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1일 금요일

박영길의 타격이야기(1) =정확성의 대명사 장효조 타격의 비결

출처: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1128321.htm
입력: 2013.01.11 10:10
정리 | 박현진기자 jin@sportsseoul.com


한국 야구 사상 최고의 교타자로 꼽히는 장효조의 타격 준비동작은 군더더기가 없다. 오른 팔이 잘 펴져 있어 정교한 타격을 할 수 있는 자세다. 약간 위쪽을 향하고 있는 시선과 넓은 스탠스가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의 정교함에 흠집을 낼 정도는 아니었다. (스포츠서울DB)

한국에 야구가 들어온지 100년이 훌쩍 넘었고, 프로야구가 출범한지도 30년이 지나면서 야구 기술도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같은 국제대회에서 미국 일본 등 야구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수준이 됐지만 야구이론의 정립면에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박영길 본지 객원기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적인 타격이론가이다. 프로야구 롯데 초대 감독을 거쳐 삼성.태평양 감독을 역임한 야구원로로 프로야구 출범 이후 현재까지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봤다. 스포츠서울은 매주 박영길 전 감독이 풀어내는 스타플레이어들의 타격이야기에 선수들의 성장과정과 장단점, 타격이론을 접목해 전달하려한다.<편집자주>


타격의 기본은 무엇일까. 타격은 득점을 얻기 위한 행위라는 점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 과거의 타격 이론은 스윙을 가르치는데 중점을 뒀다. 그러나 실전에서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공을 때리는데 집중해야 하고 훈련도 공을 때리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자면 스윙 자체가 아니라 공을 때리기 위해서 팔과 다리를 비롯한 자신의 몸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얘기해야 한다. 스윙을 고치려들 것이 아니라 공을 때릴 때 팔과 다리의 모양, 쓰임새만 바로 잡으면 좋은 타격을 할 수 있다.

필자가 타격이론을 정립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사건이 있다. 1985년 일본의 야구 전문지 슈칸베이스볼이 창간 30주년을 기념한 특별 화보를 발행했다. 화보에는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역대 명투수와 타자 30명의 피칭과 타격 장면을 32컷의 연속 사진으로 실려 있었다. 그 가운데 오사다하루, 나가시마, 장훈 등 개성넘치는 강타자의 사진도 포함됐는데 놀랍게도 7번째부터 16번째 사진까지는 타격 자세가 거의 일치했다. 장훈은 배트를 눕힌 자세에서 타격에 시동을 걸었고 오사다하루는 배트를 바짝 세우고 한 발을 드는 외다리 타법을 구사했지만 공을 맞히는 임팩트존에서는 똑같은 자세로 공을 때리고 타구에 힘을 싣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결국 좋은 타자들이 좋은 타격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르지 않았고, 그 공통점을 연구하면 좋은 타격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타격의 기본은 공을 정확하고 힘있게 때려서 멀리 타구를 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타격은 정확성과 강한 임팩트, 비거리를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정확하면 3할타자가 될 것이고, 강하게 때릴 수 있으면 홈런타자가 된다. 그 중 첫번째 화두가 정확성이다.


장효조가 왼쪽 팔꿈치를 옆구리 쪽으로 내려붙이면서 타격에 시동을 걸고 있다. 45도 각도로 누워있던 배트도 거의 뒤쪽으로 평평하게 눕기 시작한다. (스포츠서울DB)

한때 국내에서도 찍어치기, 즉 다운스윙을 집중적으로 가르친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는 잘못 배운 것이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한 때 메이저리그 따라잡기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당시 요미우리가 LA 다저스의 캠프에서 스프링캠프를 차렸는데 양 팀 감독들이 야구론을 교환하는 기회가 있었다. 당시 다저스의 야구이론과 시스템을 집대성한 '다저웨이'라는 책이 화두가 됐고 메이저리그식 타격의 요체를 "슬로우, 슬로우, 다운"이라고 말한 것을 통역이 잘못 전달해 일본에서 다운스윙이 급속도로 전파됐다. 그것이 60년대 후반부터 한국으로 유입됐는데 최근까지도 찍어치기를 강조하는 타격 이론가들이 적지 않다.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다운스윙으로 공을 내리찍듯 때려서 역회전을 만들어내야한다는 물리의 법칙도 동원됐다. 그렇다면 느린 커브를 올려쳐서 홈런을 때려내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 결국 찍어치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공과 배트가 정면으로 만나게 해야 좋은 타격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운스윙을 하다보니 뒷다리에 체중이 많이 남아있게 되는 단점도 있다. 앞다리 쪽으로 체중을 완전히 실어줘야 파워가 살아나는 법이다.


