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3일 목요일

[매거진S] NC 김경문 감독이 노래하는 '공룡의 꿈'

출처: 네이버 스포츠 [매거진 S]
기사입력 2011-10-21 10:27
ⓒ이영미


전라남도 강진에 위치한 강진베이스볼파크는 현재 제 9구단 NC다이노스 창단팀의 가을 캠프가 한창이다. 김경문 감독을 비롯해 모든 코칭스태프들과 선수들이 지난 11일부터 처음으로 NC다이노스 유니폼을 입고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했다. 강진베이스볼파크는 야구장 앞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는 것 외엔 4면의 야구장과 실내훈련장, 식당, 숙소 외엔 말 그대로 ‘암 것도’ 없는 적막강산이었다.
하지만 투수조, 야수조, 포수조 등 3개 구장으로 나뉘어서 진행되는 훈련만큼은 선수들의 열기로 뜨겁다 못해 데일 정도였다. 가을캠프가 시작된지 불과 4일째. 선수들을 가르치는 코치들도, 훈련을 하는 선수들도, 훈련 자체가 고달프고 힘들긴 하지만, 간간이 터지는 웃음 소리에 부족한 에너지를 채워가는 듯하다.
아침부터 시작된 훈련은 하루에 오전 오후 야간 훈련까지 모두 세 차례 이어진다. 한 마디로 잠자리에서 일어난 이후부터는 밥 먹고 훈련, 밥 먹고 훈련을 반복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딱히 할 일도 없을 것 같다. 야구장과 숙소 외엔 볼 것도, 놀 것도 없는 위치에 선수들 속으로 깊이 들어가 있는 김경문 감독을 만났다.
신생팀 NC다이노스를 맡아 야심차게 첫 발을 내딛은 김경문 감독을 전남 강진군에 위치한 강진베이스볼파크에서 만났다. 팀은 달라졌지만 야구에 대한 그의 열정은 이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사진=일요신문 박은숙 기자)
“두산팬들의 상실감, 충분히 이해한다”
지난 6월 두산 사령탑에서 물러난 후 곧장 미국 라스베가스로 떠났던 김경문 감독. 그를 지켜보는 야구관계자들은 안타까움을 드러내면서도 그가 그리 오랜 시간 야인 생활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시 신생팀 NC다이노스는 사령탑 선정에 고민 중인 상태였고, 2011시즌을 마치면 결과에 따라 옷을 벗어야 하는 감독들이 생겨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즉 감독들의 자리 이동이 예상되는 가운데 김경문 감독은 영입 후보 0순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가 9월 1일 NC다이노스 창단팀 감독으로 선임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야구인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지만, 두산 팬들은 적잖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산 사령탑에서 물러난 지 얼마 안 돼 다른 팀 감독으로 옮겨가는 ‘달 감독’의 모습에 큰 충격과 혼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감독이 NC다이노스의 감독직 제안을 받아들이기까지엔 진한 번민과 갈등의 시간들이 존재했다고 밝힌다.
“내가 두산 팬이라고 해도 내 상황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시간상으로 그렇다. 내 마음도 이상했는데, 팬들은 오죽했겠나. 그러나 난 두산 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감독직에서 물러나면서 NC다이노스 감독직을 약속하지도 않았고, 이렇게 빨리 다른 팀 감독으로 가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한국에 있으면 여기저기 찾는 사람들도 많고, 기자들의 관심도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머리도 식히고 야구도 볼 겸 미국으로 떠났던 것이다. 미국에서 지내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가운데, NC로부터 감독직 제안을 받았다.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두산 팬들이었다. 나의 사퇴를 아쉬워하고 마음 아파하면서 신문에 광고까지 내준 그 팬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그래서 쉽게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팬클럽 ‘두산베어스를 사랑하는 최강 10번타자’에선 김경문 감독의 사퇴에 대한 아쉬움을 광고로 풀어낸 바 있다. 호주머니를 털어 모은 광고비를 통해 한국을 떠나 존재하지 않는 김 감독에게 ‘감독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란 내용의 멋진 선물을 일간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 소식을 모르고 있던 김 감독은 한국으로 돌아와선, 팬들이 그 광고를 액자로 만들어 집으로 보낸 걸 받아들고서야 팬들의 사랑에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의 따뜻함을 꼈다고 한다.
“난 내 행동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하는 게 싫다. 마치 구차한 변명 같아 보여서 더더욱 입을 열지 않는 편이다. 두산을 떠날 때도, 그래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NC 감독을 맡게 된 부분도, 솔직히 ‘사실이 이러이러했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 또한 두산 팬들 입장에선 변명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기자 분이 물어보니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입을 열겠다. 난 단 1%도 두산팬들한테 오해를 살 만한 일도, 또 부끄러운 일도 한 적이 없다.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 그걸 믿고 안 믿고는 팬들의 몫이다.”
