 얼마를 써서 냈을지 정말 궁금해요.
추: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폭소). 현진이가 겉으론 신경쓰지 않은 척 하면서 내심 걱정이 됐었구나. 내가 알기론 너를 위해 거액의 베팅을 한 구단이 많다고 들었는데. 재미있는 건 미국보다 한국에서 류현진의 가치가 저평가됐다는 부분이야. 미국의 스카우터들은 너에 대해 대단히 좋은 평가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사실 넌 한국이라는 야구 전체를 등에 업고 가는 거라 심적 부담이 굉장할 거야. 하지만 류현진이라면 이런 부담스런 상황조차도 즐길 수 있는 강심장이라고 믿어. 하여튼 현진아, 형이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 미국 오게 되면 각 지역별로 한국 음식점, 맛집 등은 형이 죄다 꿰고 있으니까 언제든지 말만 해라. 리스트 넘겨줄 테니까.
류: 형, 그 말씀 꼭 지키셔야 해요. 형, 사랑합니다.
추: 현진아, 형도 널 사랑한다. 하하
인터뷰를 마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부산 시내로 나간 두 선수들. 조용히 식사를 하고 싶어 했지만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과시했다. 특히 부산에서 추신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그때 류현진이 농담처럼 이런 말을 던진다. “서울 가면 이 정도가 아닌데 부산에 오면 난 신수 형의 ‘그냥 동생’이라니까. 한국 프로야구에선 내가 ‘짱’이었는데….”
‘런닝맨’을 통해 ‘Go Choo’와 ‘국민 귀요미’로 등극한 추신수-류현진은 ‘메이저리그’라는 공통분모 외에도 진한 형제애를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더해 갔다. 과연 내년 시즌 메이저리그 마운드와 타석에서 맞붙는 추신수와 류현진을 보게 될 수 있을까. 상상만 해도 기분 좋아지고 흥분되는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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