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1-09-23 11:50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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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 첫 타석이 마지막이었다!
악재도 이런 악재가 없다. 부상과 수술, 재활과 복귀, 그리고 또 부상과 복귀, 그리고 부상…. 추신수의 2011시즌은 이런 단어들로 마감이 되는 듯하다.
악재도 이런 악재가 없다. 부상과 수술, 재활과 복귀, 그리고 또 부상과 복귀, 그리고 부상…. 추신수의 2011시즌은 이런 단어들로 마감이 되는 듯하다.
9월 16일(이하 한국시간) 텍사스 레인저스 볼파크에서 벌어진 클리블랜드와 텍사스와의 3차전은 추신수한테 매우 특별한 날이었다. 지난 9월 2일 옆구리 통증으로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랐던 그가 이날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르기 때문이다. 날이 날이니 만큼 추신수는 경기 전 숙소 근처의 미용실에 찾아가 심기일전하기 위해 머리까지 단정하게 자르고 야구장으로 출근했다.
홈팀인 텍사스 레인저스의 훈련이 끝나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선수들이 덕아웃에 나타났다. 추신수는 선수들과 함께 가볍게 몸을 풀고 제일 먼저 베팅게이지로 들어섰다. 스윙하는 모습이 썩 경쾌한 느낌을 주지 못했다. 수비훈련까지 마치고 덕아웃으로 들어온 추신수는 “옆구리는 괜찮은데, 자꾸 몸이 무거워지는 것 같다”면서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괜찮아 질 것”이라고 마음을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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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5일, 미국 달라스에서 추신수와 시즌 마무리 인터뷰를 가졌다. 많은 사연을 안았던 2011시즌. 추신수한테는 영원히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것 같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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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가 텍사스와의 1,2차전을 거르고 3차전부터 출전할 거라는 소식이 알려져서인지 레인저스볼파크에는 많은 한국 유학생 및 교민들이 입장해서 추신수가 훈련을 시작할 때부터 이름을 부르며 응원했고, 추신수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훈련을 마친 후 3루 관중석 쪽으로 다가가 일일이 사인을 해주며 감사함을 표시했다.
결국 그날 3번타자로 출전한 추신수는 첫 번째 타석에서 옆구리 통증이 재발되며 다른 선수와 교체되었고, 그의 얼굴은 경기 후 클럽하우스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기자에게 “올 해는 뭘 해도 안 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낸 그는 “왼쪽 옆구리 근육이 찢어졌던 부분이 더 악화된 듯하다. 클리블랜드로 돌아가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정확한 상태를 알겠지만, 올시즌은 여기서 접어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클리블랜드는 텍사스전을 마치고 다음 원정지인 미네소타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미네소타까지 선수단과 함께 이동하는 추신수를 배웅하기 위해 선수단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출입구까지 그와 함께 걸어가며 얘기를 나눴다. 우리 뒤로 클리블랜드 매니 악타 감독이 캐리어를 끌며 걸어왔다. 악타 감독은 이미 현지 기자들에게 “앞으로 추신수를 더 이상 경기에 내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터라 추신수도, 악타 감독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추신수는 “한 번의 실수가 올시즌을 제대로 삼켜 버렸다. 그때의 실망과 비난들을 가슴에 묻어 두고 다시 한 번 야구장에 제대로 서고 싶었는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면서 기자와 악수를 나눴다. 버스에 오르는 추신수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한 듯 했다. 순간 그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음을 눈치챘지만, 모른 척 하고 싶었다.
추신수는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며, “한국에서 여기까지 오셨는데, 내가 출전하는 경기를 한 타석만 보고 돌아가시게 해 죄송하다”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건넸다. 그가 지난 5월 ‘그 사건’ 이후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조금은 아는 기자이기에, 그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추신수와의 정식 인터뷰는 텍사스와의 2차전 때, 선수단이 묵고 있는 호텔 부근의 커피전문점에서 진행했다. 첫 번째 질문은 어쩔 수 없이 ‘그 사건’을 꺼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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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 부상으로 15일짜리 부상자명단에 올랐던 추신수. 텍사스와의 3차전, 첫 타석에 나섰다가 또다시 부상이 재발되며 시즌아웃이 되고 말았다. 참으로 기구한 추신수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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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일어난 음주운전 사건은 메이저리그 스타 추신수를 나락으로 떨어트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0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병역면제 혜택을 받았고, 성실하고 모범적인 생활로 인해 대다수의 팬들은 야구선수 추신수도 좋아했지만, 인간적인 매력을 풍기는 추신수를 더 좋아했다. 그런 상황에서 음주운전 사건은 추신수를 좋아했던 팬들에게는 일종의 ‘배신감’으로 작용했다.