지난 6월 갑작스런 자진사퇴로 두산팬들을 충격에 빠트렸던 김경문 감독은 시즌 중 신생팀을 맡게 되며 구설에 올랐다. 그러나 김 감독은 만약 자신이 두산팬이라고 해도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한다.(사진=일요신문 박은숙 기자)
“말로만 우승을 약속하는 감독이 되기 싫었다”
김 감독은 올시즌이 두산과 3년 계약의 마지막 해였다. 11월이면 그가 원하든, 구단이 원하든, 자동적으로 계약 해지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중에 자진사퇴를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해 사퇴 후 처음으로 마음을 내보였다.
“난 두산 감독을 하면서 잠실구장에 많은 팬들이 찾아와 뜨거운 응원을 보내고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주는 데 대해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 두산에서 감독으로 8년을 몸 담고 있으면서 그 자부심 때문에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올해는 팬들도, 선수들도 서로 힘든 상처를 안고 살았다. 그로 인해 팀 성적은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었고, 나 또한 참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간들을 보냈다. 그런데 올시즌 시작하기 전에 내가 팬들에게 약속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두산의 우승이었다. 확실히 우승하겠다고 약속한 놈이 맨날 입으로만 우승을 논하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 입으로만 야구하는 감독같았다. 그래서 구단에 사퇴 의사를 밝혔던 것이다.”
구단에선 두 차례나 김 감독의 사퇴를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존심이 상하고 자괴감까지 느낀 감독 입장에선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일부 팬들은 감독이 물러나야 한다고 게시판을 달구고 있었고, 선수들도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솔직히 내가 그만 두면 선수단이 새로운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분위기로 전환될 것이라고 믿었다. 중간에 감독직에서 물러나는 건 개인적으로 불명예스런 일이다. 누가 스스로 옷을 벗겠다고 하고 싶겠나. 선수단을 다시 일깨우려면 강한 충격요법이 필요했고,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결단을 내린 것이다.”
“뒤늦게 꽃피운 선수들의 스토리가 나올 것”
두산과 관련된 얘기를 어렵게 이어나가던 김 감독은 “이젠 두산 얘기말고 NC다이노스 팀에 대해 질문을 해줬으면 좋겠다”란 말로 화제를 바꾸려고 했다.
김 감독은 50여명의 선수들과 함께 첫 훈련을 시작한 날을 떠올렸다.
“우리 팀에는 어린 선수들도 많고, 사연 있는 선수들도 있다. 그런데 나이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모든 선수들의 눈빛에는 하고자하는 의지가 강하다. 첫 날 선수들의 눈빛을 보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선수들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고민이 많았다. 내가 창단팀을 잘 꾸려갈 수 있을지, 새로운 도전이 무모한 도전은 되지 않을지, 걱정이 되더라. 그런데 선수들의 눈빛을 통해 내 선택이 잘한 선택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선수들을 위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다.”
21일 발표된 NC다이노스의 공식 엠블럼(자료 : NC다이노스 구단)
김 감독은 비록 시작은 어려움이 많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NC다이노스가 명문팀이 될 수 있도록 초석을 잘 다지고 싶다고 말한다. 공개트라이아웃을 통해 선발된 선수들에 대해서도 애정을 듬뿍 드러냈다.
“프로를 경험했지만,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프로에서 떠난 선수들이 많았다. 그들도 한 번쯤은 꽃망울을 터트릴 때가 되지 않았겠나. 절실하면 그만큼 소중하고, 결과를 얻기 위해 더 노력하기 마련이다. 그런 선수들이 우리팀에서 꽃망울을 터트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스타라는 건, 단순히 야구만 잘해서 스타가 아니다.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여성팬들에게 인기가 있는 선수도 있어야 하고, 가슴 찡한 사연을 안고 정상에 올라서는 히든카드도 만들어야 한다. 신생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시나리오고 그래서 영화로 만들 수도 있는 부분이다. 흰 도화지는 만들어졌다. 그 위에 우리가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가 문제다. 그건 훈련을 통해 하나둘씩 해답을 얻어나갈 계획이다.”
김경문 감독이 NC를 맡게 되자 갑자기 박찬호가 신생팀 코치로 갈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가 등장했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박찬호를 코치로 데려오려면 자신이 받는 연봉의 절반을 떼어줘도 모자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로 더 이상의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사진=일요신문 박은숙 기자)
“박찬호 코치? 더 큰 그림을 그릴 선수다”
김 감독은 박승호 수석코치, 김광림 타격코치, 강인권 배터리 코치 외에 넥센에서 은퇴 후 SK에서 주루코치를 맡았던 전준호 코치, 박영태 전 롯데수석코치, 구동우, 지연규 투수코치, 전종화 불펜코치, 그리고 1990년대 삼성 에이스로 활약했고, 일본 오릭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은 김상엽 투수코치를 영입해 코치진 인선을 마무리했다. 코칭스태프를 구성하면서 김 감독은 또 다른 숙제를 안고 있었다고 토로한다.