임팩트 직전까지도 장효조의 오른팔은 쭉 펴져 있다. 왼팔은 거의 옆구리에 고정시킨 것 처럼 붙어서 몸통의 회전력을 이용할 준비까지 완벽하다. (스포츠서울DB)

정확성을 거론하기 위해 이 선수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장효조다. 역대 한국 타자들 가운데 가장 정교한 타격을 했던 선수가 장효조다. 장효조는 빼어난 선구안을 갖고 있었지만 그에 앞서 정확하게 공을 때릴 수 있는 팔동작을 갖췄다. 그것이 장효조가 통산 0.331의 경이적인 타율을 기록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장효조의 타격은 하체보다는 상체에 집중해야 한다. 사실 장효조의 스탠스는 자신의 체구에 비해 지나치게 넓은 편이었다. 그러나 상체의 준비 동작은 거의 완벽했다.

사진을 보면 타격을 위해 들어올린 장효조의 오른팔이 거의 일직선에 가깝게 쭉 뻗어 있다. 좌타자인 장효조는 오른팔이지만 우타자들은 왼팔을 가능한한 곧게 뻗어야 정확성을 얻을 수 있다. 골프의 백스윙과 같은 원리다. 팔을 뻗지 못하면 스윙 궤적이 흔들린다. 하물며 서있는 공을 때릴 때도 정확성을 얻기 위해 팔을 뻗는데 팔을 고정시키지 않고 어떻게 움직이는 공을 때릴 수 있겠는가. 장효조 뿐만 아니라 김현수, 양준혁 등 정확도가 높은 타자들의 타격 자세는 한결 같다.


타격을 마친 장효조의 오른쪽 다리가 90도 이상 굽혀져 있다. 체중 이동이 잘됐다는 의미다. (스포츠서울DB)

이 자세에서 배트는 45도 정도의 각도를 유지해야 한다. 준비단계에서 배트를 앞으로 눕히거나 뒤쪽으로 눕히거나 꽂꽂하게 세우는 것은 관계가 없다. 체중이동이 시작되기 직전에는 배트가 45도를 유지해야 일정한 스윙을 할 수 있고 공과 배트가 정타로 맞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장효조의 상체는 팔과 배트의 이상적인 각도를 잘 보여준다. 배트가 나오는 지점에서부터는 왼팔이 몸에 거의 붙어있다. 그래야 정확성을 유지하면서 몸통의 회전력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상체 동작 가운데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시선이다. 시선이 약간 위쪽을 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선을 위로 둘 경우 몸과 공의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뒤쪽 어깨가 내려가면서 배트가 몸에서 겉돌게 된다. 바깥쪽 공은 손대기가 어려워지고 몸쪽 빠른 공에도 대응하기가 어렵다. 장효조도 그런 이유 때문에 몸쪽 빠른 공에 약점을 보였다. 조금만 시선을 내려봤으면 더 완벽한 타자가 됐을 것이다.


장효조가 마지막으로 타구에 힘을 실은 뒤 1루를 향해 스타트를 끊는 순간이다. (스포츠서울DB)

반면 장효조의 하체는 장타를 생산하기 어려운 동작을 취하고 있다. 앞서 지적했지만 스탠스가 넓었다. 일반적으로 스트라이드를 내딛는 발이 축족에서 34인치 이상 벌어지면 체중이동을 완벽하게 할 수 없다. 스트라이드가 넓은 탓에 타격 준비를 취하면서도 체중이 앞다리에 남아있다. 체중을 뒷다리로 실었다가 앞다리로 옮기면서 타구에 힘을 실어야 하는데 체중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홈런이 적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장효조의 스탠스를 교정하지 않았던 것은 체중이동을 최소화하는 편이 정확도를 높이는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장효조의 경우 파워가 더 실릴 경우 외야 플라이로 그치는 타구만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았다. 홈런수는 다소 늘어나더라도 안타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타자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살려내는 것도 지도자의 중요한 능력이다.

정리 | 박현진기자 j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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