“올해는 살면서 처음 겪는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졌다. 신은 사람한테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고 하는데, 난 계속된 악재들로 인해 정말 제대로 호흡하고 살 수조차 없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으니까 이렇게 담담한 심정으로 얘길 할 수 있지만, 한동안 나한테 음주운전에 대해 물어보는 것조차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던 시간도 있었다. 백 번 천 번 얘기해도 내가 전적으로 잘못한 행동이었고, 그 일로 인해 내 인생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었다. 야구하면서 좌절이란 걸 모르고 살았는데 음주운전 사건으로 인해 아주 뼈저리게 내 위치에 대해, 내 역할에 대해, 그리고 내 잘못에 대해 절감하게 뉘우치고 반성하며 보냈다.”
추신수는 야구선수가 야구가 아닌 사생활로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부분을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지적이 싫은 게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란 사실 때문이었다.
“내 성격이 완벽주의자 스타일이다. 그런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실수로 인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욕도 많이 들었고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다. 나로 인해 내 가족, 특히 우리 부모님까지 욕되게 했다. 그 참담함, 비참함이 얼마나 심했는지 모른다.”
추신수는 음주운전으로 체포될 당시 동영상이 공개되며 경찰을 매수하려 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당시엔 겁이 많이 났고, 이런 일이 한국에 알려지면, 그동안 날 믿고 응원을 보냈던 수많은 팬들에게 실망을 준다는 사실이 두려웠다”면서 “영어로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내 입장과 의견을 제대로 말한다는 게 어려웠다. 경찰을 상대로 어떻게 해보려 했던 것보단 그 두려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은 벌집 쑤신 듯이 난리가 났다. 모든 여론이 자신을 향해 비난과 비판의 수위를 높여갈 때, 추신수는 ‘이제 모든 게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내리막길을 모르고 오르막길만 향해 달려갔던 그가 야구 시작하고 처음으로, 인생의 나락을 경험하며 야구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새삼 자세를 고쳐 잡는 아픈 시간들이었다.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자만심이 존재했던 것 같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는데, 마치 다 이룬 것처럼 들뜬 마음으로 초심을 잃고 어리석은 행동을 저질렀다. 너무 창피해 고개를 들 수조차 없을 정도다. 그러나 난 야구를 해야 했다. 팀에서도 그걸 원했다. 당장이라도 내가 처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고, 잠시 수면제를 먹고 모든 걸 잊고 싶기도 했지만, 난 야구장으로 출근을 해야 했다.”
돌이켜보면 추신수한테 올시즌은 유난히 야구 외적으로 신경 쓸 부분이 많았던 한 해였다. 연봉이 늘어나고 인기가 올라가는 만큼 그에 걸맞은 그릇의 크기가 돼야 하는데, 수직상승을 이룬 겉모습과는 달리 자신은 아직 그 그릇과 어울리지 않는 작은 사람이 아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고 말한다.