“코칭스태프를 꾸려야 하는데 다른 팀은 아직 시즌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라 최대한 조심스럽게, 상대팀에 피해가 안 가게끔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했다. 나도 감독 생활할 때 다른 데서 우리 팀 코치를 데려간다는 얘기를 들을 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더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코칭스태프가 선임되자마자 곧장 전지훈련을 시작한 탓에 정작 김 감독과 코치들은 제대로 환영식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당장은 어떤 자리를 갖는 것보다 선수들의 체력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코치들 또한 선수들 못지 않게 하루 세 차례의 훈련을 시키느라 녹초가 되기 일쑤다.
인터뷰 말미에 ‘박찬호의 코치 영입설’에 대해 대놓고 질문을 해봤다. 김 감독은 미소를 지으며 “박찬호같은 대선수가 우리 팀 코치로 오려면 내 연봉의 절반을 떼어줘도 모자랄 것이다”라고 우스개 소리를 한 후 “내 욕심을 내기 보단, 찬호가 더 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지금은 코치보단, 우리가 제주도로 전지훈련을 갔을 때 찬호가 선수단을 방문해서 선수들에게 경험에서 우러나는 조언들을 들려주고, 선수들의 훈련을 봐주는 것으로만 약속이 돼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김 감독에게 플레이오프에 올라간 SK와 롯데와의 경기 결과에 대한 예상을 묻자, 노련한 그는 “내 성격 잘 알지 않나. 다른 팀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는 걸. 난 그저, 우리 NC가 언제쯤 포스트시즌에 올라가서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을지를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비켜나갔다.
김경문 감독과의 즉문즉답
이번에는 자리를 옮겨 김경문 감독이 묵고 있는 숙소 베란다에서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김 감독이 이 숙소를 좋아하는 이유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숙소 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었던 것. 아침에 눈을 뜨고 베란다로 나오면 김 감독은 비릿한 바다 내음을 맡으며 정신을 가다듬는다고 말한다. 인터뷰 형식을 Q&A로 진행했다.
-유니폼이 두산 베어스 유니폼과 흡사하다. 부담스러울 것도 같은데.
“유니폼 제작은 감독이 관여할 부분이 아니다. 이것만큼은 구단에서 정하기 때문에 유니폼이 나온 다음 알게 됐다.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두산에서 8년을 보냈다. 지금 NC 다이노스 선수들과 훈련을 하지만, 종종 이전 생활들이 떠오를 것 같다.
“서울에선 승부에 예민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성적이 안 좋으면 주위에 사람들이 없고 나 혼자만 남았다. 혼자 술 마시고 늦게 잠자리에 들고…, 그런 생활들의 반복이었다. 여기 들어와선 가급적 옛날 생활을 떠올리기 보단 지금 선수들을 어떻게 끌어올려야 하는지 고민의 연속이다. 여기선 맑은 공기, 좋은 날씨, 이런 것들만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여전히 많은 두산 팬들은 김경문 감독의 NC행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충분히 오해를 할 수 있는 상황이다. 나조차도 미국으로 떠나면서 내가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 몰랐으니까. 성적이 안 좋은 데 대해 책임을 지고 두산 감독직에서 물러났을 때 많은 팬들이 아쉬움을 드러내며 응원의 박수를 보내줬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다른 팀 감독으로 간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위로를 할 수 있었을까. 좀 전에 위에서도 대답했지만, 두산에서 물러나기 전 NC랑 미리 얘기가 됐다거나, 그래서 그만뒀다거나, 또 이렇게 될 줄 알고 미국으로 떠났다는 소문에 대해선 1%의 거짓도 없다는 말을 자신있게 할 수 있다. 내가 안타까운 건 그들이 내 말을 믿고 안 믿고가 아니라, 나로 인해 그들이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김경문 야구는 ‘화수분 야구’로 대변된다. NC다이노스에서도 그런 야구를 펼쳐 보일 생각인가.
“그런 말은 매스컴에서 지은 용어다. 난 화수분 야구를 주장하는 감독이 되기보다 선수들한테 ‘큰형’으로 다가서고 싶다. 여전히 감독이란 자리 때문에 날 어려워하고 가까이 다가서길 꺼려하는 선수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난 마음 속으로 ‘너희들이 어려울 때 찾아올 수 있는 큰형이 되겠다’라고 다짐한다. ‘화수분 야구’는 나한테 적용되는 표현이 아니다.”