짧은 행복 긴 고통
지난 8월, 셋째 딸 소희를 품에 안게 된 추신수. 아들만 둘이었던 그는 평소 입버릇처럼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자주 얘기했고, 그 덕분인지 그는 소원대로 딸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딸이 태어난 다음날, 생애 첫 끝내기 만루 홈런을 치고, 더블헤더로 벌어진 2차전때 또다시 홈런을 때리면서 ‘내 생애 최고의 하루’를 만끽했었다. 정말 그 날만큼은 ‘오 해피데이’였다. 그 홈런들로 인해 이전의 진한 아픔들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행복은 ‘하루짜리’였다. 옆구리 통증이 시작되면서 엄지손가락 부상 이후 또다시 부상자명단에 올랐기 때문이다. 참으로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경험이었다. 더욱이 팀이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안간힘을 쓰며 디트로이트와 1위 싸움을 벌이고 있던 터라 부상당한 것조차 선수들한테 미안할 지경이었다. 올해는 뭐가 쓰인 것처럼 발버둥을 쳐도 안 된다는 걸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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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당한 엄지손가락 수술 후의 모습. 현재 추신수의 엄지손가락 안에는 철심과 6개의 나사가 박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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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몸부림치듯 재활을 해낸 덕분에 그는 주치의도 놀랄 정도로 빠른 회복 속도를 보였고, 재활 기간을 무려 4주나 앞당겨 덕아웃에 앉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런 빠른 재활 과정이 몸에 무리를 가해 옆구리 통증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추신수는 이 또한 ‘자기 복’이라며 다른 해석을 경계했다.
추신수는 클리블랜드와의 계약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은 데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나타냈다.
“어떤 분들은 올시즌 초라한 내 성적 때문에 지난 해 클리블랜드에서 제시한 장기계약을 거절한 데 대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얘기하시지만, 난 다시 똑같은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절대 후회하지 않고, 전혀 미련도 없다. 연봉은 분명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계약 기간은 좀 더 고민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왜 고민을 해야만 하는 지에 대해선 나중에 천천히 말씀드리겠다.”
추신수는 2013 시즌이 마무리 된 후 얻게 되는 FA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아내와 아이들이 시즌 중에는 따로 애리조나 집에 머물렀지만 올해부터 같이 클리블랜드에서 살게 되며 아이들의 교육 문제와 환경 등을 떠올리자 생각이 복잡해졌다고 한다.
“올시즌이 마무리되면, 에이전트를 만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내 생각을 얘기할 계획이다. 올해 누구 때문이 아닌, 나 때문에 빈손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됐다. 그 명예회복을 꼭 클리블랜드에서 해보이고 싶다. 그 다음은 내 운명에 맡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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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와의 3차전을 앞두고 추신수가 스윙훈련을 마친 후 타격 코치인 브루스 필즈와 대화를 나누다 모처럼 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추신수는 첫 타석에서 부상이 재발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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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컸기 때문에 그에 따른 비난과 실망도 컸을 거라고 생각한다. 올시즌, 그래도 감사했고,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야구선수는 야구장에서 성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아직 추신수란 선수에 대해 관심을 버리지 않으셨다면, 다음 시즌을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싶다.”
추신수의 마지막 일기
2009년부터 시작됐던 ‘추신수의 MLB 일기’가 시즌 3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추신수가 ‘추추트레인’으로 화려한 날개짓을 펴던 시절부터 2년 연속 20-20클럽에 가입하며 유일한 코리언 메이저리거로 명성을 날렸던 지난 해에도 ‘추신수 일기’는 항상 그 속에서 함께 해왔다.
올시즌 거듭되는 부상과 불미스런 일로 인해 일기를 연재하는 게 추신수의 입장에선 굉장히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추신수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기를 중단하지 않고, ‘시즌3’를 이어갔었다.
‘추신수 일기’의 마지막을 추신수와의 미국 현지 인터뷰를 통해 일기와 관련된 추억들을 더듬어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추신수 일기’의 마지막을 추신수와의 미국 현지 인터뷰를 통해 일기와 관련된 추억들을 더듬어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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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시즌 너무나 많은 악재들 속에서도 일기 연재를 중단하지 않았던 추신수. 여러 차례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적이 많았지만,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고 말한다. 일기를 통해 오히려 추신수가 자신의 야구를,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단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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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신기하다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팬들에게 보다 신선하고 알찬 일기를 선보이려 했지만 계속되는 악재들로 좋은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몇 주 앞당겨 일기를 종료하려 했는데, 일부러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텍사스와의 3차전에서 부상이 재발됐고, 개인적인 시즌이 종료되면서, 올해는 더 이상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없게 됐다.”
-3년간 일기를 진행하는 동안 버라이어티한 일들이 많았다.