-인터뷰 내내 ‘감독이란 자리가 외로운 자리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감독도 인간이다. 항상 강한 척 해야 한다. 인터뷰할 때마다 속으로는 자신없으면서도 4강 갈 수 있다고 ‘뻥’도 쳐야 한다. 그렇게 잘난 척 하다가 경기 끝나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야구장을 빠져 나오면 외로움이 물밀 듯하다. 그럴 땐 코치들과 단골 횟집가서 폭탄주 몇 잔 마시고 들어가서 야구 하이라이트 보고 잔다. 코치들도 없으면 혼자 마시는 것이고.”
신생팀의 목표를 4강이라고 잡은 건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하는 김경문 감독. 선수들의 눈을 통해 자신이 그들을 위해 도와줄 일이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사진=일요신문 박은숙 기자)
-그렇다면 NC다이노스 감독 취임식 때 2013년 첫 해부터 4강에 오르겠다고 선언했는데, 이것도 ‘뻥’이었나?(웃음)
“창단팀이라고 해서 엄살을 부리는 건 보기 싫지 않겠나. 목표를 그렇게 가져야 그 밑에라도 갈 수 있을 것이다. 9팀 중 꼴찌만 안 하겠다고 말하는 건 재미없을 것이다. ‘뻥’일지, 사실일지,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다.”
-프로축구 전남 드래곤즈 정해성 감독과 절친으로 알고 있는데.
“대학(고려대) 동기면서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다. 해성이는 기숙사 생활할 때부터 리더십이 남달랐다. 후배들을 아주 잘 다뤘다(?) 하하. 해성이가 외유내강형 스타일이지만 난 그 친구를 통해 너무 많은 걸 배웠다. 우린 서로 기를 주고 받는 사이다. 내가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 따고 왔을 때 해성이가 일부러 찾아와선 내 기를 전수받고 갔었다(웃음). 자주 만나 식사도 하고 술도 한 잔 하고, 친구지만 내가 많이 의지하는 감독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며 야구 선수로 생활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아버지가 작은 사업을 하시는 바람에 이사를 자주 다녔다. 돌이켜보면 그리 유명하지도, 엄청난 스타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야구를 꽤 잘한 편이었다. 대학을 혼자 들어간 것도 아니고 2명을 데리고 들어갔으니까. 그런데 대학 입학 후 안 좋은 일들이 생겼다. 특히 머리를 다쳐서 5일간 혼수상태로 지냈던 게 결정타였다. 결국 한달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니까 선수로 뛸 수 있는 근육들이 모두 빠지고 몸이 엉망이 되었다.
-프로 와서도 좋은 실력을 보여주진 못한 걸로 알려졌는데.
“그때는 또 허리가 좋지 않아서 수술을 하게 됐다. 몸에 고장들이 많이 나면서 점점 선수 생활에 회의가 들었다. 오히려 선수보다는 지도자 생활이 나한테 더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은퇴를 계획하고 지도자 준비를 했던 것 같다.”
-김경문 감독이 두산에서 물러난 후 김성근, 박종훈 감독 등 지도자들이 줄줄이 자진사퇴 또는 경질 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내가 스타트를 잘못 끊은 모양이다. 마치 내가 이상한 선례를 남긴 것 같기도 하고. (박)종훈이 그만두는 거 보면서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두 레전드 스타의 죽음도 지켜봐야 했는데….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다. (장)효조 형이랑 최동원 씨는 한국 야구를 위해 더 일해야 할 분들이다. 그렇게 허망하게 가시니까 인생이 참 허무해지더라.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으셨으면 저렇게 빨리 세상을 떠나셨을까 싶기도 하고. 코치도, 감독도 참 힘든 직업이다.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들을 참고 삭히는 일이 태반이다. 가끔은 한 번씩 터트려야 하는데 참고 참는 일을 반복하다보니 화병이 생길 때도 있다. 가장 무서운 건 불면증이다.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놓치고 나면 그 날 밤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다. 가끔은 잠자리에 들기 전 두려울 때도 있었다. 잠이 오지 않을까봐.”
김경문 감독은 연고지인 창원에 NC다이노스가 야구 붐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당장 성적 내기에 급급할 게 아니라 비록 2군 경기일지라도 팬들이 많이 찾는 야구문화를 만들고 싶은 바람도 있다. 그러면서 이런 마음을 내비친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강한 팀’이 NC가 추구하는 목표이다. 신생팀을 맡아서 기초를 잘 다져놓은 다음 2013년 시즌 전까지 기존의 프로팀들에게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는 팀으로 성장시키고 싶다. 그때쯤이면 김경문 야구가 무슨 야구가 되고 있는 지, 윤곽이 나오지 않겠나.”
지금까지 신생팀을 맡은 감독이 그 팀과 재계약한 사례가 없었다는 기자의 말에 김경문 감독은 "정말 그러하냐"고 물으면서 "지금은 재계약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3년이란 기간동안 팀을 얼마나 탄탄하게 다져놓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대답한다.(사진=일요신문 박은숙 기자)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