“진짜 정이 많이 들었다. 비록 일주일에 한 번 쓰는 일기였지만, 성적이 좋을 때는 빨리 독자들을 만나고 싶었고, 성적이 안 좋거나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생길 때는 피하고 도망가고 싶기도 했었다. 그래도 꾹 참고 견뎌낸 날 칭찬해주고 싶다(웃음). 내가 잘 나갈 때나, 추락을 거듭할 때도, 변함없이 내 옆을 지켜준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솔직히 일기를 안 쓰게 되면 시원섭섭할 줄 알았는데, 막상 이렇게 끝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섭섭하고 아쉬움이 크다.”
-얘기를 들어보니, 자신의 일기에 대해 많은 애착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일기를 계속 연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해외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고, 나에 대한 기사가 경기 결과에 대한 내용 외에는 전달되는 부분이 매우 적었다. 날 취재하는 한국 기자들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팬들은 내 소식을 궁금해 하고…, 팬들과 소통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바로 이 일기였다. 물론 내 일기를 읽고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비난을 퍼부은 사람들도 있고,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 아낌없이 응원을 보내고 격려해주신 분들도 있다. 난 그 모든 것들이 나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내 주위에서, 또 팬들이 보내는 편지들 속에서 내 일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굉장한 보람도 느꼈다.”
-‘시즌1’ ‘시즌2’보다 올 한 해, 일기를 쓰는 게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정말 그렇다. 불미스런 일이 생기면서 너무 많은 비난에 시달리다보니 팬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그러나 일기는 팬들과의 약속이었고, 어차피 시즌 끝날 때까지 진행하기로 했기 때문에 마음을 수차례 고쳐먹고 또 다짐했었다. 그동안 연재됐던 일기들을 모두 스크랩해서 모아두었다. 가끔 야구가 안 되고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이전에 썼던 일기들을 다시 읽어보며 내 자신을 돌이켜보기도 하고, 내 생활을 반성하기도 한다. 아마 10년, 20년이 지나서 세 권의 스크랩북을 다시 읽어본다면, 그리고 내 아이들이 아빠가 쓴 일기를 읽게 된다면, 우리 아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아질 것 같다.”
-그동안 쓴 일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이 무엇인가.
“지난 광저우아시안게임 때 언론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택시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했었다. 너무 몸이 안 좋고 힘이 들었는데 선수들과 함께 끝까지 정신력을 발휘하며 결승전에서 감격스런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 장면들을 서술한 내용을 읽을 때는 여전히 가슴 뭉클해지는 추억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을 때, 그 아픔을 일기에 표현한 적이 있는데, 갑자기 내 일기가 전라도 분들과 경상도 분들의 지역 감정을 부추기게 한 ‘사건’으로 부상했다. 난 정치의 ‘정’자도 모르는 사람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경상도 출신이라고 해서 그 분을 추모했던 게 아니라 한 나라를 이끈 ‘대장’이셨던 분이, 자신의 생을 너무도 안타깝게 마감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그걸 얘기하려 했던 게 이상하게 지역색으로 엮이며 네티즌들 사이에 설전이 벌어지게 한 요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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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통해 팬들과 교감하고 싶었던 추신수. 비난과 응원도 모두 감사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하는 그는, 정규시즌이 종료되면 가족들과 애리조나 집으로 돌아가 당분간 야구를 잊고 아이들과 함께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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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도 야구선수 이전에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했다. 한 예로 음주운전에 대한 비난들 속에서도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를 했던 것이고,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 백배 천배 잘못을 통감하고 사죄하는 상황을 어느 정도는 받아줬음 했다.”
-마지막으로 ‘추신수 일기’를 애독했던 팬들에게 인사를 해달라.
“힘든 일도 많았지만, 내 인생에 너무 큰 도움을 준 일기였다. 날 돌아보고, 날 일으켜 세웠던 힘이 돼줬다. 일기에 관심을 나타낸 팬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한 가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시즌3’는 끝나지만, 이게 마지막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팬들이 원하고, 또 나도 여건이 허락된다면,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드릴 수 있다. 그리고 일기를 쓰지 않는다고, 추신수라는 선수를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웃음).”
[추신수가 네이버스포츠 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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